텅 빈 한반도 라인…美 외교 고위직 90자리 비어 ‘공백 장기화’

입력 2018.04.16 16:13 | 수정 2018.04.16 16:18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아직 한국에 (미국) 대사가 없다. (주한 미) 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의 주요 직급이 공석인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한 말이다.

미·북 정상회담, 미국 주도의 시리아 공습, 이란 핵 협정 파기 압박, 중국과 무역 분쟁 등 외교 현안이 쌓인 상황에서 국무부의 고위직 공백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미 정치권에선 세계 곳곳에서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시점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진 현 상황에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현재 해외 주재 대사를 포함해 국무부의 고위 간부직 90자리 이상이 비어 있다. 이 중 차관급 이상 고위직은 10자리 중 국무장관 대행을 겸하는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을 제외한 9자리가 공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2018년 4월 12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4월호에서 “대사직 38석을 포함해 국무부의 핵심 직위 수십 개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며 “미국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전략적 중요성이 큰 대사직이 비어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국무부는 직업 외교관들이 대사 대리를 맡아 틈을 채우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대리인들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 공식 대사가 갖는 만큼의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부의 주요 자리에 구멍이 난 것은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의 전임자인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관료주의 타파에 지나치게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인 틸러슨 전 장관은 취임 후 비대한 관료 조직 개혁에 나섰다. 예산을 줄이고 고위급 외교관을 상당수 내보냈다.

뉴욕타임스는 12일 ‘마이크 폼페이오는 의회에서 통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국무부의 핵심 임무는 국제 위기를 처리하고 세계 무대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틸러슨 전 장관은 관료주의 구조조정에 집중했고 조직에 살아남은 외교관들도 홀대받는 기분이 들게 했다”며 “그와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 역할을 약화시켰다”고 했다.

12일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의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무부 고위직 공석 상황에 대한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폼페이오 내정자는 취임 후 가장 먼저 할 최우선 과제로 틸러슨 장관 체제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국무부 직원의 사기를 다시 높이고 빈자리를 서둘러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렉스 틸러슨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8년 3월 22일 국무부 로비에서 직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떠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2일 ‘마이크 폼페이오를 인준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폼페이오 내정자는 국무부 예산을 지키고 빈자리를 빨리 채우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틸러슨 전 장관의 이상한 관리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이 폼페이오에게 가진 우려도 타당하지만, 그의 지명을 거부하거나 인준을 늦추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한 조언 없이 많은 위기를 다루는 현시점에 위태로운 상황을 더 나빠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또는 6월 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라인 공백은 특히 우려를 낳고 있다. 한반도를 담당하는 주요 직책은 주한 미 대사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등이다.

주한 미 대사는 지난해 1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 대사의 퇴임 이후 15개월째 공석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주한 미 대사 내정 철회로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대리의 대행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에는 올 1월 수전 손튼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공식 지명됐지만, 틸러슨계로 분류되면서 지명 철회설이 돌고 있다. 북한과 협상을 주도해 온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초 은퇴했다.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폭스뉴스
게리 코놀리 민주당 하원의원은 UPI와 인터뷰에서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 “외교 협상이 성공을 거두려면 충분한 자원과 인력을 갖춘 국무부, 부처 간 협력, 확고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 모든 것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3일 미 공영 라디오 NPR에 출연해 “국무부에서 북한과 접촉하던 주요 인물이 떠나고 한국에 미국 대사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난 경험을 전하며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 점에서 갑자기 결정된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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