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앞바다 섬마을 사람들이 내 연극의 원천"

    입력 : 2018.04.16 03:00

    [제28회 이해랑 연극상]

    남도 연극 이끌어온 김창일 연출가… 목포生으로 평생 남도 무대 지켜
    전국연극제 희곡상 5회 받기도 "돌이켜보면 조촐한 연극 인생"

    "연기부터 극작, 연출, 미술, 조명, 무대까지 다 했으니 '잡것' 아니겠소. 극장 하나 없던 고향서 꾸역꾸역 해왔으니 어디서 툭 튀어나왔는지 모를 '똘것'이기도 하고." 제28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김창일(71)이 보일 듯 말 듯 웃으며 말했다. 전남 목포 역전에서 가자미찜에 소주 시켜 놓고 앉은 자리였다.

    그는 평생 목포에서 연극을 했다. 전국연극제 희곡상을 5회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목포시립극단 창단 상임 연출을 지내며 호남 연극을 한 단계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의 희곡은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그늘진 곳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지금도 전국 각지 극단의 인기 레퍼토리다. 흔히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하는데 그의 삶이 정말 그렇다.

    제28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김창일을 목포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만났다.
    제28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김창일을 목포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만났다. 그는“연출가 손진책이나 기획자 박명성 같은 이들이 목포 와서 공연한 뒤 연극하는 데 보태라며 돈을 주고 가곤 했다. 내가 연극으로 이룬 게 있다면 다 그런 분들의 도움 덕”이라고 했다. /김영근 기자
    김창일은 목포 앞바다 섬을 배 타고 돌며 물건을 팔던 선창가 잡화상 집의 6남매 중 장남이었다. 늘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공대 가겠다며 대입 시험 보러 서울 갔다가 서라벌예대에 지원해 덜컥 붙었다. "집에 말할 수나 있나. 그냥 다녔지." 1학년 여름방학 때 집에 가니 학교명 찍힌 등록금 고지서가 와 있었다. 가족은 그때서야 그가 대학에서 연극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울로 되돌아갈 때에야 아버지는 '한번 해보라'고 허락했다. 졸업 뒤 1년쯤 연극판에 있었지만 아버지 병환으로 집에 내려가 가족을 건사해야 했다. 그는 "이불 한 채 지고 완행열차를 탔는데 목포 닿을 때까지 밤새 울음을 삼켰다"고 했다.

    집안일 돌보며 틈틈이 대학생들을 모아 연습도 시키고 공연도 했다. 목포에 제대로 된 극장 한 곳 없던 시절이다. "당시 배우 김길호 선생과 예식장을 빌려서 형광등 켰다 껐다 하며 연극했어요. 선창서 나무 주워다 무대 만들고, 분유 깡통으로 조명기 만든 적도 있고. 추송웅 선생이 '빠알간 피터의 고백' 공연하러 오셨다가 그 조명기를 썼어요. 왜 그리 부끄럽던지…."

    마흔 살 되던 1987년, 그의 연극 인생이 비로소 제대로 시작됐다. "결혼 때 아내에게 '마흔 살까지는 연극 안 한다'고 약속했거든요. 근데 마흔이 딱 되니까 장사가 자리를 잡아서 내가 없어도 되겠더라고. 게다가 전국연극제 지역 대회 우승하면 지원금을 준다네. 돈 받고 연극하는 꿈이 생긴 거지." 그해 희곡 '갯바람'으로 처음 참가한 전국연극제에서 희곡상과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이어서 '도시 탈출' '안개 섬'까지 3년 연속 전국연극제 희곡상을 받았다. "장사하며 섬마을 돌 때 보고 들었던 이야기가 창작의 자양분"이었다.

    1994년에는 '붉은 노을 속에 허수아비로 남아'로 전국연극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호남 연극계 전체의 경사였다. 목포시립극단이 만들어졌고, 그는 상임 연출이 됐다. 2011년 희곡상을 받은 '막차 타고 노을 보다'는 뇌졸중으로 입원했던 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다. "약 맞고 자꾸 잠이 들어서 가족 면회 시간을 두 번 놓친 거야. 그냥 가면 끝내 못 보는 건데, 사는 게 참 얼마나 허무해요? 퇴원 뒤 그 얘기를 썼지요."

    이후 그는 '매천야록'의 구한말 우국 학자 황현(黃玹) 선생 이야기 등 지역 인물 3부작도 썼다. 칠순을 넘긴 지금도 희곡을 발표하고 호남 각지 무대에서 연출도 맡는다. 그는 "실은 작가도 연출가도 멀었다. 돌아보면 조촐한 연극 인생이었다"고 했다. "요즘 쓰는 희곡 제목은 '불섬'이오. 차범석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쓰고 있다 하셨던 제목인데, 왠지 무슨 얘길 쓰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아서…." 어느새 그가 소주 두 병을 비웠다. 낯빛에 미동도 없이 목소리가 힘차다. 앞으로도 오래 그의 희곡과 연극을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심사평] "연극으로 소외된 이들 보듬은 사람"

    제28회 이해랑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임영웅)는 지난달 14일 조선일보사에서 회의를 열고 90분간의 열띤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전남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극작·연출가 김창일(71)씨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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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선정을 논의하는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프로듀서 박명성, 배우 손숙, 연출가 임영웅(위원장), 평론가 유민영, 이미원 한예종 교수, 한현우 조선일보 문화2부장. /오종찬 기자
    심사위원들은 후보로 연출가 문삼화·최용훈, 극작가 배삼식, 조명감독 김창기, 배우 남명렬·박지일·오영수·정상철 등을 추천했다. 또 목포시립극단 상임 연출을 지낸 김창일 등 지역 예술 활성화에 이바지한 연극인들을 후보로 함께 논의했다. 이어 이해랑 연극 정신을 계승했는가, 지속적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연극 예술에 폭넓게 기여했는가 등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좁혀 나갔다.

    심사위원들은 토론을 통해 "김창일의 연극은 남도 섬사람들의 진솔한 삶에 주목하고,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창작과 연출 양면에서 일관되게 수준 높은 전통 리얼리즘의 연극 기조를 보여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김우진·이화삼·차범석 등으로 이어진 목포와 호남 연극의 맥을 계승해 광주·여수·광양 등에서 수준 높은 연출로 지역 연극 발전에 진력해온 것 또한 일찍이 이동극장 운동을 펼쳤던 이해랑 연극 정신에 부합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ㅡ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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