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는 왜 몽마르트르의 '꽃파는 소녀'를 사랑했나

    입력 : 2018.04.16 03:00 | 수정 : 2018.04.23 19:35

    록펠러 3세 부부 5300억대 경매… 피카소·마티스·모네 등 1550점
    소반·주칠장 등 한국 고미술품도

    '세기의 경매'… 수익금 전액 기부 "최대한 벌어서 최대한 돌려준다"

    1968년 12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데이비드 록펠러를 포함한 미국의 거부(巨富) 다섯 명이 모였다. 이들은 소설가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죽으면서 남긴 600만달러 상당의 미술 소장품을 함께 샀다. 소장품 중 일부는 MoMA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나눠서 각자 소장하기로 했다. 이들은 모자에 숫자가 적힌 종이를 넣어 제비뽑기하는 방식으로 작품 고를 순서를 정했다. 1번을 뽑은 데이비드는 주저 없이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1905)를 골랐다. 아내 페기가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작품. 지난 50년간 이 그림은 뉴욕 65번가 '록펠러 맨션' 서재에 걸려 있었다.

    미국 맨해튼 65번가 자택 서재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 록펠러와 파블로 피카소의‘꽃바구니를 든 소녀’.
    미국 맨해튼 65번가 자택 서재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 록펠러와 파블로 피카소의‘꽃바구니를 든 소녀’. 2006년에 찍은 사진이다. /크리스티
    '꽃바구니를 든 소녀'를 포함해 데이비드(1915~2017)와 페기(1915~1996) 록펠러 부부가 소장한 미술품이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나온다. 전체 작품 수 1550점, 예상 규모 5억달러(약 5300억원)로 단일 소장품 경매 사상 최대다.

    이번 경매에는 피카소,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조르주 쇠라, 에두아르 마네, 폴 고갱, 에드워드 호퍼 등 서양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과 유럽, 아시아의 고가구와 도자기 등이 나올 예정이다. 록펠러 부부가 한국에 왔다가 산 소반과 주칠장 등 한국 고미술품 22점도 포함됐다. 미국 언론에서 '세기의 경매'라고 이름 붙인 '페기·데이비드 컬렉션' 경매는 다음 달 8일부터 사흘간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열린다.

    현대미술과 평생 함께한 록펠러

    위쪽은 디에고 리베라의‘라이벌’(1931).
    위쪽은 디에고 리베라의‘라이벌’(1931). 아래쪽은 데이비드 록펠러가“늦은 오후 연못의 분위기가 환상적으로 묘사돼 즉석에서 샀다”는 클로드 모네의‘만개한 수련’(1914~1917). /크리스티
    데이비드는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인 '석유왕' 존 D 록펠러(1839~1937)의 막내 손자다. 1981년까지 체이스맨해튼은행을 이끌었다. 데이비드는 생전에 "나는 MoMA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을 정도로 현대미술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인 록펠러 2세는 고미술을, 어머니 애비 앨드리치는 현대미술을 좋아했다. 남편의 눈을 피해 현대미술을 모으던 애비 앨드리치는 친구 두 명과 MoMA를 창립했다. 가족과 함께 살던 뉴욕 54번가의 록펠러 저택을 허물고 그 터를 MoMA에 기증했다. 데이비드는 이 저택에서 태어났다.

    데이비드는 MoMA의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 부부와 어울리면서 모네,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유럽 작가에 눈을 떴다. 록펠러 부부는 작품을 사들였을 뿐만 아니라 디에고 리베라, 알렉산더 칼더, 마르크 샤갈 등에게 작품을 주문하면서 이들을 후원했다.

    록펠러 부부의 아들인 데이비드 주니어는 크리스티 매거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견이 일치해야만 중요한 작품을 샀다"며 "어머니는 뛰어난 안목으로 작품을 집안 곳곳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모네의 '만개한 수련'(1914~ 1917)이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걸린 건 부부가 집을 나설 때, 밤에 자러 갈 때마다 보기 위해서였단다.

    예상 최고가는 1300억원 피카소 작품

    예상 응찰가가 가장 높은 작품은 '꽃바구니를 든 소녀'다. 9000만~1억2000만달러(약 970억~1300억원)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1905년 거트루드의 오빠가 피카소에게 30달러를 주고 산 그림이다. 목걸이 말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 모델은 파리 몽마르트르의 물랭루즈 앞에서 꽃을 팔던 소녀 린다로 알려져 있다. 린다는 모딜리아니와 반 동겐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그다음으로 예상 응찰가가 높은 마티스의 '오달리스크'(1923)는 7000만~9000만달러로 예상된다. '록펠러 소장품'이란 이력 때문에 낙찰가는 더 올라갈 수 있다. 2007년 데이비드가 소더비 경매에 마크 로스코의 '화이트 센터'를 내놨을 때 소더비와 MoMA 큐레이터는 응찰가를 각각 4000만, 5000만달러로 예상했지만 7284만달러에 낙찰됐다. 당시 데이비드는 "1만달러 주고 산 작품치고 괜찮네"라고 했다.

    이번 경매의 수익금은 전액 기부된다. 록펠러 부부는 생전에 '기부 경매'를 계획했다. 소장품의 일부를 MoMA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고, 기부금을 받을 12개 단체도 20년에 걸쳐 골랐다. 하버드 대학, 록펠러 대학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지난주 한국을 찾은 벤 클락 크리스티 아시아 부회장은 "록펠러 가문의 신조가 '최대한 벌어서 최대한 돌려주자'였다"면서 "선대가 모은 걸 물려주지 않고, 후대가 다시 수집을 시작한다"고 했다. 데이비드 주니어는 "어릴 때부터 집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그림을 감상했다. 그때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경매에 참여할 테고, 수익금이 기부금으로 쓰인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마무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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