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北인권단체·천안함 유가족 탄원에… "왜 분위기 좋은데 산통 깨냐"

입력 2018.04.14 03:01

[Why 뉴스초점]
남북 정상회담은 ‘기울어진 운동장’

남북 정상회담이 두 주 앞이다. 오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을 다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인권 문제 등 다른 대북 현안은 의제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천안함·연평해전 유족과 탈북자, 안보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회담 전부터 굴욕적인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남북 관계는 올 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할 뜻을 밝힌 뒤 급물살을 탔다. 김여정 제1부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해 올림픽 개·폐막식에 각각 참석했다. 곧이어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이 잡혔다. 청와대와 여당은 "한반도가 전쟁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설주는 '리설주 여사'로 부르기로 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이에 앞서 공영방송 KBS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고, 김영철은 기다렸다는 듯 발뺌하면서 '남남 갈등'을 부추겼다. 정상회담 불씨가 꺼질까 봐 우리 정부가 묵묵부답하는 사이 미국 국무부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신뢰한다"고 확인해줬다. 이런 급변과 혼란에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제에 못 오르는 북한 인권, 천안함

세계적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국제앰네스티(AI) 등 40여개 단체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공동 서한을 발표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정식 의제에 포함시켜달라는 요구였다. 지난달 22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등 국내 30여개 북한 인권 단체들도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 인권 문제 해결 없이는 진정한 평화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다.

우리 정부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합의한 의제에 따라 대화를 하기 때문에 남북대화에 지금 그 문제를 포함시키려면 정부 차원에서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 인권을 다룰 계획이 없다고 공언한 셈이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북한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의제에서 제외하기엔 너무 크고 보편적인 문제"라며 "남북 관계 발전과 북한 인권 개선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미국 조야(朝野)에선 정상회담과 북한 인권 문제 연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 "비핵화 문제 말고도 인권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미국 정부가 인권을 개선하도록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인 미국이 누가 봐도 정상이고 그렇지 못한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했다.

천안함과 연평해전 유가족들은 울분을 터뜨린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인민군 정찰총국장이었던 김영철은 평창올림픽 때 정상에 준하는 대접과 경호를 받았다. 지난 2일 남측 평양 공연 취재단을 만난 자리에선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며 대한민국을 능욕했다. 유가족과 네티즌의 불만이 들끓었지만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 주범을 특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씨는 "46명은 북한이 죽였고, 생존 장병 58명은 정부가 죽이고 있다"며 "목숨 바쳐 평화를 지킨 우리 군을 위해 정부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아내 김한나씨는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를 환영하지만, 왜 김영철에게 조롱만 당하고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할 순 없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왜 분위기가 좋은데 산통을 깨느냐'며 인신공격을 퍼붓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고도 했다. 천안함 전사자 민평기 상사의 유족 민광기씨는 "(김영철 앞에서) 군 최고 통수권자가 한마디도 못한다"며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뤄지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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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북한 자극하지 않으려는 내부 정지 작업"

Why?는 지난달 초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바쁘신 일정 등의 이유로 승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밝히지 않았다. 태 공사는 지난 2월부터 미디어에서 사실상 '실종' 상태다. 국정원 제1차장을 지낸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내부 정지 작업"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껄끄럽거나 비판적인 언행은 알아서 삼가는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지난해 말부터 가요 중심으로 바뀌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한국 정부나 일부 언론의 저자세가 도를 넘었다. 나는 한 방송에서 김여정 부부장, 현송월 단장을 '그 여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두 달 넘게 출연을 정지당했다"며 "이것이 블랙리스트 아니냐"고 했다. 그는 "반국가단체 괴수의 부인인 리설주를 여사라고 하라는데, 정상회담이 잘되고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여사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불러줄 수 있다"면서도 "회담 전부터 자세를 낮추는 바람에 유리한 고지를 북한에 빼앗겼다"고 비판했다.

군인과 예비군, 민방위를 대상으로 하는 안보교육도 달라졌다. 안보 강사로 일하는 탈북자들은 "올 들어 안보 교육에서는 사실상 안보가 없어졌다. 북한이 주적(主敵)이라는 말도 못 하고 통일의 당위성만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마당에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하긴 언감생심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탈북자 A씨는 "며칠 전 예비군·민방위 안보 교육 담당자로부터 '강의할 때 탈북했다고 얘기하지 말고 한국 들어와서 공부했다는 말도 마라'는 지적을 받았다"며 "머리 없이 몸만 움직이라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2007년 탈북해 안보 강사로 활동한 B씨는 "강연장에서 '김씨 일가' '악마' '인권 유린한 놈'으로 불렀던 김정은을 올해부턴 '김정은 위원장'으로 하라는데 입에 담기 어려운 호칭"이라며 "자꾸 양보하다 보면 '김정은 원수님' '김정은 장군님'으로 불러달라는 요구도 들어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며칠 전 북한에 있는 친구와 통화했는데 이번 방북 공연을 계기로 북한에선 '김정은 원수님의 탁월한 영도와 선견지명으로 남조선 대통령 특사들이 찾아와 무릎 꿇었다. 조만간 장군님께서 남조선 땅을 밟게 된다'고 선전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북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조심해야

남주홍 교수는 "탈북자들은 정부가 관리하는 셈이라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입을 막는다 해도, 야당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천안함 폭침에 대해 묵묵부답하거나 얼버무리면 북한에 면죄부를 주면서 국익을 방해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담을 앞두고 주도권을 북측에 넘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좌파 참모들은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전쟁 난다'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회담 자체가 북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돼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을 못 할 위험성이 높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우리가 선의로 접근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한 나머지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며 "자칫 북한에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막는 안전판으로 삼거나,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충돌할 때 문재인 대통령을 우군으로 만들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남북 모두 판을 깰 순 없기 때문에 원론적인 수준의 비핵화 합의는 나올 것으로 본다"며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의 성패에 따라 6월 지방선거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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