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작년에 165회 강연을 했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 2018.04.14 03:01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이틀에 한번 꼴로 강연하며 먼길도 밤길도 마다 않는다
    "90까지는 공부하고 일하면서 활기있게 살자"고 호소한다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
    2017년에는 다 합해서 165회를 강연했다. 이틀에 한 번꼴이다. 시간이 허락하면 거의 다 간다. 선약이 있더라도 꼭 도와주고 싶을 땐 날짜나 시간을 바꿔서 한다. 사례비와는 관계가 없다. 내가 필요하다면 먼 길도, 밤길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아침보다는 저녁 강연이 많고 대체로 70분 길이다. 청중이 가장 많이 모였을 때는 3000명(주최 측 추산)이었다. 적을 때는 30~40명이 되기도 한다. 나는 청중이 200명 정도일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사회적 영향을 고려했을 경우 그렇다.

    1950~70년에는 안병욱 숭실대 교수, 조동필 고려대 교수와 내가 '강연계의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기업체를 위한 강연회가 많던 시절이다. 셋이서 제주도에 갔을 때 조동필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 멀리 제주도까지 와서 강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실 겁니다. 나는 괜찮아요, 20만원도 감사하지요. 그런데 같이 오신 김 교수님은 그렇게 대접하면 안 되지요. 최소한 50만원은 드려야 합니다" 해서 모두가 웃었다. 강연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가 덧붙였다. "저녁 값은 김 선생이 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 옛날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농담을 하면서도 우리는 진심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돕고 싶었다. 90세가 되었을 때 안병욱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맹물 강연을 했지요. 그다음부터는 모든 기업체가 콜라 강사나 사이다 강사를 초청하지, 우리 같은 생수는 필요가 없어졌나 봐요." 기업과 경제사회에 필수적인 윤리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노사 갈등 같은 데서 보여주는 애국심 상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나는 50대 이후의 사회 지도층이나 70대 전후 장·노년층을 위한 강연이 많아지고 있다. 큰 교회에서는 노년층을 위한 모임에 자주 나가게 된다. 옛날 제자들은 '얼마나 늙었나 보자' 하는 호기심을 갖고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연 주제는 대부분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다. 그분들에게 "90이 될 때까지는 공부하고 일하면서 활기 있게 살아보자"고 호소하곤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곳을 다녀봐도 청중에 90세 이상은 없다. 그래 보이는 사람이 있어 인사를 나누었는데 옛날 상공회의소 책임을 맡아 수고해 주었던 김상하 선생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귀가 어두워, 내 강연 내용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다는 얘기였다. 늙기 전에 좀 더 많이 강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찾아오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금년까지는 힘들더라도 강연을 계속하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되도록 지팡이는 쓰지 않기로 해본다. 보청기도 아직은 안 끼고 있다. 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말뜻을 알아듣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옆에 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사람이 가장 힘들다. 비밀 얘기였겠지만 내 실정은 배려하지 않는다.

    강연할 수 있어 기쁘다. 어려움은 있어도 그분들과 나누는 사랑 덕에 내 인생에도 보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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