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위만 보는 승부사… 위대한 사나이 위성우

조선일보
  • 이정구 기자
    입력 2018.04.14 03:01 | 수정 2018.04.21 17:09

    꼴찌로 기적을 만들다… 여자농구 6연패 달성한 우리은행 감독

    "축구는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마지막에 독일이 승리하는 게임이다."(잉글랜드 前 축구 국가대표 게리 리네커)

    한국 여자프로농구라면? '우리은행 엄살로 시작해서 우리은행 우승으로 끝나는 게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최근 6년은 그랬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통합우승(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6연패를 달성했다. 지금이야 우리은행 전성시대지만 첫 우승 직전엔 처지가 달랐다. 5승 30패, 7승 33패 등으로 바닥을 기며 네 시즌 연속 압도적인 꼴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독은 선수 폭행 사건으로 해임됐다. 표류하는 난파선 같았다. 감독 경험 없던 사람이 덜컥 이 팀을 맡았다. 초보 감독은 그 꼴찌 팀을 거듭 우승으로 이끌며 '우승청부사' '공공의 적'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달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위성우(47) 감독은 편한 '추리닝' 차림이었다. 양복을 말끔하게 입고 코트에서 호통치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위 감독은 "시즌 마치고 보름 정도가 유일하게 마음이 편할 때"라며 웃었다.

    여자 프로농구팀 우리은행은 2006년 겨울리그 통합 우승 후 7년 동안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2012~2013시즌부터 위성우 감독이 팀을 맡자 거짓말처럼 암흑기가 끝났다. 올해까지 우승 기념 플래카드 6개를 구단 체육관에 더 걸었다. 단 한 번도 다른 팀에 1위를 내주지 않았다.
    여자 프로농구팀 우리은행은 2006년 겨울리그 통합 우승 후 7년 동안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2012~2013시즌부터 위성우 감독이 팀을 맡자 거짓말처럼 암흑기가 끝났다. 올해까지 우승 기념 플래카드 6개를 구단 체육관에 더 걸었다. 단 한 번도 다른 팀에 1위를 내주지 않았다. /남강호 기자
    밟히면서도 다음 시즌 걱정부터

    우리은행 트레이드 마크는 '감독 밟기 세리머니'. 한 시즌 내내 혹독한 훈련에 시달린 선수들은 우승이 확정된 순간 감독을 헹가래치는 대신 마구 짓밟는다. 충격적이었던 그 세리머니도 반복되니 이제는 정겨워 보일 정도다.

    ―우승도, 밟히는 것도 익숙하시죠?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 익숙함을 즐기진 않아요(웃음). 돌아서면 다시 다음 시즌 걱정부터 드니까요. 제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호사다마'입니다. 우승은 하늘이 준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일 뒤에 꼭 나쁜 일도 올 것 같아서 조바심부터 나죠. 조금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병(病)이구나' 싶습니다."

    ―엄살 심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요.

    "우승을 여러 번 했지만 사실 팀 멤버는 꼴찌 하던 시절과 큰 차이 없거든요. 우리은행은 평범한 고무줄을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놓은 팀이에요. 저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올 시즌도 간신히 우승했고요."

    ―유독 올 시즌 시련이 많았죠.

    "한 선수가 부상에서 돌아오면 다른 선수가 다치고,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게 터지는 식이었어요. 아버지께서도 세상을 떠나시고 외국인 선수는 결승 앞두고 갑자기 부상을 당하고, 올 시즌은 우승하지 말라는 뜻 같았어요."

    ―그런데요?

    "시련은 계속되는데 하나하나 해결이 되더라고요, 선수들도 그만큼 더 뛰어주고요. 나중에는 '아버지께서 마지막 선물을 주셨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우리은행은 외국인 선수 막혀도 국내 선수들이 해결해줍니다. 꼴찌 시절 승부처에서 '폭탄 돌리기' 하면서 공만 돌리던 선수들이 지금은 해결사가 다 됐죠. 공 왔을 때 도망치는 선수는 없습니다."

    '된다 된다 나는 된다'

    지도자로 타고난 사람 같았다. 감독으로 우승 반지 6개는 여자프로농구 역대 최다 기록.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도 여자농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금메달. 대표팀에서도 혹독한 훈련을 시켰고, 금메달 확정된 순간에는 똑같이 밟혔다. 한 귀퉁이에 무협 소설 '신조협려' '사조영웅전'이 꽂혀 있었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대학생 때 읽었던 무협 소설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보통은 선수들 일어나기 전 새벽에 체육관에 먼저 나가서 한 시간 반 정도 코트를 계속 돌아요. 걸으면서 생각도 비우고 운동도 하죠. 두세 바퀴 돌면 다시 농구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농구밖에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농구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었던 제가 코치며 감독도 하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그 운은 그냥 온 게 아니라 노력으로 절 찾아오게 했다고 믿거든요. 농구 생각, 노력을 안 할 수 없죠."

    우리은행 ‘감독 밟기’ 세리머니가 시작된 2012~2013시즌 우승 모습. 위성우 감독은 “요즘엔 훈련 강도가 약해져 전보다 살살 때린다”며 “우승만 한다면 맞아도 좋다”고 했다.
    우리은행 ‘감독 밟기’ 세리머니가 시작된 2012~2013시즌 우승 모습. 위성우 감독은 “요즘엔 훈련 강도가 약해져 전보다 살살 때린다”며 “우승만 한다면 맞아도 좋다”고 했다. /스포츠조선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 운동하다 쓰러졌어요. 마비가 와서 재활하느라 1년 유급했죠. 단국대 때는 동기가 8명 있었는데 3학년 되니 다 그만두고 저 혼자 남더라고요. 체육 선생님이나 준비할까 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실업팀 도전까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믿기지 않게 가장 가고 싶었던 '현대전자'에서 입단 제안이 왔어요. '하면 된다'고 믿게 됐죠. 상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무릎을 다쳤는데 팀에서는 선수를 접고 매니저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어요. 끝까지 해본다고 버텼죠. 상무 전역할 때 팀에 제가 돌아갈 자리가 없었는데, 성실하게 운동하던 모습을 좋게 본 코치님이 SBS로 불러주셨습니다."

    노력 예찬론자처럼 보였다. 머리를 비울 때 읽는다는 무협 소설 옆에는 '된다 된다 나는 된다' '최고를 넘어 완벽으로' '고수의 일침' 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위 감독은 6년 연속 여자프로농구 지도자상을 받았다.

    '위'는 위만 본다, 외도는 없다

    남자 프로농구에서 그를 노린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위 감독은 "몇몇 팀에서 제의가 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 가면 분명히 실패한다"고 자신 있게 단언했다.

    ―실패를 확신하시네요?

    "준비 안 된 사람이니까요. 남자농구를 1년에 10경기는 볼까요? 자신 없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렇습니다. 오라는 팀에서 '실패해도 괜찮다'며 설득하기도 해요. 고맙지만 용납이 안 되죠. 야인(野人) 생활을 하면서 남자농구를 충분히 공부한 뒤라면 모를까, 딴짓 말고 오늘 훈련, 내일 시합에만 집중하자고 독려했던 선수나 저를 믿어주는 구단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외도 생각은 없습니다."

    ―목표는 여전히 여자 프로농구 우승인가요?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우승을 목표로 지도한 적 없습니다. '6연패 했으니 7연패, 8연패 하자' 말하지 않죠. 다만 '디펜딩 챔피언'으로 부끄럽지 않은 시합을 하자고 하죠. 당장 내일 초등학교 팀을 맡더라도 똑같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평균 13분 11초 출전에 3.4득점. 선수 시절 기록은 화려하지 않다. 선수로 억대 연봉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현재 위 감독 연봉은 약 3억원으로 리그 최고 수준이다. "연봉 3500만원으로 시작해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깎인 적 없다는 게 자부심이에요. 한눈팔지 않고 노력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선수 때나 감독 때나 그것만 반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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