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열전] "스마트콜 효과無" 천원 더 내도 '삼릉오계'는 어려웠다

입력 2018.04.14 10:00

웃돈 1000원에 택시 잡아준다는 ‘스마트 호출’
콜기피 1순위 '삼릉오계' 불러도 “안 잡히더라!”
택시기사들 “스마트 호출은 ‘폭탄’....일부러 안 간다”

‘흙비’가 내리던 지난 10일 오후 11시 40분 서울시 종로 3가. 기자는 30분 가까이 서서 택시를 겨우 잡았다.
“상계동 가주세요.”(기자)
“아, 제가 교대시간이 다 되어서요.”(택시기사)
뒷좌석에 엉덩이를 걸쳤다가 다시 내렸다.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삼릉오계’는 기피지역 1순위로 꼽힌다. 정릉, 태릉, 공릉(3릉), 석계, 월계, 상계, 중계, 하계(5계)를 뜻하는 말이다. “삼릉오계로 가는 길은 신호가 많아 운행시간이 배(倍)로 걸린다” “주거지라 빠져 나오는 길에 손님을 태울 확률이 낮다” 기사들이 주로 하는 얘기다.

택시호출 애플리케이션(카카오택시)을 열었다. 카카오택시는 이날 오후 6시부터 1000원을 추가 지불하면, 더 빠른 배차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 호출’ 서비스를 도입했다. 카카오택시 측은 “스마트 호출은 택시 기사들에게 목적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승차거부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기동팀이 12일 심야시간(자정~새벽 1시30분) 스마트 호출로 택시를 잡아봤다. 출발지는 택시민원이 가장 많다는 종로 3가, 홍대 입구, 강남역으로 정했다. 목적지는 ‘삼릉오계’.

그래픽=김란희
◇콜기피 1순위 '삼릉오계' 유료호출로 불러봐도...“안 잡히더라!”
자정이 넘은 서울 종로 3가에서는 택시잡기 전쟁이 한창이었다. 10여명의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택시호출 애플리케이션만 바라보고 있었다. 목적지가 경기 용인·서울 잠실인 장거리 손님 2명이 택시를 잡고 떠났다. 나머지 8명은 슬금슬금 도로 한복판으로 접근하더니 한 손을 쳐들고 외쳤다. “따블!따블!” “5000원 더 드릴게!”
두 배로 준다는 손님 앞에 택시가 가지런히 정차(停車)했다. 도로 곳곳에서 “XXX야, 장거리만 골라 태우냐”라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두 명의 기자는 종로 3가역 앞에서 카카오택시 스마트호출을 실행시켰다. A기자는 목적지를 중계, 공릉 등으로 설정했다. 30분 동안 “택시 배차에 실패했다”는 메시지만 보였다. 밤새워 내린 비에 양말이 젖어 들었다. 그때 A기자 스마트폰에 택시가 잡혔다. 그런데 한참이나 택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가 걸려왔다. 택시기사였다. “콜 버튼을 잘못 눌렀어요. 저는 못 갑니다.”

종로에서 택시 잡기는 실패였다. 이번에는 B기자가 강남역에서 시도했다. 다시 한번 ‘스마트 호출’. 목적지로는 정릉, 태릉, 공릉, 석계, 월계, 상계, 중계, 하계를 번갈아 가면서 찍었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택시 호출만 반복하기를 90분. 어느덧 새벽 1시30분이었다.

이 무렵 C기자는 홍대에서 태릉을 목적지로 찍어 스마트호출을 시도했다. 40분이 지나도 태릉에 가겠다는 택시가 없었다. 지나가는 ‘빈 차’를 잡기로 했다. 양 손을 겹쳤다 폈다 하면서 “태릉!” “태릉!”이라고 외쳤다. 한 대도 서지 않았다. 일단 택시를 잡고, 좌석에 앉은 뒤 목적지를 말하는 방법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태릉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자는 그제야 택시호출 앱을 끌 수 있었다.

11일 오전 1시쯤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에 서 있다./임규훈 인턴기자
◇ 택시기사들 “스마트콜은 십중팔구 ‘똥콜’...일부러 안 받는다”
‘스마트콜’은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노출하지 않는다. ‘삼릉오계’간다고 골라 태울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3명의 기자가 스마트콜 호출로 택시를 잡지 못한 이유는 뭘까. 택시기사들은 “스마트콜은 무조건 안 간다”는 대답을 내놨다.

택시기사 정모(64)씨 얘기다. “우리 택시회사에 기사가 180명쯤 됩니다. 어제 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스마트콜 잡으면 안 된다’ ‘스마트콜은 십중팔구 똥 콜(돈이 안 되는 콜)’이라는 겁니다. 목적지 가리고 들어오는 콜은 뻔하잖아요. 삼릉오계 가자는 거겠죠. 사납금(社納金) 채우려면 목적지가 보이는 ‘일반 호출’을 받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스마트호출로 손님을 태울 경우, 웃돈 1000원 가운데 기사는 600원을 가져간다. 나머지 400원은 회사가(카카오 택시)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다. 택시경력 7년의 장훤목(57)씨는 “‘삼릉오계’는 1만원 웃돈을 줘도 갈지 말지 고민되는데, 600원 더 벌려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을까. 택시업계에서는 “기사를 무조건 기피지역으로 떠밀 것이 아니라, 적정 가격대에서 승객과 흥정하도록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카카오 택시를 호출했을 경우(왼쪽)에는 승차지와 목적지가 택시기사용 어플에 표시되는 반면, 10일 시행된 스마트호출 서비스(오른쪽)는 손님의 출발지만 뜨고 배차 수락을 한 뒤에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김지현 인턴기자
당초 카카오택시는 스마트호출을 ‘우선호출(1000원)’과 ‘즉시배차(5000원)’ 등 두 가지 기능으로 출시하려 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택시요금 인상 효과를 우려, 우선호출 서비스만 할 것을 권고했다. 카카오택시 관계자는 “즉시배차 기능은 금액이 비싸지만 효과는 확실하다”며 “택시기사들도 ‘5000원 수준이면 삼릉오계같은 기피지역이라도 승차거부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법인택시는 하루 사납금 14만~15만원을 채우지 못하면 택시기사가 사비(私費)로 메워야 한다. 택시 기사들도 “결국 사납금 때문에 기피지역이라는 것이 생기고, ‘장거리 손님’을 골라 태우는 것”이라면서 “회사 측에서 사납금을 낮춰주거나, 현실적인 요금선에서 즉시배차 서비스가 시행되어야 승차거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택시기사 이모(51)씨는 “사납금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그렇지, 처음부터 승차거부하고 싶은 택시기사는 없다”며 “1000원이라면 택시기사 누구라도 기피지역엔 안 가겠지만, 5000원 정도로 올리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승객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최상진(29)씨는 “강남 살면 일반요금 내고, 삼릉오계 살면 웃돈을 내야 하느냐”며 “이럴 거면 택시요금을 왜 정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직장인 문지형(41)씨는 “급할 때는 돈을 더 줘서라도 택시 잡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다”며 “다양한 가격대로 콜을 부를 수 있다면 승객 입장에서도 편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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