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골 구조에 예술과 낭만을 담은 에펠탑

      입력 : 2018.04.13 03:00

      [미도 / MIDO]

      [미도 / MIDO]
      조선일보DB
      1938년 마르크 샤갈은 그의 창작 활동에 길이 남을 한 폭의 그림을 발표한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샤갈은 자신이 생각했던 파리 시민의 로맨틱한 일상을 한 쌍의 신혼부부를 통해 묘사했다.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방금 결혼을 마치고 키스를 하는 신혼부부의 뒤편에는 파란색 탑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탑이 바로 에펠탑이며 작품명은 '에펠탑의 신랑신부'다. 에펠탑은 마르크 샤갈뿐만 아니라 앙리 리비에르, 조르주 쇠라 등 현대 화가의 화폭과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등 수많은 예술작품 속에 등장하며 파리 시민의 일상과 함께하는 건축물로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에펠탑이 처음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때 구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세워졌으며 당시만 해도 흉물스러운 쇳덩어리로 폄하되었다. 석조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던 고풍스러운 파리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문화예술인과 지식인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 특히 당시 사실주의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이 에펠탑 2층에서 종종 식사를 했는데,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파리에서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일화는 당시 에펠탑에 대한 푸대접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 에펠탑은 이러한 비난 속에서 다른 파리 만국박람회의 기념물과 마찬가지로 1909년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그 무렵 발명된 무선 전신 전화의 안테나로 탑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해체 위기를 넘겼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문화예술가들에게 창작의 모티브를 주었고, 파리 시민들의 일상에 파고들며 파리의 명물이 되었다. 에펠탑의 지상 57m 제1전망대와 115m 제2전망대, 지상 274m 제3전망대 등에 올라 파리 시내의 낮과 밤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파리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는 처음에는 비난의 대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상징물이 된 에펠탑의 실례를 통해 무관심의 대상이라도 오랜 기간 자주 보면 정이 들며 호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상을 '에펠탑 효과(Eiffel Tower Effect)'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국의 여행자는 에펠탑을 보기 위해 프랑스를 찾고 있고, 이 탑의 전망대와 주변에서는 수많은 연인이 키스를 나누고 프러포즈하고 있다. 직선과 사선의 조화로 뜻밖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에펠탑은 그렇게 철골 구조 속에 예술과 낭만을 담으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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