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통일부 헛발질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4.12 03:16

    통일부는 지난달 통일 교육 교재 '북한 이해' 최신판을 발간하면서 북한 도발과 인권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했다. 작년까지 6·25 남침부터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을 열거하며 "북은 지난 반세기 동안 3040회에 이르는 군사 도발을 감행했다"고 적었지만, 올해는 이런 내용이 통째로 빠졌다. 인권 관련 부분은 12페이지에서 3페이지로 줄었고 '공개 처형' '정치범 수용소' 등의 표현은 모두 사라졌다. '독재'라는 말도 대부분 빠졌다. 북한이 싫어하는 내용이나 표현을 알아서 없앤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월 북 열병식에 대해 "평창올림픽과 무관하게 우연히 날짜가 겹친 것"이라고 했다. 이 정부는 북 도발이 주로 미국 독립기념일이나 중국 국제행사 개막일처럼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날에 이뤄지는 걸 알면서도 '우연'이라고 한다. '현송월이 웃거나 말하는 모습을 보도하지 말라' '(현송월이) 불편해하신다'며 우리 언론의 취재를 막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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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기 통일부는 남북 정상회담 같은 대형 이벤트만 있으면 이상하게 약을 먹거나 다리가 꼬이는 것 같은 행태를 보여 왔다. 2007년 정상회담 직전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북한) 인권 문제는 지역의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궤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상회담 직후에는 "인권 문제를 도덕적 윤리적 과제로만 해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명제에는 눈을 감았다.

    ▶통일부가 2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두 정상에게 전달할 희망 사항'을 인터넷 댓글로 받는 행사를 하면서 몇 가지 예시문을 넣었다. 그중 하나가 "군대 가기 싫어요"였다. 이는 김정은에게 '군대 가기 싫다'는 말을 전해 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인터넷에는 '지금은 휴전 상태인데 정부 기관이 제정신으로 국방 가치를 깎아내리느냐' '국세청이 세금 내기 싫다는 글을 올린 것과 같다' '통일되면 더 강한 군대가 필요한 데 무슨 소리냐' 등의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통일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통일부더러 북한 대변인으로 나서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지금 통일부는 어떤 상태이길래 '군대 가기 싫다'는 예시문 하나 거르지 못하나. 통일부는 10년 전 대북 퍼주기에 앞장서다 부서가 없어질 뻔한 위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헛발질을 계속한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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