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야당 福' 있던 대통령

입력 2018.04.12 03:14

前 정부, 갈라진 野黨 덕에 선거 연승하다가 오만에 빠져
대통령 지지율만 믿는 現 정권… 여봐란 듯 '적폐' 반복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형을 선고한 1심 판결문을 읽다가 생각이 다다른 곳은 2014년 지방선거였다. 최고 권력자 자리에서 몇 달 만에 중범죄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를 더듬던 참이었다.

4년 전 6월 지방선거 결과는 의외였다. 선거 전만 해도 여당(새누리당) 표정은 밝지 못했다. 집권 초 인사 실패 여파가 가시지 않았고, 4월에는 세월호 사고까지 터졌다. 선거 전문가들 예상은 '여당 완패'였다. 그런데 투표함을 열어보니 여당은 지지 않았고, 야당은 이기지 못했다. 세월호만 물고 늘어진 야당의 전략 실패였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오다니….' 여당은 표정 관리를 했다. 한 달여 뒤 7·30 재보선 결과에 여권은 더 우쭐했다. 11대4의 압승. 나경원이 야당 텃밭 동작에서 이기고, 이정현이 호남에서 의원이 됐다. 총리 인사 실패 등 정권은 잘하는 게 없는데 선거는 이겼다.

야당의 공천 실패가 주원인이었다. 다음해 4월, 재보선에서도 여당은 완승했다. 이번엔 친문(親文)과 비문(非文)으로 갈라진 야당 덕을 톡톡히 봤다. 지금 감옥에 있는 당시 여권 핵심 몇몇은 사석에서 "박 대통령은 야당 복이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곤 했다.

잘하는 게 없는데도 선거에서 늘 이기자 청와대 사람들 얼굴에 오만(傲慢)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무성 유승민 등 여당 내 비주류와도 연일 날을 세웠다. "총선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는 대통령 말은 꼭짓점이었다. 야당 덕에 선거에서 이겨 버릇한 여당은 2016년 4월 총선도 당연히 압승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참패했고 졸지에 제2당이 됐다. 국회에서 방패를 잃은 청와대는 속절없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정권이 거덜나고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굴욕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당연해 싱거운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견제받아야 할 때 견제받지 못한 권력은 오만해지고, 오만한 권력은 반드시 망한다.'

'오만 지수'라는 게 있어 측정이 가능하다면 문재인 정권의 그것은 최근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것 같다. 참모들 언행을 보면 안다. 정권을 비판하는 신문을 향해 기자 출신 청와대 대변인이 "기사 쓸 게 없는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다.

방약무인했던 전 정부 초기 청와대 대변인조차 그런 식으로는 얘기하지 않았다. 국민이 적폐 청산에 찬성하는 이유는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봐란 듯 적폐를 되풀이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전 정권보다 심하단 생각마저 든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선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게 멋대로 면죄부를 주는 행태는 오만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북핵 대화 국면이 안개처럼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이 정권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경제·교육·환경 등에서 헛발질만 하는데 대통령 지지율은 70%다. '누가 우리를 욕해' 하며 우쭐대는 청와대 참모들 표정이 지지율 곡선 너머로 오버랩된다. 그런데 두 달 뒤 지방선거에서 이런 여권을 견제하는 일이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한심한 야당들 때문이다. 지금 청와대 참모들도 "우리 대통령은 야당 복이 있어" 하지 않을까 싶다. 집권 세력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오만 지수'는 더 치솟을 것이다. 이후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조차 유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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