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당서 불어오는 화려한 변화의 바람

입력 2018.04.12 03:01 | 수정 2018.04.12 13:58

[2018 전라도 방문의 해]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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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 입구에 있는 펭귄마을. 생활사를 반추해볼 수 있는 생활소품들로 골목을 꾸며놓아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광주시 제공
"이리 와서 카메라를 보세요. 이렇게 폼이 나잖아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동명동 골목을 잇는 한일자형 브릿지(플라자 브릿지)에서 모델 사진을 촬영하고 있던 젊은 카메라맨은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라고 했다. 모델 연습생 윤서인씨도 "이곳은 분위기 있는 사진을 잡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어느덧 문화전당 앞은 젊은이들의 광장으로 변했다. 전당이 들어선 이후 불과 2년여만에 광주의 도심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광주 곳곳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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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18민주광장이라 불리며 1980년 5월 당시 함성이 뜨거웠던 그 분수대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현대사를 증언하는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옛 전남도청 공간은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공간을 젊은이들은 활기롭게 오가고 있었다. 젊은 여성 둘은 번갈아 스마트폰에 얼굴을 담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는 주말을 도심 속에서 즐기고 있었다. 희끗한 머리의 노년은 롤러 브레이드를 힘차게 굴리고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 손잡은 이들도 많았다. 출입구 계단에서 "가위, 바위, 보"를 소리치며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옛 도청 본관 뒤 공간은 깊숙하게 파내 하늘을 향해 툭 트인 광장이었다. "이곳이 옛날 전남도청이 있었던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1980년 5월의 공간이 이렇게 변화했습니다." 대학생 10여명이 안내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문화전당은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어린이문화원, 예술극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선 연중 전시, 공연, 교육, 축제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16만㎡의 부지에 자리한 문화전당은 시설물 90% 정도가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빛과 나무만이 보이게 하여 '빛의 숲'을 체감토록 하는 설계자의 의도였다. 이곳에서 가장 '핫'한 곳은 어린이문화원. 어린이들에게는 낙원과도 같다. 신나게 타고 보고 느껴보는 다양한 직·간접체험이 교육적으로 잘 구성돼 있다. 한 해 동안 문화전당을 찾은 이들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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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동 카페골목.
동명동 골목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동리단길'. 골목이 서울 경리단길과 비슷하다며 붙여진 이름이다. 한 때는 광주에서 가장 부자들이 살았던 도심 주택가였던 동명동이 젊은이들의 거리로 변했다. 전당이 생기고 난 뒤부터였다. 학원가로도 부상했던 이곳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며, 카페골목과 공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원수가 아름다운 고급 주택이 탁 트여진 이국적 풍광의 레스토랑으로 변해 있었다. 담장 너머 보기 힘들었던 정원수는 누구나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로 멋지네요." 그 주택 1~2층은 젊은이들이 모여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전당쪽 골목이 확 트여 있었다. 입구쪽 커피숍에 들어가면 전당과 광장, 금남로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당과 동명동 골목입구 가운데는 큰 주차장이 들어섰다. 옛 광주여고 터 담벼락을 없애고, 600대까지 세울 수 있는 대형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 베트남·중국·일본·하와이 등 서양 음식점, 빵집, 국숫집, 게스트하우스, 작은 책방들, 옷가게 등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즐비하다. 광주동구는 "저녁에는 업소마다 젊은이들로 붐빈다"고 말했다. 업소가 100개를 넘어섰다. 도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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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이장우 가옥.
양림동·펭귄마을

전당에서 서쪽 광주천을 건너면 양림동 방면. 이곳은 서양 선교사들이 포교하면서 개화 물결을 일으켰던 곳이다. 선교사들이 터를 잡고 사택과 교회, 학교(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병원(제중병원·현 기독병원)을 세웠다. 지금도 그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광주 최초로 교회(양림교회)가 들어섰다. 광주의 근대화와 일제강점기 사회운동의 중심지였다. 그런가하면, 가장 전통적인 양반가옥들(이장우·최승효 가옥)도 남아있다. 다형 김현승 시인이 살며 시를 썼다. 문인·화가들이 정진하던 곳이었다.

"이렇게 (생활소품을) 모아놓으니 과거와 고향을 생각나게 해주네요."

경기 평택에서 온 강희정씨는 올케와 함께 양림동 앞쪽 펭귄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강씨는 "양림동과도 잘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고 했다.

주택가 '펭귄마을'은 부챗살처럼 퍼진 골목길 300m를 따라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벽에는 소박한 시와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곳곳에 오래된 시계, 신발, 그릇이 걸려 있었다. 시간을 떠난 물건들이 이젠 작품이 됐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만들어 걸어놓은 소품도 있었다. 빈터와 텃밭에는 생활용품이 가득했다. 작은 TV와 라디오, 장독, 의자, 바구니, 가스통, 솥, 어린이책 등 생활소품은 모두 있는 듯했다. 버려진 생활용품으로 만든 공예 작품이 놓여 있다. '멈춰 버린 당신의 꿈이 지금 시작됩니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는 액자도 보였다. 펭귄마을 촌장 김동균씨는 "동네에 불타고 그을린 집이 있어서 소품으로 가리려 시작했었다"고 말했다. 수십년 생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었다. 한 해만도 30만명 넘게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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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송정역시장.
1913송정역시장

송정역시장 골목 한 가운데는 작은 광장이 있다. 광장옆에는 광주송정역을 오가는 기차들의 시간표가 항상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짧은 시간이라도 시장 골목 '배회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젊은이들에겐 유익한 정보제공처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겁게 얘기하는 청춘들을 항상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인기를 끌 줄은 정말 몰랐지요." 김인섭 상인회장은 "로또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호남의 관문 광주송정역앞에는 송정역시장이 있다. 일제강점기던 호남선 개통과 함께 송정역앞에 섰던 매일시장이 '젊은이들의 거리'로 확 변했다. 170m밖에 되지 않는 일자형 거리엔 양갱, 부각, 빵, 상추튀김, 국수, 칼국수, 만두, 추어탕, 국밥, 어묵, 수제맥주, 커피, 계란밥, 독일식 족발과 소시지, 동파육, 보리밥, 닭강정 등 가게가 즐비하다. 갓 구운 빵을 파는 가게는 줄지어 기다린다. 수제 맥주집은 항상 떠들썩하다. 한산하기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던 곳이 이 시장이었다. 지난 2016년 시장을 확 바꾸었다. 골목에 엉켜있던 전선들은 모두 땅속에 묻었다. 질척이던 골목 바닥은 사각형 벽돌을 깔았다. 시장 입구, 업소 입구 바닥에는 가게의 최초 입점 연도를 동판으로 새겼다. 옛 사진들도 하나씩 걸었다. 기존 업소에는 역사를 입혔다. 방앗간, 제분소, 국밥집, 젓갈집, 고추상회, 떡집, 닭집, 한과집, 국수공장, 굴비가게 등 새로운 시장의 변화에 동참한 업소들은 안팎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그러자, 젊은이들이 몰려왔다.

아시아문화전당관광안내소 (062)601-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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