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저 사람 연예인인가 봐. 그런데 누구지?"
그가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큼직한 이목구비, 모델 같은 큰 키(188㎝)가 그럴 법했다. 외모 관리를 따로 받느냐고 묻자 남자가 수줍게 답했다.
"땀 흘릴 일이 많아서 화장품도 잘 안 바릅니다. 탄 얼굴 좀 보세요(웃음). 연예인이 아니라 야구 선수로 성공하려고 한국에 왔습니다."
프로야구 NC 왕웨이중(26)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왕웨이중은 2018시즌 초반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운' 투수다. 'KBO리그 1호 대만 출신 선수'의 타이틀을 단 그는 3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 평균자책점 1.71(리그 전체 3위)을 기록했다. 2013년 1군 참가 이래 외국인 선수 영입 '불패(不敗)' 행진을 이어가는 NC구단의 새로운 '야심작'이다.
무엇보다 공격적인 투구가 인상적이다. 좌완 투수로 시속 150㎞가 넘는 공을 던지면서 볼넷은 21이닝 동안 단 2개만 내줬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왕웨이중은 "볼넷을 내주느니 안타 맞는 게 더 낫다"며 "속전속결을 좋아하는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내 야구 스타일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7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버텼다. 메이저리그 출전은 22경기(모두 구원 등판)가 전부다.
"전 원래 선발투수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펜으로 밀려났죠. 선발로 뛸 수 있는 한국에서 맘껏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대만 리그에서 뛰고 있는 친형 왕야오린이 동생의 한국행 소식을 듣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왕웨이중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이곳이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선수 경기 영상을 자주 봤어요. 이승엽·이대호·김광현·김태균… 황재균과는 지난해 트리플A에서 맞붙었습니다."
한류 드라마를 보며 한국 문화를 간접적으로 예습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는 "특히 배우 이민호가 나온 드라마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푸른 바다의 전설'을 모두 챙겨봤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외모가 살짝 이민호를 닮았다. 김치를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는 왕웨이중은 특히 삼겹살·삼계탕을 즐겨 먹는다.
왕웨이중은 마운드 위에선 '상남자'지만 경기장 밖에선 아직 '소년'이다.
"매일 아침 가족 단체 채팅방을 통해 대만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드려요. 가끔 제가 늦잠 자는 날엔 어머니가 꾸짖기도 하시는데,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에요(웃음)."
지난 2월 왕웨이중의 흡연 사실이 국내 언론에 알려지자 그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어머니는 내가 담배 피우는 거 모르시는데 이제 어쩌느냐"는 말이었다고 한다. 팀 동료와 팬들은 왕웨이중을 '왕서방'이라고 부른다. 그는 "친근한 표현이지 않나. 나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뜻이니 이만큼 영광스러운 별명도 없다"고 말했다.
왕웨이중의 선전에 힘입어 최근 NC와 연고지 창원시, 항공사 에어 부산은 '왕웨이중 여행 상품' 개발에 나섰다. 대만 내 KBO 중계 협상도 진행 중이다. 왕서방 덕분에 '야구 한류'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왕웨이중은 "솔직히 부담이 크다. 결국 내가 계속 잘해야만 좋은 분위기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빅리그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없을까. 그가 답했다.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잘하는 것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제게 기회를 준 한국에서 '코리아 드림'을 이루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