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파업 중입니다” 샤넬 판매사원이 유니폼 벗어던진 이유는

입력 2018.04.10 14:32 | 수정 2018.04.10 15:50

화장품값 2.4% 올린 샤넬, 직원 70% 최저임금 못 미치는 급여 받아
고강도 서비스에 꾸밈 노동까지... “노동 조건 바꿔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샤넬 화장품 매장에 놓인 파업 안내 POP/김은영 기자
“저희는 지금 쟁의행위 중입니다.”

9일 강남의 한 백화점, 샤넬 화장품 매장에 들어서자 낯선 복장의 판매원들이 눈길을 끈다. 평소 같으면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었을 판매사원들이 청바지에 니트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손님을 맞았다. 가슴엔 샤넬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명찰이 걸려 있다.

“고객들은 불편하겠지만, 저희의 상황을 알리는 방법이 이것뿐이었어요. 어떤 서비스업보다 노동강도가 센데, 대부분 직원이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고 일합니다. 다른 화장품 업체 노조도 같이 파업을 시작했는데 회사와 협상을 맺었고, 이제 저희만 남았어요.” 샤넬 직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유니폼을 벗고 수수한 화장을 한 그의 민낯이 너무 앳돼 보여 새삼 놀라웠다.

◇ 샤넬 판매사원, 복장 시위 나선 이유는?

9일 샤넬 노동조합에 따르면 300여 명의 판매사원으로 구성된 조합원들은 지난달 25일 부분 파업을 시작으로 17일째 복장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파업의 내용을 소개하는 POP(매장 전면에 설치하는 광고물)를 매장에 설치하고, 유니폼 대신 사복과 ‘임금인상’ ‘인원충원’ 등의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일한다. 샤넬 판매사원들이 파업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는 브랜드 명성에 걸맞은 합리적인 임금과 근로 환경을 제공할 것을 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샤넬 노조에 따르면 전 직원의 70%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기본급을 받고 일한다. 올해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이마저도 일부 직원만 연말 성과급을 기본급으로 전환해 ‘꼼수 인상’이란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3일과 4일, 두 차례 열린 노사 협상에서 노조는 0.3%의 임금인상률을 제시했다. 1인당 평균 월 6000원, 연간 7만2000원에 달하는 수준이지만, 사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파업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노조가 문제 삼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채 노동시간만 줄여, 노동 강도가 더 세졌다는 것. 작은 매장의 경우 한 명의 직원이 매장의 개장과 마감을 맡아, 청소와 재고·매출 확인까지 책임지다 보니 업무 마담이 커졌다.

단정한 용모와 복장을 요구하는 엄격한 ‘그루밍 룰(몸치장 법칙)’도 위법이라 주장한다. 완벽한 색조 화장과 매니큐어, 머리 모양 등 회사가 지시하는 용모 규정을 지키기 위해선 출근 시간보다 30분~1시간 일찍 출근해 ‘꾸밈 노동’을 해야한다고. 한 판매사원은 “명품이란 이름에 걸맞게 서비스 교육을 엄청나게 시키고 꾸밈 노동까지 강요하면서, 마트보다 급여가 적다”며 허탈해했다.

◇ 회사는 잘 나가는데, 판매사원은 최저임금도 못 받아

샤넬은 올 초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화장품 가격을 평균 2.4% 인상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샤넬이 홍대에 연 팝업스토어 ‘코코 게임 센터’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소연 샤넬 노동조합 위원장/샤넬 노동조합 인스타그램
다른 수입 화장품 업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에스티로더, 맥 등을 수입 판매하는 엘카코리아 노조 1000여 명도 샤넬 노조와 함께 파업을 시작했다가, 사 측과 협상이 타결돼 파업을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직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한 직원은 “예전에 동료가 고된 업무에 시달리다 아이를 유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후로 근로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화장품 업계의 매출 의존적인 임금 제도를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화장품 판매사원의 임금은 보통 기본급과 변동급(인센티브와 초과근무수당)으로 구성된다. 경력에 따른 호봉도 인정되지 않는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시행 이후 근무시간이 줄어 초과근무가 발생하지 않는 데다, 백화점 매출이 떨어지면서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도 줄었다. 그는 “백화점 매출이 점점 줄고 있지만, 회사는 목표 금액을 높게 잡아 인센티브를 받기 어렵게 한다. 매출 압박은 크고, 근로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다. 경력에 따른 호봉을 인정하는 등 임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샤넬 노동조합은 직원들의 노동과 실질 임금을 고려해 사 측과 협상을 지속할 방침이다. 또 오는 14일에는 ‘샤넬과 그의 친구들 토크’라는 제목으로 문화제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소연 샤넬 노동조합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직원이 브랜드에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샤넬’이란 명성이 주는 자부심이 아닌 나의 일터로서 자랑스러운 회사가 되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제품 가격을 인상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 본사가 정한 글로벌 가격 정책에 의한 것”이라며 “노조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원만한 협상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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