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⑭] 한용섭 "김영철, 과거 회담때도 말장난...약점 노출 말라 "

    입력 : 2018.04.09 21:00

    한용섭 국방대학교 교수가 9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승식 기자
    한용섭 국방대학교 교수는 9일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과거부터 항상 그래 왔듯 핵 시설 일부를 동결하겠다는 것”이라며 “더 이상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면 안 되고 ‘검증 가능한 핵 폐기’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이날 서울 용산구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비핵화선언 등을 하며 너무 일방적으로 북한을 믿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비핵화 공동 선언을 하면서 분량은 A4용지 반 페이지밖에 안 됐는데, 말로만 비핵화를 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검증 가능한 폐기를 하지 않고 무슨 비핵화를 했다고 할 수 있겠나”라며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장하는 단계적 접근은 현 상태를 그대로 지속하자는 말장난이며, 숨겨진 시설 전부를 포함한 검증 가능한 핵 폐기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핵화라는 용어는 너무 낡았고, 신뢰할 수 없다”며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 폐기하고 핵 폐기라는 새로운 용어를 써야 협상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북한이 상황에 몰려 핵 폐기를 하더라도 ‘수틀리면 핵무기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며 “핵무기를 만드는데 일했던 과학자들을 민수(民需)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핵 폐기 협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평화롭지 않게 만든 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미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평화는 그냥 오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최근 남북 대화 협상의 핵심으로 떠오른 김영철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주도면밀하고 표리부동한 사람이었다”며 “겉과 속이 정말 다른 사람으로 핵을 만들면서도 핵을 만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회담장에서도 서슴없이 말장난을 해왔다”고 했다.

    다음은 한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1991~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당시 우리 측 실무 회담 멤버였다.

    “당시 우리 정부가 담당했던 핵통제공동 위원회의 전략수행원으로 실무 회담에 참가했다. 외교부 북미국장이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협상단의 일원이었다. 이때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우리를 속이는 장면을 생생히 다 봤다. 당시에도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했지만, ‘비밀리에 핵을 만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건 무슨 뜻인가.

    “북한이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핵무기를 만들 것이라고 봤다는 말이다. 당시 비핵화 선언에는 원칙적인 말만 있었다. 그 선언을 정말 지키는지, 비핵화 관련 합의를 이행하는지 등 ‘검증’에 대한 조항은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비핵화 선언을 해놓고도 플루토늄탄을 만들었다. 1994년 미국과 북한 간의 제네바 합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합의문에 핵을 ‘동결’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기존에 만든 플루토늄 탄을 폐기한다든지 내지는 우라늄탄을 안 만든다든지 그런 조항이 없었다. 일단 동결은 합의했지만, 검증 관련 조항이 하나도 없다. 그냥 선언만 계속 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그런 선언을 합의해준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회담을 할 때는 ‘합의를 하면 지키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감이 많았다. 당시 노태우 정부 때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가 모두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일단 선언적 합의를 하면 남북한 교류협력이 활성화된다고 봤다. 북한이 전체 공산권이 붕괴하는 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 봤다. ‘우리와 관계를 개선한 뒤 경제협력을 하면서 자기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 ‘핵이라는 국제적인 문제를 설마 벼랑 끝까지 가지고 가겠는가’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북한을 믿었던 것이다. 당시 비핵화 공동 선언은 A4용지 반 페이지밖에 안 된다. 말로만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것을 위반했을 경우에 벌칙을 준다든지, 또 그것을 지키는지 검증하는 그런 조항이나 별첨된 부속 문서가 하나도 없었다.”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에 선언문에 사인을 한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정권이 5년이니까 5년 안에 큰 탈만 안 나고 그대로 유지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다. 우리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니 그 짧은 기간 동안 한반도가 안정되고 겉으로는 평화로우면 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생 집권하는 체제인 북한은 다르다. 우리는 북한 핵 문제를 너무 중·단기적인 정치적 목적에 기반해 다룬다. 그게 근본적인 북한과의 차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미국 정부도 길어야 8년 정도 유지된다. 집권당이 바뀌면 정책도 180도 바뀌어 버리고, 북한도 그걸 알고 있다. 결국 미국 역시 당을 초월한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서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한다.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북한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은 힘의 차이가 크지만, 협상에서 만나면 일대일이다. 거기다가 한쪽(북한)은 능수능란한 무법자다.”

    -당시 협상과 지금 대화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지금 북한은 핵무장 국가가 됐다. 나는 북한 핵무기가 김정은 때만 열심히 만들어서 완성된 것이 아니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집요함으로 건설된 것으로 본다. 북한은 핵무장 교향곡 완성을 앞두고 있다. 1악장은 김일성이 운을 띄웠고, 2악장은 김정일이 핵실험을 두 번함으로써 이어나갔다. 3악장은 김정은이 핵보유국임을 선포를 한 뒤 핵보유국 지위를 영구화하고, 북미 핵 대결 시대로 진입을 선언함으로써 완성됐다. 이제 마지막 제4악장이 남았다. 북한의 핵 무력을 인정하고 끝날 것이냐, 아니면 북한이 핵 무력을 정말로 폐기하고 끝날 것이냐는 앞으로 펼쳐질 정상회담에 달렸다.”


    도종환(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영철(오른쪽) 노동당 부위원장과 지난 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합동 예술 공연에 입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금 남북 대화의 전면에 선 김영철도 당시 회담에 나오지 않았나.

    “1991년 회담에는 김영철이 1성 장군으로 참석했었다. 당시 김영철은 회담 전문꾼이었다. 워낙 말도 잘하고 주도면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영철이 최근 ‘내가 남측에서 천안함 사건의 주범으로 불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우리 측을 조롱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김영철은 옛날부터 주도면밀하고 표리부동한 사람이었다. 겉과 속이 정말 다른 사람이었지만, 머리는 굉장히 좋았다. 핵을 만들면서도 핵을 만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회담장에서도 서슴없이 말장난을 해왔다. 1991년 회담 당시 우리 측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비핵화를 위해 동시에 비슷한 시설을 서로에게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그때 김영철이 ‘의심 동시 해소 원칙’이라는 기괴한 카드를 들고 나왔다. 북한은 영변 1곳에서만 핵을 개발하고 있고 미국 전술 핵무기는 모두 철수했으니, 영변 1곳을 보여주면 미군기지 100곳을 동시에 보여달라는 논리였다. 세계 협상 교과서 어디에도 없던 말이었다.”

    -이번에 김영철이 썼던 화법도 그동안 계속 써왔던 말장난의 하나라는 건가.

    “그렇다. 예를 들면, 김영철은 우리 측 협상 대표들이 2년 이상 똑같은 사람들이 안 나가고 바뀌는 점을 이용해서 기선을 잡아왔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협상에 나오다 보니 우리 측 대표를 보면 ‘어이! 공부 좀 하고 오시오’라고 말하고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부 좀 하라’고 하면 화가 나지 않나. 그것을 노리고 화가 나게 만들어서 우리 측에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걸 약점 잡아 협상에 유리하게 이용해왔다. 주도면밀하게 약점이 보이면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국제 공동 조사단이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고 했는데, 한 사람이 말장난한다고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김영철의 그런 성격을 볼 수 있었던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나.

    “1991년 당시 군사분과 위원회의 대표급이었던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당시 준장)의 에피소드가 있다. 북한의 1성 장군이었던 김영철이 회담 파트너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도 급을 맞춰 1성 장군을 내보냈었다. 문제는 당시 같은 1성 장군을 북한은 소장, 우리는 준장으로 부른다는 것이었다(우리 군에서는 2성 장군을 소장이라 부른다). 김영철이 이를 노리고 박 전 차관을 보더니 다짜고짜 ‘박 준장!’이라고 불렀고, 우리 측에서는 ‘그렇게 계급을 부르지 마라’고 수차례 항의했다. 이렇게 3달 동안 기 싸움을 했고, 나중에 청와대에서는 ‘김영철이 뭐라고 하면 좀 대꾸를 하라’고 까지 했다. 결국 우리 측에서 박 전 차관을 소장으로 진급시켜줬다. 그 이후에 김영철이 ‘박 장군을 우리가 진급시켜줬으니, 한턱 내라’고 하더라. 회담에서는 예의를 지켜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 열릴 남북·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한쪽짜리 선언문만 나올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는 다르다는 것이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제네바 합의, 9·19 공동 선언, 10·3 합의 등을 보면 북한은 비핵화라는 단어를 ‘동결, 폐쇄·봉인, 불능화’ 등 말장난 식으로 조금씩 바꿔 해석해왔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모두 ‘핵 시설 가동중단’이었다. 심지어 숨겨둔 비밀 시설은 제외하고,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북한이 IAEA에 신고한 시설들만 가동을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언제든지 핵 시설에 붙인 ‘봉인’이라는 테이프를 떼고 다시 핵 시설을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뒀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된 지금은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면 안 된다. ‘검증 가능한 핵 폐기’라는 말을 써야 한다.”

    -최근 미국이 주장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말인가.

    “CVID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인 존 볼턴이 2003년 부시 행정부 때 처음 사용한 용어다. 당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너무 엄격한 사찰제도’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볼턴의 이 주장을 2005년 폐기하고 이보다 완화된 개념을 북한과의 핵 협상 테이블에 들고 나왔다. 당시 북한에 핵 폐기를 양보해버린 게 큰 실수다. 지금은 북한이 6번의 핵실험을 했다. 플루토늄탄 우라늄탄은 물론 수소탄까지 다 가지고 있다. 이제는 검증 가능한 폐기를 안 하고 무슨 비핵화를 했다고 할 수 있겠나. 숨겨진 시설을 전부 포함해 핵실험 장소까지 모두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검증 가능한 핵 폐기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장하는 단계적 접근은 현 상태를 그대로 지속하자는 거다. 그런 말장난에 넘어가면 안 된다. 이제는 진짜 검증 가능한 ‘핵 폐기’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한용섭 국방대 교수./양승식 기자
    -비핵화라는 표현을 관습적으로 썼는데, 이제는 이 표현 대신 ‘검증 가능한 핵 폐기’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말인가.

    “비핵화라는 용어는 너무 낡았고, 신뢰할 수 없다.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북한이 주장하는 ‘가동 중단’ 임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용어를 써야 이제 협상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수백곳에 달하는 북한의 핵 시설을 전부 검증·폐기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미국과 구소련 간에 있었던 중거리 핵미사일 폐기협정이 그 좋은 예다. 당시 미·소는 1986~1987년 2년여의 협상 끝에 중거리 핵무기 폐기 협정을 맺었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폐기하는지 안 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 검증 의정서까지 같이 맺었다. 미국의 상주 감시관이 소련에, 소련의 상주 감시관이 미국에 들어갔고 소련은 1846개, 미국은 846개의 중거리 핵무기를 폐기했다. 이제 곧 미·북 협상을 하게 되는데, 북한이 이런 진정성 있는 핵 폐기를 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실의 순간’이 온 것이다. 김정은이 말장난을 한 것인지, 자신들이 말하는 ‘비핵화’를 통해 현재의 긴장 국면을 모면하려 한 것인지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정말로 핵 폐기 의사가 있느냐’고 따질 것이다. 핵 폐기 의사가 확인되면 검증 가능한 핵 폐기 체제를 만들자는 내용을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집어넣고 국무장관 등이 오가는 고위급 회담을 해서 완전하고 포괄적인 핵 폐기 협정이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협상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은 북한에 핵 폐기 반대급부로 무엇을 줄 수 있나.

    “기본적으로 이번 협상은 비대칭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폐기다. 그런데 북한이 요구한다고 해서 미국의 핵무기를 폐기하겠나. 그것은 안 된다. 북한은 경제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이란의 핵 협정을 보면 미국뿐 아니라 여러 외부의 국가들이 이란에 부과한 경제 제재를 모두 중단하는 조건으로 비핵화가 이뤄졌다. 이런 식으로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경제 제재 해제가 첫 번째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재를 완벽히 계속 해야 한다. 다만 한가지 문제는 북한이 지금 당장 핵 폐기를 약속하고, 실제로 폐기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수틀리면 핵무기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자신들이 지금은 조금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핵을 만들었던 인적 자원(과학자)이 있으니, 현재 핵을 없애도 1~2년 만에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인가.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러시아까지 포함한 4개국이 미국과 협정을 맺어서 ‘협력적 위협 감소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전력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당시 우크라이나 등에 있는 핵무기를 폐기했고, 미국이 비용도 부담했다. 그러면서 핵무기 생산에 종사하던 과학자들을 민수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했다. 핵 폐기라는 말 안에는 핵무기를 만드는데 일했던 과학자들을 민수용으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완벽한 핵 폐기가 된다.”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식 해법은 어떤가.

    “여러 언론에서는 미국이 리비아식 해법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미국은 리비아식 해법을 머릿속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이 염두에 둔 모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식 해법이다. 핵무기 개발 초기 단계였던 리비아와 달리 남아공은 핵무기를 6개 만들었다가 전부 폐기했다. 핵보유국에서 비핵국가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이 희망하는 것은 이런 모델이다.”


    지난해 2월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연례총회에서 연설하는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연합뉴스
    -남아공은 미국의 우방국이었기 때문에 북한과 경우가 다른 게 아닌가.

    “당시 남아공 역시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제재를 받았다. 다만, 남아공은 넬슨 만델라의 등장으로 흑인정권이 집권을 하게 되자, 백인정권이 흑인정권 손에 핵무기를 넘기느니 폐기하는 선택을 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남아공 사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입회 하에 모든 핵무기를 폐기한 사실상 유일한 사례다.”

    -북한이 경제 제재 해제를 넘어 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 정권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옛날보다는 우리가 조금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하고, 또 그만큼 양보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네바 합의 당시를 돌아보면, 1994년부터 한·미 연합훈련이었던 팀 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했다. 제네바 합의의 이행을 위한 여건을 조성한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우리가 훈련을 안 하게 되면, 다음에 재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재개를 하려면 이름을 바꿔서 해야 한다. 반면 북한은 그 반대 급부로 핵무기를 안 만들겠다고 해놓고는 만들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북한이 조건으로 걸고 나온다면, 그에 상응하는 중간 조건을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은 일각에서 단계적인 협정 얘기를 한다. 굳이 단계적으로 하려면 그 첫걸음은 핵 시설 사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네바 합의 때도 미국은 초반에 특별 사찰을 요구했다가 북한이 ‘최후의 순간에 하겠다’고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더 이상 그런 수에 넘어가면 안 된다. 포괄적 핵 폐기 협정을 만들고, 그 첫 단계로 핵 시설 물질과 제조 회사, 실험 장소 등을 다 신고하라고 해야 한다. 이런 기초 사찰은 60~90일 사이에 마칠 수 있다. 최소한 이 기초 사찰을 마치는 조건으로 경제 제재 중단이나 연합 훈련 중단 등을 얘기할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반도를 평화롭지 않게 만든 게 누군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어서 그런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지 않았으면 평화가 이미 왔다. 평화협정 이런 얘기는 이미 한물간 이야기다. 평화협정은 예전부터 북한이 ‘이제 평화가 왔으니 주한미군은 나가라’ ‘전쟁이 이제는 끝났으니 주한미군은 나가라’는 논리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주한미군이 나가면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좋아할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미북 관계,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 평화는 그냥 오는 거다.”

    -현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현실적으로 핵 동결을 먼저 하고 핵 폐기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해서, 동결만 하고 끝내버리면 우리만 손해다. 역사적으로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세번의 협상에서 실패했지 않나.”

    -그런데 현 정권의 외교·안보 자문단 면면을 보면 다소 편향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 정부의 잘못을 꼬집으며 선거 공약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집권 후의 외교 안보 정책은 그러면 안 된다. 후보 시절의 선거공약용 외교안보정책은 재고되어야 하며, 인사에서는 탕평책을 해야 하듯 외교 안보 분야에선 아이디어 탕평책을 써야 한다. 북한 측에서는 협상장에 핵 관련 이슈를 20~30년 다뤄본 사람들과 전문가가 나오는데, 우리는 한쪽의 시각을 가진 인사만 나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생각이 맞지 않는 인사를 중용하지 않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다 열어 놓고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나.”

    -또 한가지 변수는 중국이다. 대북 제재에 참가했었던 중국이 최근 김정은의 방중 이후 대북 제재를 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까지 겹쳐 북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미·중은 아직 경제 문제와 북한 문제를 따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찬성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라는 카드를 이용해서 중국의 입지를 재확인하고, 현재의 위기 상태를 진성시켜서 상황을 길게 끌고 가고 싶어한다. 지금까지 만나본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한·미·북·중 4자 회담을 상당히 지지하고 있었다.”

    ☞한용섭 국방대 교수 :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국방부 민간 공무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군비통제관실 핵 정책담당관, 핵 통제공동위원회 전략수행요원, 유엔 군축연구소 선임객원연구원, 국방부장관 정무비서관,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국방대학교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소장과 부총장을 거친 뒤 현재 교수직을 역임 중이다. 국방부 핵 통제공동위원회 수행요원 시절(1992년)에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핵통제공동위원회 협상에 참가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 ‘국방정책론’ ‘자주냐 동맹이냐’ 등이 있으며, 신간 ‘북한 핵의 운명’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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