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의 스타일+] 영화 주인공처럼 트렌치코트 입는 법

  • 김의향 패션칼럼니스트

    입력 : 2018.04.09 10:37

    전쟁 생존복에서 영화 속 미장센이 된 트렌치코트
    오드리 헵번부터 켄달 제너까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입어볼까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스카프와 선글라스로 세련된 트렌치코트 룩을 선보인 오드리 헵번/다음 영화 제공
    8천5백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닐며 가장 영향력 높은 영 패셔니스타로 등극한 켄달 제너. 얇은 블랙 스웨터에 스키니 진과 새하얀 스니커즈를 매치하고, 긴 검은 가죽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패션쇼장을 향한다. 한국의 톱모델 아이린은 드레스처럼 길게 펄럭이는 파란색의 롱 트렌치코트에 크림색 앵클 부츠를 신고 뉴욕 거리를 빠르게 걸어간다.

    최근 패셔니스타들의 일상 패션을 쫓는 파파라치들의 사진 속에서 트렌치코트가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켄달 제너, 지지 하디드와 벨라 하디드 자매와 같은 젊은 패셔니스타들이 스트리트 룩으로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한때 트렌치코트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아이콘이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나이와 스타일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봄, 트렌치코트의 르네상스가 열렸다. 가운처럼 길게 늘어지는 트렌치코트를 둥글게 말아 올려 망토처럼 연출한 셀린, 밑단을 가늘게 잘라 술처럼 연출한 로에베, 어깨 위에 짧은 망토처럼 포켓 장식을 달고 드레스처럼 출렁이는 우아한 트렌치코트 실루엣을 완성한 발렌티노 등. 그 어느 때보다 창의력 넘치는 트렌치코트들이 런웨이를 풍성하게 채웠다. 동시에 트렌치코트의 향연은 패션쇼장 밖에도 이어졌다. 파파라치들의 카메라를 의식해 매일 다른 차림새로 자기만의 패션쇼를 펼치는 패션지 기자들과 인플루언서, 셀레브리티들도 형형색색의 트렌치코트로 스타일링 경쟁을 펼쳤다.

    올봄 명품들이 선보인 트렌치코트, 왼쪽부터 셀린, 로에베, 발렌티노/각 브랜드 제공
    ◇ 트렌치코트, 전쟁 생존복에서 영화의 극적인 미장센으로

    사실 트렌치코트는 비가 자주 오고 변덕이 심한 영국의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탄생한 일종의 생존복이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을 위해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방수가 잘 되고 추위를 막아주는 개버딘 소재를 개발했고, 이후 트렌치코트는 영국 육군 장교들의 유니폼이 됐다.

    전쟁 생존복인 트렌치코트가 가장 상징적인 패션 겉옷이 된 건, 영화 ‘애수(Waterloo Bridge)’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서 영국군 장교를 연기한 로버트 테일러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연인 비비안 리와 안개 낀 런던을 거니는 모습은 가장 유명한 고전 영화의 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두 연인의 애잔한 사랑과 함께 트렌치코트를 기억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다음 영화 제공
    이후 트렌치코트는 로맨틱 영화와 누아르 영화를 오가며, 영화의 극적인 미장센이 되어왔다. 먼저 로맨틱 영화 속에서 기억되는 트렌치코트는 프랑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카트린 드뇌브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트렌치코트다. 가벼운 개버딘 소재에 벨트로 허리를 강조하여 A라인을 연출하는 스타일로,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우산 아래에서 연인의 눈빛을 바라보는 까뜨린 드뇌브, 억지로 내쫓은 고양이를 빗속에서 찾다가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확인하는 오드리 헵번이 입은 트렌치코트는 영화에 로맨틱 분위기를 더해준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까뜨린 드뇌브(왼쪽)와 ‘보니 앤 클라이드’의 페이 더너웨이./다음 영화 제공
    가장 로맨틱한 트렌치코트 룩을 패션 사에 남긴 오드리 헵번은 영화 ‘샤레이드’에선 또다른 누아르 풍의 트렌치코트 룩을 보여주었다. 스릴러, 코미디, 로맨스를 오가는 블랙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오드리 헵번이 트렌치코트와 함께 연출한 머플러와 장갑, 선글라스 룩은 하나의 상징적인 패션이 됐다.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 페이 더너웨이가 보여준 누아르 트렌치코트 룩도 전설적인 차림새다. 더블 버튼의 트렌치코트에 검정 베레모를 쓰고 권총을 들고 있는 영화 속 장면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 트렌치코트 입기, 로맨틱 또는 누아르 영화처럼

    ‘로맨틱’ 트렌치코트 룩의 키워드는 ‘부드러움’과 ‘우아함’이다. 톱모델 아이린이 스트리트 룩으로 보여주었던 근사한 트렌치코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에 벨트로 허리를 강조해 긴 드레스처럼 나풀거리는 트렌치코트를 선택한다. 특히 올봄엔 무릎 아래까지 긴 트렌치코트가 유행이다. 이런 트렌치코트가 부담스럽다면, 색상과 부드러운 소재로 로맨틱 룩을 즐겨보자. 은은하고 우아한 파스텔 핑크를 선택한다면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여성스러운 트렌치코트 룩을 즐길 수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이 입었던 분홍 트렌치코트가 좋은 예가 되어준다.

    개성있는 트렌치코트 룩을 연출한 켄달 제너/핀터레스트
    ‘누아르’ 룩을 빛내줄 트렌치코트는 전통적인 개버딘(gabardine) 소재가 이상적이다. 방수되는 소재의 특성상 견고하고 건축적인 직선 실루엣을 연출하므로, 로맨틱 트렌치코트와 다른 우아한 트렌치코트 룩을 선사한다. 좀 더 대담해질 수 있다면, 켄달 제너처럼 검은 가죽 트렌치코트나 벨라 하디드처럼 PVC 소재의 트렌치코트로 선글라스와 함께 더욱 트렌디한 누아르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전 미국 ‘보그’ 편집장이었던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스타일은 단순히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단 한 벌을 갖고 있어도, 그 한 벌의 옷이 입는 사람을 특별하게 하고 매력적이게 하는 순간 스타일이 된다는 의미다. 트렌치코트는 바로 그런 ‘한 벌’의 겉옷이다.

    ◆ 글을 쓴 김의향은 패션지 ‘보그 코리아’에서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를 걸쳐 패션 디렉터로 활동했다. 하이패션만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장르와 상호 융합적이고 동시에 실용적인 스타일 아젠다를 만들어냈다. 현재는 컨셉&컨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를 통해 크리에이터이자 스토리텔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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