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는 씩씩, 강원은 순박… 사투리는 감성언어"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4.09 03:00

    '방언의 발견' 낸 정승철 교수

    "국민 통합 위해 만든 표준어가 사투리를 척결 대상으로 만들어…
    방언이 살아야 문화 다양성 산다"

    '서울에서 쓰는 말'이 공식적으로 한국의 표준어가 된 건 언제일까? 1912년에 나온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서부터다. 철자법 기본 원칙 1항에 '현대 경성어(京城語)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명시됐다. 이 철자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조선총독부였다.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닙니다." 최근 단행본 '방언의 발견'(창비)을 쓴 제주 출신 정승철(55)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말했다. "당시 세계 각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어를 통한 언어 통일을 추구했지요. 총독부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였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일제와 대척점에 있었던 조선어학회 역시 1933년 '표준어 사정위원회'를 발족했다. 총독부는 효율적 통치를 위해, 조선 지식인들은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표준어를 확립하려 했다. '지배'를 위해서도, '저항'을 위해서도 표준어는 필요했던 셈이다.

    지난 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승철 교수는 “한국 현대사는 ‘표준어와 사투리의 치열한 대결의 역사’”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승철 교수는 “한국 현대사는 ‘표준어와 사투리의 치열한 대결의 역사’”라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한데 그 부작용이 너무 컸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표준어의 그늘에 가린 사투리는 부당하게 푸대접을 받고 비속어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척결'과 '말살'의 대상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부 지식인으로부터 '야비하고 야만스럽다'는 지탄을 받았던 사투리는 광복 이후에는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된다. "서울에 유학하던 학생이 사투리를 쓴다고 교사로부터 야단을 맞거나 구타까지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입학이나 면접을 앞두고 사투리 교정을 위해 일부러 학원에 다니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1976년 한국국어교육연구회가 낸 '국어 순화의 방안과 실천 자료'에선 표준어를 '체계 있고 순수한 것', 사투리를 '언어에 섞인 잡스러운 것'으로 정의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꼬리표를 달았던 셈이지요." 북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의 공식 언어인 '문화어'는 '불완전한 체계를 지닌 모든 사투리를 대체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어(文語)를 바탕으로 만들다 보니 평양말보다 오히려 서울말에 가깝게 돼 버렸지요."

    그가 보기에 한국 현대사는 '표준어와 사투리의 치열한 대결의 역사'였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듯하던 사투리는 TV·라디오 드라마·영화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990년대 개그 프로그램 '유머 1번지'의 '괜찮아유' 코너에서 최양락·김학래가 구사한 충청도 사투리가 대표적인 예다.

    정 교수는 "이제는 '방언 사용권'을 보장하고 사투리를 복권(復權)시켜야 할 때"라고 했다. "언어에 우월한 것과 미개한 것이 따로 있나요? 서울말도 여러 지방어의 하나일 뿐입니다." 사람이 그 지역 말을 쓸 때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성과 정서가 살아나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책에 소개한 1900년 10월 9일자 황성신문 기사에는 팔도 사투리가 모두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는 문장이 있다. 현대어로 바꾸면 이렇다. '경기도는 새초롬하고 강원도는 순박하며 경상도는 씩씩하고 충청도는 정중하며 전라도는 맛깔스럽다. 황해도는 재치있고 평안도는 강인하며 함경도는 묵직한 인상을 준다.'

    교수는 "교육 시스템에서 굳이 '표준어'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근대화를 위해 국민을 통합하려는 표준어의 목표는 이미 달성됐습니다. 사투리를 쓴다고 해도 의사소통에 큰 방해가 없을 정도로 모두 서울말에 가까워졌지 않습니까?" 그는 "방언의 소멸 속도를 늦추는 작업은 고향을 잃는 속도와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하는 속도를 줄여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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