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워싱턴 블랙리스트 부인하는 청와대의 억지

조선일보
입력 2018.04.09 03:19

청와대는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미국 존스 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에 대해 연간 20억원의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한 배경에 대해 "실적이 부진하고 재정이 불투명해서"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연구소의 사업 보고서가 '허접스러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했다.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관련 매체 38 노스(North)는 민간 인공위성이 포착한 북한 지리 정보를 분석해 풍계리 핵실험 징후, 신포항 잠수함 탄도탄 사출 시험, 영변 원자로 가동 같은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전 세계 언론들이 38 노스를 인용해 긴급 뉴스를 내보내는 일이 매년 몇 차례씩이다. 38 노스가 북한 내 특이 동향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낀 북한은 핵과 미사일과 관련된 활동을 할 때마다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을 정도다.

출범 1년도 안 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 예산만도 수십조원이지만 청년 실업률과 취업자 증가폭은 10년 새 최악의 수준을 맴돌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헛돈을 써온 정부가 연간 20억원 기부금을 목줄 삼아 입맛에 맞지 않는 외국 민간연구소 책임자를 바꾸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다. 올해 30억원 예산을 지원받은 단체는 7일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반미 집회를 갖겠다고 예고했었는데 실제 이 집회 참가자들은 "한·미 동맹 파기하라" "미국은 한반도에서 물러나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런 활동을 해야 청와대로부터 '허접하다'는 질책을 면할 수 있는 모양이다.

구재회 소장과 함께 퇴진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제니 타운 부소장은 "권력 남용을 뿌리 뽑겠다는 대한민국의 진보 정권의 표적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는 고위 공직자 6명을 블랙리스트 혐의로 감옥에 보냈는데, 정치적 이유로 정부 자금 지원을 끊는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라고 했다. 다음 정권 때 블랙리스트 수사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져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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