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산책] 장기 기증 활발한 지역은 행복감도 높다

  •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 2018.04.09 03:11

    한국은 넘치는 情을 가족에게 쏟아 정작 낯선 타인을 돕는 데는 인색
    남 돕는 일과 행복은 선순환 관계… 베풀고 도와야 결속력·신뢰 높아져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언뜻 보면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생명체가 때로는 귀한 음식을 옆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지구 반대편의 누구에겐가 후원금을 보낸다. 극단적인 경우, 타인의 생명 연장을 위해 자신의 간(肝)이나 신장 같은 신체 일부를 기증하기도 한다.

    인간이 이런 이타(利他)적 행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상황에서 발생할까? 많은 과학자의 잠을 빼앗은 매력적인 질문이다. 일찍이 진화생물학자 해밀턴(Hamilton)은 유전자 수준에서 설명을 찾으며 수학적인 공식을 내놓았고, 뇌 과학자들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뇌 영역과 돕는 행위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타적 행위와 관련된 다른 중요한 변인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행복감이다.

    얼마 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지(誌)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미국의 50개 주(州) 중에서 장기 기증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곳은 유타, 미네소타와 뉴햄프셔인데, 이 세 주는 미국에서 행복감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런 현상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기부를 많이 하고 이타적 행위를 자주 한다.

    중요한 점은, 행복과 이타적 행위가 선순환적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행복해서 돕기도 하지만, 남에게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행복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남에게 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세계 136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논문을 보면, 가령 우간다 같은 빈곤국가에 사는 사람들도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과정에서 높은 행복감을 보인다. 즉,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윈-윈(win-win)의 결과를 낳는다. 개인에게는 행복감을 안겨주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결속력과 상호 신뢰는 높아진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작년 말 영국 가디언(Guardian)지가 총인구 중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비율, 자원봉사 참여 여부, 낯선 타인을 돕는 행위 등을 참조해 발표한 140개국의 '너그러움' 지수이다.

    이 조사에서 호주, 미국, 캐나다가 최상위권에 올랐고, 한국은 81위였다. 한국인들은 인간에 대한 '애정 DNA'가 부족한 걸까? 분명 그것은 아니다. 한국 생활을 어느 정도 해 본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의 넘치는 정(情)에 감탄한다.

    문제는 이 넘치는 애정을 우리가 가족이나 절친과 같은 소수의 사람에게 거의 모두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나누어 줄 관심과 에너지는 남지 않는다. 실제로 가디언 조사에서 낯선 타인을 돕는 문항만을 따로 보면 한국은 100위권 밖이다.

    누구나 혈연, 학교, 상호 이익 등으로 묶인 집단의 일원으로 산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나 인생 의미를 전적으로 집단을 통해 채우려고 하면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자신이 동일시하는 '우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해지는 반면, 집단 밖의 사람들은 왠지 자신과 다르고, 틀리고, 무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심 밖의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나누겠다는 필요도 의지도 약해진다.

    심한 경우, 집단 구성원의 칭송(稱頌)을 얻기 위해 개인의 철학이나 윤리적 판단마저 양도한다. 지금 우리를 보면 정치적 이념이나 권력 구조, 소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집단들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더 투명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되기 위한 과정이겠지만, 집단 간의 골이 너무 깊어지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베푸는 과정에서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 즐거움을 스스로 박탈한다는 측면에서도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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