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41]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18.04.07 03:02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벚꽃이 피는 걸 보던 날, 벚꽃이 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저 아름다운 것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풍경을 말이다. 정이현의 산문집 '우리가 녹는 온도'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릴리와 눈사람'은 빠르게 사라지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었던 소중한 존재를 호출한다.

    눈사람과 나눈 행복한 기억이 많은 릴리는 사랑하는 존재를 녹게 놔둘 수 없어서, 창고 안 냉장고에 가둔다. 냉장고 안 눈사람에게 아끼는 곰 인형을 안겨주며 틈이 날 때마다 열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유년기는 빠르게 지나가고, 릴리는 냉장고 안에 눈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출근길과 퇴근길 정체를 걱정하던 어느 날까지 말이다.

    추억이 다시 소환된 그날, 창고에 달려간 릴리는 아직 곰 인형을 안은 채 냉장고에 놓여 있는 눈사람을 발견한다. 눈사람과 노는 어른 릴리의 모습은 곧바로 릴리를 꼭 닮은 어린 딸 모습과 겹쳐진다. 작가는 묻는다. 이제 릴리는 오래전 잃어버린 반짝이는 것을 되찾은 걸까.

    "어른 릴리는 저 눈사람을 다시 냉장고 속에 넣지 않을 것이다. 그냥 밖에 놓아둘 것이다.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녹는 것은 녹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녹아내리다가 마침내 소멸하는 과정을 이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눈사람이 분명 여기에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벚꽃이 질 것을 알지만 우리는 벚꽃을 내내 바라본다. 벚꽃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를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짐작한다. 너무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 속엔 아름다움이 있다고. 녹을 줄 알면서도 끝내 눈으로 사람을 만드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떤 풍경이 놓여있을까.

    작가의 말처럼 언젠가 죽을 걸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의 마음이 있을 거다. 곧 사라져 버릴 존재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마음, 곧 녹아버릴 눈사람 위에 기어이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저 벚꽃이 흩날리면 벚꽃엔딩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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