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상위 0.1%가 사는 집"… 부동산 하울 인기라는데

    입력 : 2018.04.07 03:02

    유튜브엔 영상 10만개

    수십억 빌라·아파트 내부 곳곳 보여주며 설명
    네티즌 "가질 수 없으니 눈으로라도 대리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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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수동의 88평짜리(약 290.4㎡) 고급 아파트 내부. 인터넷엔 이런 영상이 10만개에 이른다. /유튜브
    지금 유튜브에선 '흑석박사'라는 이름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인기다. 옥수동의 평범한 공인중개사인 그는 한남동 일대의 고급 빌라나 아파트 내부를 촬영해 인터넷에 영상을 올린다. 최장 10분에 걸쳐 휴대폰 카메라로 집 안 곳곳을 보여주고 친절한 설명과 해석을 곁들이는 식이다. 그가 다루는 부동산의 호가는 기본이 수십억원이지만, 그의 영상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구독자 수는 2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100억원에 육박하는 한남동의 한 복층형 아파트를 다룬 영상은 조회수가 75만 회나 됐다. 일반 주택에선 볼 수 없는 널찍한 테라스와 실내 정원, 편백나무로 된 히노키탕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330㎡(약 100평) 크기의 초호화 공간이 잠금 해제되자 네티즌들은 '언제 저런 집에 살아보나' '이런 집은 로또 맞거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살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호화 부동산을 다룬 '하울' 콘텐츠가 인기다. 하울(haul)이란 '(시선을) 세게 끌어당기다'는 의미로, 매장에서 산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의미한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전자 제품의 개봉기에서 시작된 하울은 화장품, 명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최근엔 부동산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유튜브엔 관련 영상이 10만 개에 달한다. 고급 부동산만을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그랜드코리아가 올린 561㎡(약 170평) 크기의 청담동 고급 빌라 내부 영상은 조회수 71만 회를 기록했다. 이 빌라의 시세는 40억원이 넘는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해당 빌라의 실수요층이 상위 0.1%에 국한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2분 30초짜리 영상에는 '밥 먹기 위해 무전 때려야겠다' '손자·손녀도 같이 살아야 집을 겨우 채울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과거 고급 부동산의 주인이나 중개인들은 보안 등을 이유로 집 안 내부를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예약을 통해 검증된 소수만이 현장 실사의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부동산 컨설턴트 김형조(40)씨는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화제가 되거나 인지도가 오르면 부동산 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내부 공개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선 가상현실(VR) 기술 등을 통해 베벌리힐스 등 부촌(富村)에 위치한 고급 주택 내부를 들여다보는 콘텐츠가 인기다. 올해 초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벨에어에 위치한 2억5000만달러(약 2700억원)짜리 단독주택의 내부가 공개돼 큰 화제가 됐다. 해당 주택은 미국에서 거래된 주택 가운데 가장 가격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고급 주택 내부의 사진을 올리는 '럭셔리홈스'의 경우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 수가 20만 명이 넘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호화 부동산을 엿보며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심리가 있다"고 분석한다. 부동산 하울 콘텐츠의 인기가 집 사기 더 어려워진 세태를 반영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새내기 직장인 박문기(28)씨는 "번듯한 직장에 다녀도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집 사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가상 현실에서라도 대리 만족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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