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급 출동 줄었냐고요? 그런거 없어요

입력 2018.04.05 10:29 | 수정 2018.05.21 16:52

“문 열어 달래서 열어줬더니 수리비용 청구까지”
- 단순 민원 출동 줄지 않는 소방관들의 실태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시에서 “도로 위에 개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소방관과 교육생들이 사고로 안타깝게 숨진 이후 소방관들의 출동 기준이 엄격해져야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단순 민원’으로 출동하는 소방관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2일부터 사흘간 서울과 지방 소방서를 찾아 사고 이후 ‘비긴급’ 신고 건수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달라진 게 없다”였다.

소방청은 사고 전부터 ‘비긴급 생활안전 출동 거절 세부기준안’을 준비해서 시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있다. 기준안은 119로 들어오는 신고 접수중에서 출동 거부 기준을 상황별로 ‘긴급’, ‘잠재 긴급’, ‘비긴급’으로 나누어 상황에 따라 ‘조치’, ‘요청거절’ 등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출동 거부 기준이 현장에서 얼마나 가능할지에 대해 묻자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고개를 저었다.
소방 출동 거절의 세부기준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거절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신고만 받고 비긴급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가 부담스럽다. 소방관 경력 23년차인 서울 여의도 119 안전센터 최영수(50) 소방위는 “신고를 먼저 받는 종합방재센터에서도 비긴급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을 섣불리 못하니 일단 출동시키는 편”이라고 했다. 출동 거부가 잘못된 판단일 경우 민원이 제기되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부담도 있다.

구조 거절 확인서. 세부 거절 항목과 고지 항목 등을 체크하는 란이 명시 되어 있다/현민지 기자
출동 후 현장에서 소방관이 비긴급이라는 판단을 내리면 현행 법상 ‘구조 거절 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신고자에게 거절 판단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고, 확인서 작성과 상관의 결재까지의 번거로운 과정 때문에 거절보다는 차라리 상황을 빨리 처리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30일 사고의 발단이기도 했던 동물 구조작업은 소방서에 자주 접수되는 비긴급 신고중 하나다. 전남 목포소방서 임정식(36)소방장은 “자기가 키우던 반려동물을 유기해놓고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동물 구조작업을 포함한 단순 문 개방, 장애물의 단순 제거 요청 등은 생활 안전 출동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인명 구조보다 이러한 생활 안전 출동이 119 구조대의 전체 출동의 절반을 넘는(52.5%) 것이 현실이다.

잦은 비긴급 출동으로 소방관들은 적지 않은 회의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소방관 정경환(34)씨는 “화장실 문이 안 열린다는 이유로 신고를 한 후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 소방관은 “문 개방을 해줬는데 외려 적반하장으로 수리비용을 지불하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단순 민원신고를 힘들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긴급 출동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 목포소방서는 비긴급 민원 처리 건으로 얼음을 제거하던 도중 화재가 난 건물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긴급 상황을 겪기도 했다.

소방관들은 비긴급 상황에도 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출동 거절 기준의 미비’보다도 ‘유관 기관 홍보의 부족’에서 찾았다. 지금은 단순민원 때문에 출동한 소방관이 현장에서 해당 민원이 ‘어디’ 지자체, ‘어떤’ 유관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일일이 안내 해야하는 상황이다. 임정식 소방장은 “시민들이 119가 만능해결사라는 생각만 있지, 다른 ‘어떤’ 유관 기관이 비슷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유관기관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최영수 소방위는 “내가 언제든 긴급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긴급 신고시에는 한번더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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