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學僧의 '40년 숙원'… 화엄경이 풀렸다

입력 2018.04.05 03:01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81권 완간
"못 끝내고 눈 감으면 어쩌나… 병마 싸우며 하루 13시간 작업"
설정 스님 "한국 불교 큰 광명"

"조바심이 났어요. 건강이 안 좋거든요. 원래 10년 작정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눈감으면 어쩌나 싶었죠. 하루 12~13시간씩 작업한 덕에 5년 만에 끝냈습니다. 일 도와주는 보살님이 '스님은 누워 자는 것 같아도 계속 화엄경만 생각한다'고 할 만큼 삼매(三昧)에 빠졌지요."

4일 아침 부산 범어사에서 만난 무비(無比·75) 스님 얼굴에 뿌듯함이 스쳤다. '당대 최고의 학승' '대강백(大講伯)'으로 불리는 스님은 '화엄경 강설'(담앤북스) 81권을 완간해 이날 오후 봉정법회를 열었다. 2014년 1~5권을 펴낸 이후 4년 만에 이룬 대작 불사다.

흔히 '화엄경'으로 부르는 '대방광불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은 후 처음 설(說)한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워낙 양이 방대하고 내용이 어려워 한글 번역 해설서는 불교계의 오랜 숙제였다.

무비 스님이 ‘화엄경 강설’ 완간 기념 법회 팸플릿 가운데에 들어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육필 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스님은 “화엄경에는 해운대 모래알처럼 많은 글자가 있지만 단 두 글자를 꼽으라면 ‘생귀(生貴)’, 우리 모두는 귀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비 스님이 ‘화엄경 강설’ 완간 기념 법회 팸플릿 가운데에 들어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육필 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스님은 “화엄경에는 해운대 모래알처럼 많은 글자가 있지만 단 두 글자를 꼽으라면 ‘생귀(生貴)’, 우리 모두는 귀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탄허 스님 등에게 경전을 배웠고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스님들을 가르쳤으며 동국역경원장을 지낸 무비 스님에게 '화엄경 강설'은 40년 꿈이었다. 1970년대 중반 탄허 스님의 화엄경 번역을 도운 것이 계기가 됐다. "탄허 스님 번역은 직역이었어요. 하루 10시간씩 교열을 봐드렸지만 끝내고 든 생각이 '이렇게 어려워서 누가 읽겠는가'였어요. 현대인들이 읽을 수 있는 번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작업을 시작한 건 35년 전이다. 처음엔 손으로, 다음엔 타자기, 워드프로세서, 지금은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다.

'강설' 집필은 애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2003년 척추 농양 제거 수술을 받다가 신경을 다쳐 하반신이 거의 마비됐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외출이 어려운 상황을 역으로 활용해 인터넷 카페 '염화실'을 만들어 인터넷 강의를 시작했다. 회원이 2만명에 이른다. 2008년부터는 매월 1회 스님 대상, 매월 2회 불자(佛子) 대상으로 범어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하고 있다. "원래 중[僧]은 '시간 부자'예요. 저는 거동까지 불편하니 시간이 더 많지. 도반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했느냐'고 물으면 '너도 아파 보라'고 해요."

5년 전 본격 집필을 시작한 뒤 속도가 빨라졌다. 출판사에 따르면 초반엔 1개월에 한 권 분량 원고가 오더니 막판엔 2주, 심지어 1주 만에 한 권 분량이 날아왔다. 마침내 81권 집필을 탈고한 지난 2월 중순, 스님은 쓰러졌다. 응급실로 실려가 중환자실을 오가며 10여일 입원했고, 마지막 81권의 인쇄본은 병원에서 받아봤다.

스님의 '화엄경 강설'은 청중과 이야기하듯 쉽게 설명한다는 게 장점이다. 가령 '보현행원품'의 열 가지 서원(誓願) 중 첫째 '예경제불(禮敬諸佛)'에 대해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함이란, 먼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무나 돌을 부처님으로 보면서 왜 살아 있는 사람은 부처님으로 보지 못할까"라고 풀어 설명한다.

스님은 "화엄경의 핵심은 부처인 중생, 중생인 부처 모두가 부귀한 존재, 완벽한 존재라는 가르침"이라며 "사람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서로 보살피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비 스님은 완간된 책 1000세트, 8만 1000권을 종단에 기증했다. 화엄경을 베껴 쓰며 공부하는 '화엄경 사경'도 펴냈다. 화엄경을 널리 읽히기 위한 노력이다.

당초 봉정법회는 3월 중순 서울 조계사에서 열 계획이었다. 스님 건강 때문에 미뤄졌고, 장소도 범어사로 옮겨졌다. 무비 스님이 종단 차원의 봉정법회를 권하는 총무원장 설정 스님에게 "건강 때문에 서울에 못 올라가겠다"고 하자 설정 스님이 "내가 내려가겠다"고 해서 결정됐다. 이날 법회엔 설정 스님과 총무원 간부들, 일면·지안·혜총 스님 등 원로 스님과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그리고 태고종 스님들까지 대거 참석했다. 설정 스님은 "무비 스님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부처님 진리를 맛있는 법열(法悅)의 음식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드리기 위해 고민하셨다"며 "오늘은 한국 불교에 크나큰 광명을 드리운 날"이라고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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