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수작업 선별해보니
볼링공·토끼 인형·스타킹… 90%가 '그냥 쓰레기'
무단투기 쓰레기가 낳은 '쓰레기 대란(大亂)' 악순환

6m짜리 쓰레기 산이 눈에 들어왔다. 악취(惡臭)가 코를 찔렀다.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재활용 선별장 ‘금호자원’에서는 “위잉위잉”하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간밤 양천구 일대를 맴돌던 수거 트럭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 번에 300kg에 달하는 재활용 쓰레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이날 수거한 재활용 쓰레기는 모두 60t(톤). ‘갈고리 손’ 모양의 굴삭기가 쓰레기 산을 헤집어 20m 길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렸다. 여기서부터는 수작업(手作業)이다. 컨베이어 벨트 양 옆에 도열한 13명의 금호자원 직원이 일일이 손으로 재활용품을 건져낸다.


◇볼링공·토끼 인형·스타킹… 명색이 '재활용품'인데 90%가 쓰레기
기자는 이날 '폐비닐 담당'이었다. 재활용 선별작업을 하려면 목장갑 두 장, 팔토시, 발목까지 내려오는 앞치마에 마스크까지 '완전무장'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다친다. 금호자원 직원 이정순(69)씨는 선별 작업을 하다가 주삿바늘에 엄지손가락을 찔린 적이 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폐의료기에) 감염될까 봐… 그 걱정이 더 컸어요."

폐비닐 담당은 컨베이어 벨트 최전방이다. 맨 먼저 비닐봉투를 개봉해야 하는 까닭이다. 직원들이 “가장 위험하고, 제일 돈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 뒤로 캔 담당, 페트병 담당, 플라스틱 담당, 파지 담당, 유리병 담당이 선다.

그런데 컨베이어 벨트에서 콘돔, 볼링공, 토끼 인형, 사기그릇, 대변 묻은 휴지, 스타킹 같은 쓰레기만 줄줄이 나왔다. 시민들이 ‘분리수거’한 재활용품만 모았는데 사정이 이랬다. 몇 년 전에는 반려동물 사체가 나온 일도 있다고 한다. 직원들은 “매일 이렇다”며 익숙한 기색이었다. 쓸만한 재활용품은 한참이나 보이지 않았다. 명색은 재활용 선별 작업이지만, 쓰레기더미에서 ‘진주’를 골라내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4일 서울 양천구 재활용 선별장에서 고성민 기자(오른쪽 마스크)가 직원들과 함께 컨베이어벨트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고 있다. 기자는 이날 ‘폐비닐 담당’이었다.


"재활용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캔·페트병 담당 이모(68)씨가 한 시간 마대자루에 집어넣은 재활용품은 발목 높이도 채 오지 않았다. 이날 건져낸 재활용품은 전체 10%에 불과한 6t. '작황'이 좋은 날에는 전체 재활용 쓰레기 가운데 20%를 골라낸다.

◇무단투기 쓰레기가 낳은 '쓰레기 대란(大亂)' 악순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그대로 남은 쓰레기는 압축기 쪽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직사각형 형태로 납작하게 압축돼 다시 쓰레기장으로 보내진다. 금호자원은 t당 약 10만원을 '지불'하고 일반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한 달에 8000만~9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절반가량은 구청 지원금으로 충당하지만, 쓰레기가 많을수록 재활용 업체엔 손해다. 금호자원은 해마다 4~5억씩 적자(赤字)를 보고 있다. 안소연 금호자원 대표는 "한 달에 많게는 1400t의 재활용 쓰레기를 반입하는데, 그 가운데 80%는 일반쓰레기로 다시 돈 내고 버린다"고 했다.

최근 수도권 재활용품 업체들이 폐비닐·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지(收支)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레기 대란(大亂)’ 조짐이 일자 정부는 지난 2일 긴급 대책을 내놓고 폐비닐 등의 수거를 거부한 48개 재활용업체와 협의, 예전처럼 정상 수거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활용 업자(業者)들은 ‘쓰레기 대란’ 원인으로 ①무단투기 쓰레기②국제유가 하락 ③중국의 폐자재 수입 중단을 이유로 꼽는다.

무단 투기한 쓰레기로 재활용 선별비용이 느는데, 기름값 하락으로 폐자재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폐자재 수입중단까지 보태지며 삼중고(三重苦)가 된다. 김경하 영주자원(재활용 업체) 대표는 “재활용품이 제대로 들어오면 이렇게까지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분리수거만 제대로 되어도 수익구조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재활용 선별장 ‘금호자원’에 재활용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