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우리 사회가 죽인다'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4.04 03:16

    2003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은 태풍 '매미'가 상륙하던 날 가족 및 청와대 비서진 부부와 뮤지컬을 단체 관람했다. 여론 비판이 커지자 청와대가 했던 말이 "입장을 밝힐 게 없다"였다. '입장이 없다'는 것은 '논평 불가'라는 대답과는 좀 다르다. '노코멘트'는 말할 게 있지만 삼가겠다는 쪽에 가깝고, '입장이 없다'는 것은 할 말 자체가 궁색하다는 쪽이다. 당장 얘기하기는 조심스러울 때도 '입장 없다'는 말을 쓴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김영철 북 통일전선부장이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했다. 국방부와 통일부도 입장 표명을 피했다. 현 정부는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지만 김영철이 주범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천안함을 폭침한 잠수정은 정찰총국 소속"이라고 밝혔다. 당시 정찰총국장이 김영철이었다. 

    [만물상]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우리 사회가 죽인다'
    ▶2010년 5월 국제 합동 조사단이 천안함 폭침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했을 때 민주당 측 많은 사람은 '소설'이라고 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에 눈이 멀어 사리 분간을 하지 못했다. 한 달 뒤 국회의 북한 규탄 결의안 표결에선 야당 의원 70명 중 6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을 북 소행이라고 분명히 지적한 것은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뒤였다.

    ▶2일 김영철이 우리 취재단에게 자신을 '천안함 주범'이라고 한 것은 아무리 농담조라고 해도 북에서는 절대 금기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때문인지 노동신문은 바로 다음 날 '천안호 침몰은 남조선이 조작한 모략극'이라고 썼다. 김영철이 평창올림픽에 왔을 때 우리 사회에서 천안함 주범에 대한 비판이 거셌지만 침묵하던 북이었다. 만약 김영철이 김정은 허락 없이 천안함을 입에 올렸다면 앞으로 큰 화(禍)를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 생존 장병은 이날 대통령의 '서해 수호의 날' 불참과 KBS의 천안함 괴담 방송에 대해 "천안함 용사 46명을 북이 죽였다면, 생존 장병 58명은 우리 사회가 죽이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의 '입장 없다'는 입장은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손상하지 않겠다는 노심초사인 모양이다. '김영철이 주범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협상 상대인 것도 사실'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나. 그런다고 남북 회담에 무슨 영향이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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