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모의 세계의 골목] "마음이 찜찜한 자, 물세례를 받으라" 라오스의 봄맞이

  • 변종모 여행작가

    입력 : 2018.04.16 06:00

    라오스의 가장 큰 명절, 서로 물양동이 뒤집어 씌우는 물축제
    “늦어도 좋아” 4월에 새해 여는 느긋하고 시원한 방식

    사람들은 축제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부터 집 앞에 커다란 양동이와 대야 그리고 물을 담을 수 있는 각종 그릇들을 죄다 꺼내놓고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변종모
    어릴 적 새해가 되면 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묵은 공기를 환기시키시며 가족들에게 대청소의 임무를 주었다. 내가 했던 일은 마당에 나가서 이불을 털거나 신발정리를 하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떤 행위를 하든 하지 안 든 마음속으로부터 이미 시작되는 한 해. 그런 한 해의 시작을 뜨거운 4월의 어느 날 낯선 골목에서 온몸으로 찬물을 맞으며 시작한다.

    ◇ 일주일동안 펼쳐지는 4월의 물세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Vientien). 처음 도착한 날이 라오스의 전통 새해, 피마이(Pi Mai Lao)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이었다. 라오스의 피마이는 매년 4월 13일에서 15일 3일간 거행되지만 사실상 축제의 전후로 치러지는 행사들을 포함하면 거의 일주일 가까운 축제의 나날들이다.

    전날 밤부터 메콩강가에서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 소리가 골목골목 깊숙이 파고드는 바람에 여행자들은 이유도 없이 자연스럽게 맥주잔을 높이 들고 4월의 새해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4월의 새해. 이미 대지가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날씨는 한 밤에도 에어컨 없이는 잠을 이루기가 불편했다. 이 뜨거운 날들에 시원한 축배를 든다.

    사람들은 축제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부터 집 앞에 커다란 양동이와 대야 그리고 물을 담을 수 있는 각종 그릇들을 죄다 꺼내놓고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호수가 문밖으로 나오고 골목 안쪽까지 물을 채운 양동이가 즐비했다. 자칫 급수가 필요한 뜨거운 가뭄의 날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곁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가 이미 축제의 한가운데 들어선 얼굴이다.

    어린 아이들은 공식적인 악동으로 변하는 날이기도 하다./변종모
    낡은 오디오에서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가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일제히 차가운 물을 뿌리며 새해를 외쳤다. “속 디 피 마이(Sok dii pi ma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월의 새해이니 만큼 그 목소리가 더 뜨겁고, 물을 맞는 사람들은 시원한 마음으로 서로를 부추겼다. 누구도 그냥 피해갈 수가
    없는 골목. 의도적으로 집밖을 나오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물세례.

    ◇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한 물을 뚝뚝 흘리며 웃는 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이웃이든 인사와 축복은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는 일들이 3일간 밤낮으로 계속 되었다. 잊어야할 일들은 모두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온몸을 씻고 새로 태어나는 날. 피마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 같은 여행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축제를 즐겼다. 그토록 뜨거운 4월의 한낮에 시원한 물줄기를 피해야할 이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집집마다 양동이를 채우는 것은 깨끗한 물 뿐만이 아니라 푸짐하게 담겨있는 술과 음료수들 그리고 알록달록한 여러 가지의 과일들이 누구에게나 제공되고 공유되던 골목. 서민들의 최대의 잔칫날일 수도 있겠다. 고요하고 얌전한 라오스 사람들이 가장 경쾌해지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누구나 어깨동무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지나가는 누구나 물세례 표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분명 가해자는 있지만 피해자가 없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공식적인 악동으로 변하는 날이기도 하다. 물을 뿌리거나 색소를 첨가한 물주머니를 던지기도하며 가루를 뿌려 난처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다만, 즐거운 비명을 주고받을 뿐이다. 이처럼 뜨거운 날이 또 있을까? 새해를 축하하기보다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한 물을 뚝뚝 흘리며 환하게 웃는 날.

    불교의 나라답게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스님에게 공양하는 탁밧(Taakbaath)으로 아침을 시작한다./변종모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이 축제는 이미 라오스의 가장 큰 명절이 되었다. 축제의 첫 날은 지난해의 마지막 날로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준비의 날이다. 그리고 둘째 날은 집안 곳곳과 골목 구석구석을 물로 대청소를 하며 새해를 맞이한다고 한다. 오래 전 아버지께서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묵은 먼지를 걷어내던 날이 이곳의 둘째 날이기도 할 것 같다. 셋째 날은 새해의 시작이다. 불교의 나라답게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스님에게 공양하는 탁밧(Taakbaath)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 물로 온 집안의 묵은 때 털듯 마음의 먼지도 훌훌 털다

    낯선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축제를 봤다. 낯선 어는 골목에서 차가운 물을 흠뻑 받으며 새로 태어나는 날. 살면서 누군가에게 큰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거나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후회되는 지난 시간을 스스로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워지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찬란한 4월에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니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물세례를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워진 마음으로 낯선 골목들과 인사하며 좋은 마음으로 다시 배낭을 메는 일. 여행자가 맞이하는 제일 큰 위로이거나 행복이 아닐까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든 이웃이든 인사와 축복은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는 일들이 3일간 밤낮으로 계속 되었다./변종모
    혹독하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한창이다. 다시 시작해야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다. 언제든 어느 계절에든 늦지 않다. 깨끗하게 주변을 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 마음에 물을 적시는 일. 그것으로 언제나 그날의 축제를 즐기듯 반성도 하고 웃기도 한다. 봄이다. 무엇이든 시작하기 좋은 봄이다.

    PS 순박하고 친절한 불교의 나라, 라오스

    우리나라에서 직항 및 인접국가 경유편으로 비교적 쉽게 접근이 가능하며 15일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한 달 짜리 비자를 받으려면 사진 1장과 30달러를 내면된다. 라오스의 핵심 여행지는 수도 비엔
    티안(Vientiane)에서 북쪽으로 방비엥(Vang Vieng)과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라 할 수 있다.
    비엔티안은 크지 않은 도시로 박물관이나 승리의 문 등 유적 중심의 여행을 하는 편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는 방비엥은 산속의 호수 블루라군과 동굴투어와 카약킹과 짚라인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라오스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루앙프라방이다. 식민지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된 작은 마을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되지만, 이른 아침 탁발행렬과 밤마다 열리는 야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는 더운 열대지방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메콩강에 둘러싸인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푸시산과 에메랄드빛 꽝시폭포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도로 사정이나 전반적인 편의시설이 열악하긴 하지만 여행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숙소와 식당 등 생각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그러나 라오스 여행 중 가장 많은 감동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아름다운 풍경이상으로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의 환대다.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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