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봉사 중 큰병…고국은 외국인이라며 외면했다

입력 2018.04.03 10:41 | 수정 2018.04.03 11:30


강형식(58)씨에게 지난 3월 1일은 잊고 싶은 날이다. 강씨는 이날 아내 김남원(57)씨의 폐 이식이 필요하다는 병원 통보를 받았다. 강씨는 두 아들을 끌어안고 병실 앞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2일, 폐질환 악화로 산소호흡기를 단 김남원씨를 의료진이 치료하고 있다. /강형식씨 제공

갈수록 병세가 깊어졌다. 의식은 살아 있지만 이제는 말을 못 한다. 제힘으로 밥숟갈을 들 수도 없다. 필담(筆談)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한다. 김씨는 “주사가 안 듣는 것 같아” “병원이 무서워” 같은 이야기를 적는다.
의사는 “급성폐렴으로 폐의 70%가 손상됐다”고 했다. 폐 이식이 아니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그러나 김씨는 장기이식을 받지 못하는 처지다. 재외동포인 김씨가 외국인 장기이식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교포인 김씨는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를 왔다가 병을 얻었다.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평창의 혹한(酷寒)에서 일하다 보니 무리가 온 것이다. 김씨는 고국(故國)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큰아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온라인 지원서를 작성했고, 세 번의 면접 끝에 자원봉사자 자격을 얻었다. 영어가 유창해 동계올림픽에서 노르웨이 국가대표팀을 담당하게 됐다.

자원봉사자 사전소집일이었던 지난 1월 20일, 김씨는 온몸이 아팠다고 한다. 강릉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관절염’이라고 했다. 퉁퉁 부은 손으로 노르웨이 선수단 짐을 옮기며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약도 듣질 않았다. 견디다 못해 수도권 큰 병원을 갔더니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폐에는 기흉(氣胸)이 나 있었다. 폐를 둘러싼 흉막이 찢어지면서 폐 안에 있어야 할 공기가 폐 밖으로 새어 나오는 병이다.
시술을 받았지만 가쁜 숨은 계속됐다. 그날 김씨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직 숙소 짐 빼지마, 패럴림픽까지 마치고 갈 거야.”


김씨가 가족과 주고받은 필담. “새아기는 쉬는 날 친정 가보라”라고 적혀 있다. /강형식씨 제공

규정상 외국인이 장기이식 대상자 명단에 등록하려면 최근 1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고, 이 기간 해외 체류 기간은 14일 미만이어야 한다. 김씨는 거주기간은 채웠지만 해외 체류 기간(45일)이 발목을 잡은 경우다. 미국에 사는 둘째 아들 가족을 보러 가면서 해외 체류 기간을 넘긴 것이다. 이때만 해도 김씨는 장기이식을 받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최근 질병관리본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코노스)는 “외국인 장기이식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김씨를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등록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외국인이 장기이식 등록을 한 뒤 돌아가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내국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로 데려가기도 난망한 상황이다. 쇠약해진 김씨의 체력이 밴쿠버까지 10시간 장거리 비행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뒷바라지하려고 미국에 오신 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둘째 아들 강태민(28)씨는 더듬더듬 말했다.

김씨 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 사연을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현재까지 1만여 명이 동참했다. 큰 아들 강태현(31)씨는 “어머니는 모국(母國)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헌신하시다 병을 얻으셨는데 외국인 취급하며 치료 기회조차 주질 않으니 야속한 마음이 든다”며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만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6남매 중 다섯째인 김씨는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자원봉사를 했다. 말을 편하게 할 때 그는 “생전에 올림픽 자원봉사 다섯 번은 꼭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노르웨이 국가대표팀 지원단을 맡았다. /강형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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