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2년반 사용 멈춰있던 태블릿 PC… 하필 그 시점에 고영태 서랍에서 출현"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04.02 03:00

    [최순실 회고록과 태블릿 PC 입수 再수사에 관해… '최순실 변호인' 이경재씨]

    "국과수의 태블릿 감정서 법정 증거로 채택됐으나
    1심 판결문엔 한 줄도 태블릿에 대한 언급 없어"

    "최순실에게 박근혜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
    감옥서도 그의 모든 신경은 朴 전 대통령에게 쏠려"

    최순실씨가 옥중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회고록을 집필 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최순실 변호인' 이경재(67)씨를 만났다.

    "세상에 비친 이미지와는 달리 최순실씨는 글을 많이 쓴다. 법정에 출석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과 답변 사항을 열심히 적는 스타일이다. 내가 글을 받아와서 정리를 시키는데, 대법원 상고심이 끝나면 출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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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씨는‘내가 이야기한다고 대통령이 다 듣는 줄 아느냐. 그분에게는 독한 면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법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 이경재 변호사, 최씨. /오종찬 기자
    ―당초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언급하며 회고록을 쓰도록 권했다고 들었다. 격(格)에 맞지 않는 비교 같기도 하고.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으면 원균은 형편없는 장수다. 원균도 잘해보려고 노력했을 텐데, 이렇게 역사적 낙인이 찍힌 것은 이순신의 기록만 있고 자신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 따라 당신(최순실)은 악녀처럼 재단됐으니 자신이 쓰는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말해줬다."

    ―그 말에 최씨가 움직였나?

    "최씨는 '내가 그런 글을 쓰겠다면 박 대통령이 결사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옥 안에서도 그의 모든 신경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쏠려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부정적 메시지를 전해오면 그녀는 못 쓴다. 내가 '당신은 그동안 태양(박근혜)의 위성이었다. 이제 그 역할을 그만해라. 독립된 인생을 살라'고 말했다."

    ―회고록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와 검찰 조사 및 수감, 재판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최씨라면 자기 입장에서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겠나?

    "최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기에, 내가 '차라리 글을 안 쓸지언정 거짓 내용은 쓰지 마라. 당신이 두 번 죽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인이니까 최씨 입장에 설 수밖에 없겠지만,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최씨가 과연 변호받아야 할까?

    "대중의 들끓는 분노에 제물이 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본다. 실제 잘못보다 과장됐거나 덧씌워진 면도 많았다. 가령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청와대 문건의 유출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최씨를 기소하면서 청와대 문건 관련 부분을 입증하지 못해 뺄 수밖에 없었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은 어떤 관계인가?

    "최씨에게 박 전 대통령은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다. 감옥에서도 자신의 모든 언행에 우선하는 고려 대상이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이 '죽어라' 하면 최씨는 당장 죽을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매료된 사람, 극단적인 팬이랄까…."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면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을 조종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에게 지배된 것 같았다.

    "최씨와 얘기해보면 논리적이고 치밀하다. 이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최씨는 '내가 이야기한다고 대통령이 다 듣는 줄 아느냐, 그분에게는 독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은 언제부터 이런 관계가 형성된 건가?

    "대학생 때 새마음봉사단에서 처음 만났지만, 지금과 같은 관계가 형성된 계기는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1998년)에 출마하면서였다. 서울 강남에서 유명한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씨가 대구로 내려가 헌신적으로 도왔다."

    ―그런 최순실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장본인이 됐다. 기폭제는 '최순실 태블릿 PC'였고, 이를 보도한 JTBC는 스스로 "탄핵 정국과 혁명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당시 JTBC는 '태블릿 PC 전원을 켜자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 최순실의 국정 농단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외교·인사 관련 정보가 담긴 문건 200여 건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중 기밀 문건은 3급(級)짜리 하나에 불과했지만. 당시에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그 쓰나미에 휩쓸려 아무런 방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씨는 한결같이 '태블릿은 내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최보식 선임기자와 인터뷰 중인 이경재 변호사.
    최보식 선임기자와 인터뷰 중인 이경재 변호사.
    ―노회한 최씨가 자기 것이라고 쉽게 인정할 리가 있겠나?

    "검사는 조사 과정에서 '태블릿이 당신 거라고 자백하라'며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내가 보다 못해 검사에게 '실물을 보여주면 자백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포렌식(과학적 증거 확보 기법) 검사 중이니 끝나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포렌식 검사는 이미 그때 끝나 있었는데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최씨에게도 '어차피 당신은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하지 않으니 그냥 인정하고 가자'고 달랬지만 '태블릿을 사용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자백하느냐'고 반발했다."

    ―태블릿의 진위를 놓고 공방이 계속되다가 국과수 감정까지 했는데,

    "최씨의 자백을 몰아붙이던 검찰이 '비선 실세로서 국정 농단을 한 것은 다른 증거로도 이미 입증됐다'며 태블릿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태블릿 실물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소위 국정 농단 사건이 태블릿으로 촉발됐으니 공개 법정에 제출해 검증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의 막바지에야 판사가 받아들였다. 국과수 감정이 이뤄졌고 증거로 제출됐다."

    ―국과수 감정서를 놓고도 검찰과 변호인단은 서로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해석했다. 법정에서는 어떻게 결론이 났나?

    "판결문에는 태블릿에 대해 한 줄 언급도 없다. 이러려면 국과수 감정을 대체 왜 했나. 나는 '고영태 일당의 기획된 국정 농단 의혹을 증명하려면 태블릿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오히려 재판장은 '최순실이 반성 없이 거꾸로 기획됐다고 변명하고…'라고 했다."

    ―태블릿에 저장된 최순실 사진, 문서, 동선(動線)의 일치 등으로 봐서 적어도 최씨 손은 거쳐 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최순실씨가 사용했다는 증거보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훨씬 많다. 국과수 감정서에도 사용자가 최순실이라는 언급이 없다. 태블릿 사용자 계정은 모두 최씨와 무관하다. 사용 내역 분석으로는 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오히려 JTBC가 이 태블릿을 어떻게 입수했는지를 조사하면 쉽게 답이 나올 것이다."

    ―때마침 서울고검이 'JTBC의 태블릿 PC 입수를 재수사할 것'이라고 나왔는데.

    "재작년 말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더블루K(최순실 회사) 사무실에서 태블릿 PC를 들고 나온 JTBC 심모 기자와 성명 불상자 1명에 대해 특수 절도 혐의로 고발한 적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결정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고검이 '심모 기자에 대한 항고는 기각하지만 성명 불상자에 대해서는 재기 수사 명령을 했다'고 통보한 것이다."

    ―지금 검찰이 본격 수사를 할 그런 배짱이 있을까? 나는 못 할 것으로 보는데.

    "나도 기대를 안 한다. 검찰은 '성명 불상자'가 김모 기자로 확인된 만큼 서류상 이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해당 기자를 불러 조사하겠지만 '건물 관리인의 협조로 입수했고 불법적 취득 의사가 없었기에 무혐의'라는 똑같은 결론을 내려 사건을 종결할 것이다."

    ―그 당시 취재 행위를 특수 절도 혐의로는 볼 수 없지 않은가?

    "절도 혐의는 아니겠지만, JTBC는 태블릿 PC 취득 일시와 경위에 관해 말이 바뀌곤 했다."

    ―언론 관점에서 보면 취재원 보호 등을 위해 감추거나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더블루K 건물 관리인이 JTBC에 출연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나?

    "그건 일방적 주장이다. 당시 더블루K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간 뒤라 사무실은 한 달 보름간 비어 있었다. 빈 사무실에는 고영태의 책상만 남아 있었다. 그 전에 고영태가 최순실과 다투고 난 뒤로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JTBC 기자가 빈 사무실에 있는 고영태의 책상 서랍을 열어 태블릿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태블릿의 마지막 사용 시점이 '드레스덴 연설문(3월 27일)'의 수신 기록이 있고 나흘 뒤인 2014년 4월 1일이었다. 그 뒤로 2년반 사용이 멈춰 있던 것인데, 하필 그 시점에 고영태 책상 서랍에서 출현한 것이다."

    ―열심히 취재하다 보니 기자에게 행운이 굴러온 것이 아니었을까?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박 전 대통령이 '개헌 발언'이 있은 바로 그날 저녁에 국정 농단 증거를 찾았다며 태블릿 PC를 보도했다. 이를 입수했다는 JTBC 기자는 '내 휴대전화 잠금 패턴이 L자여서 단 한 번 시도로 태블릿의 잠금장치를 풀었다'고 했는데, 최씨는 자기 휴대폰들은 결코 그런 글자 패턴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고영태는 JTBC 인터뷰에서 "최순실이 태블릿 PC를 끼고 다니며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고 수정한다"고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고영태는 국회 청문회나 법정에서는 '최순실이 컴퓨터를 하는 건 봤는데 태블릿 PC를 쓰는 걸 못 봤고, 제 생각에 최씨는 태블릿 PC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고영태 서랍에서 발견됐으면 고영태 것으로 봐야 하나?

    "고영태는 '책상 서랍을 다 치웠으며 태블릿을 놔둔 적이 없다'고 했다. 또 자기 태블릿은 애플 기종(JTBC가 입수한 것은 삼성 제품)이라고 했다."

    ―관련자는 모두 부인하는데, 대체 어떤 연유로 빈 사무실 서랍에 이 태블릿 PC가 들어간 것일까?

    "2012년 6월 김한수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이 태블릿을 개통했고 그 뒤로 자기 개인 카드로 요금을 납부해왔다. 법적으로는 그가 태블릿 소유자다. 그런 태블릿이 어떻게 해서 고영태 책상 서랍에 들어가 있었는지 전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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