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와세다에서 강연하는 문정인 특보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31일 북한과의 향후 교류·협력과 관련해 "일괄 타결 방식으로 합의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면 우리 정부가 중국, 미국과 더불어 (유엔에)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또 "2007년 남북이 합의한 48개 교류 협력 사업이 있는데 이중에서 최소 20개 정도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추진할 수 있다"며 "인도적 지원, 나무 심기 사업, 북한 결핵 환자 지원 등은 대북제재 아래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북한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가 많지 않아 북한과 (많은) 교류·협력을 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는 할 수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이와 같은 남북 교류·협력안을 제시했다. 이날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早稲田)대학교에서 열린 한반도문제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문 특보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포괄적·일괄 타결 이외에는 다른 방안은 찾을 수 없다"며 "현실적이고 유연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인 동결, 신고, 사찰, 검증, 폐기를 한꺼번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며 "원칙에 있어서는 일괄타결로 나가고 이행에 있어서는 단계적으로 밖에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도 한꺼번에 줬다가 북한이 말을 안 들으면 손해인만큼 단계별로 줄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의 이런 발언은 지난 26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의 단계적·동시적 조치 시 비핵화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내에서 비핵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문 특보는 또 북한과의 회담에서 정치범수용소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의제로 삼아야하는 것 아니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선 "남북간 협상을 위해 신뢰를 형성하는데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어려움이 많다"며 "정치범수용소 등의 문제는 북한과 신뢰가 쌓인 후에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했다"며 "(현시점에서) NGO는 북한 인권문제를 할 수 있지만 정부가 나서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420명 정원의 회의장이 가득 차 남북 및 북미 대화가 준비되는 가운데 북일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일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심포지엄에는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가 축사를 했으며,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 히라이 히사시(平井久志) 리쓰메이칸(立命館)대 특임교수, 아오야마 루미(靑山瑠妙) 와세다대 교수, 김연철 인제대 교수, 이노우에 토모타로(井上智太郞) 교도통신 외신부 차장 등 한일 북한 전문가들이 패널 토론자로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