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때 TV생중계, 부부 오찬, 대형 미디어센터 추진

조선일보
입력 2018.03.31 03:22

[한반도 '격동의 시간']

정부 北에 제의 방침… 대대적 이벤트로 홍보할 듯
野 "비핵화 의제는 뒷전, 치적홍보에만 활용할건가"

정부와 청와대가 다음 달 27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 때 사상 처음으로 TV 생중계와 부부 동반 오찬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또 취재 편의 제공을 명분으로 2000석이 넘는 초대형 미디어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야당에선 "북한 비핵화 등 회담의 본질인 의제 조율은 거의 진척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치적 홍보' 소재로 활용하려는 거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다음 달 4일 북측과 벌일 실무 회담에서 TV 생중계와 부부 동반 오찬을 제의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선 생중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회담 장소가 평양이라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반면 이번 회담은 판문점 우리 측 지역(평화의집)에서 열리기 때문에 기술적 제약이 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생중계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지난 1월 9일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오늘 회담을) 공개해서 실황이 온 민족에게 전달됐으면 한다"고 했다.

남북 정상의 부부 동반 식사 역시 전례가 없다. 과거엔 북측 사정 탓에 추진 자체가 불가능했다. 김정일은 성혜림·고용희·김옥 등과 정식 결혼 없이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북한은 이들을 김정일의 배우자로 공식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부터 부인 리설주를 전면에 내세우며 공식 행사에 수시로 함께 등장했다. 리설주는 이번 방중(訪中)에도 동행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부부와 함께 식사했다. 전례가 생긴 만큼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식사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부부 동반 오찬은 우리가 다른 나라처럼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는 소규모 기자실이 운영되고, 대규모 프레스센터는 일산 킨텍스에 마련될 예정"이라고 했다. 킨텍스 미디어센터는 2000~2500석 규모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에 쏠릴 (해외) 언론의 높은 관심을 감안해 통·번역 요원을 충분히 배치하는 등 보도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주로 청와대에서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주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보도·의전과 관련한 사안은 활발히 논의되는 데 비해 회담의 본질인 의제 조율은 답보 상태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난 29일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의 공동 보도문은 의제와 관련한 내용을 담지 못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의제는) 양 정상 간에 서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북측의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북측이 사전 의제 조율에 소극적이었단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의제 자체엔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는 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문제고,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 실마리를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이 문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벅찰 텐데 본질은 도외시하고 지엽적 문제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특히 부부 동반 오찬 추진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북한은 화해·협력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 대상이자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라며 "부부 동반 식사 같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북한의 한쪽 측면만을 부각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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