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을 착공하고 10개월쯤 지난 1969년 2월 당시 박태준 회장은 측근에게 '회사 청산 계획'을 준비해두라는 극비 지시를 내렸다. 세계은행과 미국 등이 '한국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포철에 대한 자금 지원 의사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200달러를 겨우 넘긴 나라가 분에 넘치게 꿈꿨던 종합제철소는 정말 한바탕 꿈으로 끝날 뻔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국교 정상화 결단을 내리고 일본에서 받은 돈으로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등을 지었다. 그 포스코가 4월 1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1968년 창립 멤버 34명을 고(故) 박태준 회장은 '요원(要員)'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포스코에선 당시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직원'이라 부르는 것으로는 창립 멤버들이 공유했던 각오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실패하면 이대로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했던 사람들이다. 세계 최고를 목표로 했고 결국 이뤄냈다.

▶1973년 6월 첫 쇳물을 쏟아냈던 고로(高爐)가 신화의 시작이었다. 사가(社歌) 첫머리에 '끓어라 용광로여'라고 했던 이 고로를 갖고 416억원으로 시작했던 매출액이 지난해 28조원을 넘어섰다. 1997년부터 2년간은 세계 1위 제철소 자리에 올랐지만, 중국과 인도의 물량 공세와 대형 인수·합병으로 5위권으로 밀렸다.

▶2015년은 포스코에 치욕의 해였다. 글로벌 철강 불황도 타격이었지만, 70개를 넘어섰던 계열사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창립 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기업 발전은 곧 나라 발전이고, 기업의 가장 큰 불충은 적자(赤字) 경영"이라고 했던 박태준 전 회장이 눈을 감은 지 4년 만이었다. 포철은 지난 2000년 민영화되면서 포스코로 이름까지 바꿨다. 그래도 역대 정권들은 주식 한 주도 없이 포스코를 '소유물'처럼 다뤘다. 숱한 낙하산을 내리꽂았고 정치 외풍(外風)은 쉴 틈이 없었다.

▶1969년 세계은행이 포철에 대한 지원을 끊도록 결정하게 만든 보고서를 썼던 영국인 박사가 1980년대 중반 한창 전성기의 박 전 회장을 만났다. 그 박사는 "보고서를 쓸 때 당신이라는 존재를 몰라서 그랬다"고 했다. 박 전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다. 당신은 한국인을 몰랐다. 한번 뭉치면 상식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는 민족이다. 그걸 몰랐던 거다." '뭉치면 힘을 발휘하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언제까지 통할지 걱정이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