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것으로 충분하다" 허세 없는 공(空)의 마력, 하라 켄야

입력 2018.03.31 06:00 | 수정 2018.06.14 20:18

디자인계 거장, 무인양품 하라켄야… 하우스비전 창시자로 내한
“미래의 집은 물류와 에너지 중요, 고령화로 ‘단절된 개인’ 연결해야"
“AI시대 촉각 둔화는 큰 문제… 애착하는 물건 무지의 수건, 노트, 카레”

디자인은 인간과 환경이 합리적인 관계를 맺도록 돕는 감각적인 교양이라고 말하는 일본 디자인계의 거장, 하라 켄야(原研哉). 무사시노 미술대학 교수.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한 ‘하우스비전'의 창시자로 내한했다./이진한 기자
무인양품(영문명 무지(MUJI))을 좋아한다. 흰색, 회색, 검은색 같은 심심한 무채색에 불필요한 장식은 칼로 잘라낸 듯 매끈하고 간결한 디자인. 제품 어디에도 로고가 없다. 면봉부터 침대까지, 7500여 개에 이르는 생활용품은 친환경·재활용 소재를 사용한다. 꾸밈이나 허세가 없는 무인양품은 대지진 이후 더욱 일본인의 생활에 밀착한 '습관의 브랜드'로 정착했다.

무엇보다 무인양품이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아닌 일본의 미학을 담아낸 ‘국민 브랜드'로 성장한 데는 하라 켄야의 공이 크다. 2001년에 그가 디자인 수장이 되어 제작한 무인양품의 텅 빈 지평선 시리즈는 지금도 유명하다.

2001년 하라켄야가 제작한 무인양품 포스터. 지평선은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장소.
교토 사원의 다실처럼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깊이를 추구하는 하라 켄야의 ‘공(Emptiness)의 철학’은 무엇이든 담아내는 ‘빈 그릇'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2001년 단기 급성장의 후유증에 빠졌던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현재 무인양품은 그 영역을 확장해 1인용 도심 오두막과 ‘무지하우스', ‘무지호텔’까지 만들어서 판매 중이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로 추앙받는 일본 디자인계의 거목 하라 켄야를 만났다. 그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최하는 미래의 주거환경에 관한 전시형 심포지엄 ‘하우스비전'의 창시자로 내한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 즐겁게 흥분한 채였다. 미래는 고령화로 90세 노모와 70세 자식이 동거하는 코인디비주얼(Co-individual) 형태의 주거가 늘고, 물류의 급격한 증가로 현관문 옆엔 수납형 냉장고가 빌트인 될 거라고 했다.

가까이서 본 하라 켄야의 손은 매우 투박하고 두꺼웠다. 깍지를 낀 양손이 마치 장인과 상인이 악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1분 1초, 단어 하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밀도 높은 디자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시간을 쪼개 쓰는 그 알뜰함과 어마어마한 집중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매력은 오로지 풍경과 정감에 달려 있다. 뛰어난 것은 반드시 발견된다”고 말하는 하라 켄야./이진한 기자
-흰머리, 작은 안경, 검은 옷… 의상도 군더더기가 전혀 없군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어요(웃음). 살이 쪄서 검은 옷을 입은 것뿐입니다. 해외 출장을 다닐 땐 항상 5분 안에 입고 나갈 옷을 챙겨요. 같은 셔츠와 바지가 여러 벌이지요. 그 와중에 머리가 백발이 되고 보니 은근히 아이덴티티가 생겼어요.”

-안경은 직접 디자인하셨나요?

“아니요. 이것도 가까이 있는 동네 안경점에서 산 걸요.”

-모든 것이 무인양품스럽습니다. 매우 기능적으로 보인다는 뜻이지요.

“2001년 무인양품의 디렉터 다나카 이코에게 발탁돼서 철학과 디자인을 만들어 갔어요. 이젠 그 스타일이 완전히 몸에 배었습니다. 무인양품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클라이언트입니다(웃음). 지금 무인양품은 항공사, 여행사, 호텔, 야구팀까지 만들 수 있어요. 저는 무인양품의 투수라면 강속구를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운 무채색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다…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무인양품에서 당신이 제시해서 파격을 일으킨 ‘공(empty)의 철학’은 여전합니까?

“물론이죠. 저는 무인양품 포스터 시리즈로 텅 빈 지평선을 보여줬어요. 비어 있다는 것, 나아가 비워둔다는 건 엄청난 잠재력이 있죠. 지금도 무인양품 일을 할 때 이 메시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그래야 과장된 디자인을 경계할 수 있지요.”

-오늘날은 물자도 욕망도 넘쳐나는 풍요의 세계입니다. 왜 이런 역설을 추구합니까?

“저는 원래 쓸데없는 표현을 하지 않는 자세를 제 철학으로 갖고 있습니다. 사물이든 욕망이든 에센스를 찾아내서 최단거리에서 실현하는 게 저의 디자인이에요.”

-기능주의와 슈퍼 노멀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물론입니다. 슈퍼 노멀(Super Normal)은 후카자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이 주장한 개념입니다. ‘평범하지만 멋진’, ‘비범한 평범’을 일컬어 말합니다. 디자이너로서 기능주의와 슈퍼 노멀에 집중한다는 건 수학을 연구하는 것과 비슷해요. 디자이너가 잘 고안된 기능을 찾아주고 소비자가 그것을 누리면서 점점 삶의 원리를 깨닫는 식이죠. 물리학을 몰라도 직립보행을 할 수 있지만, 그게 중력 덕분이라는 걸 알면 좀 더 현명해지는 식입니다.”

디자인을 최대한 걷어내 상품의 실존적 가치를 드러낸 무인양품의 수건./무인양품
-제품을 예로 든다면요.

“무인 양품의 수건은 레이스도 없고 색깔도 다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면이 정말 좋아요. 다른 요소를 제한하고 수건의 기능을 극대화하면 그 촉감을 깨닫고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수건을 고를 땐 소재를 따져 고르는 거죠. 샴푸도 외양이 단순하고 좋은 성분을 찾게 돼요. 점점 소비 패턴이 바뀌는 거죠. 접시를 예로 들어보죠. 이탈리아에 가면 파스타 접시가 다 두꺼워요. 접시를 데워 요리 온도를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죠. 사물의 원리에 관한 깨달음이 쌓이면 세계가 달리 보여요.”

-선생이 만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탄생했나요?

“대화 중에 우연히 나왔어요. 사람들은 ‘에르메스가 좋다, 프라다가 좋다’라고 명품 브랜드를 얘기하죠. 하지만 브랜드가 없어도 ‘질 좋고 디자인이 좋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말이 한국어로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점심 뭐 먹을까?” 했을 때, “우동이면 됐지.” 할 때의 그 느낌. 그게 무인양품이면 충분하지, 라고 할 때와 비슷해요.”

‘애플 짝퉁’으로 시작해서 성공한 샤오미의 마케팅 책임자 리완창은 자신이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무인양품의 하라켄야였다고 고백했다./이진한 기자
-그때의 ‘충분’은 자제력을 의미합니까?

“약간의 포기가 있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더 갈 수도 있지만, 그 정도에서 선을 긋는 것. 어떤 확신을 하고 레이스가 달린 수건이 아니라 단순하고 질 좋은 무인양품의 수건이 좋다고 결정하는 거죠. 그런 능동적인 소비자가 멋있다고 생각해요.”

-불필요한 걸 자제하는 게 동시대적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생활 혁명가가 되겠다는 사명이 있습니까?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디자인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해요. 나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출발을 했지만, 제품과 건축까지 나갔죠. 영역이 없는 디자인이 진짜 디자인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디자인은 사실상 소중한 질문이에요. 가령 “집을 만들어 보면 어때?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어때?” 같은 거죠. 문제에 답을 주는 것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더 좋은 디자인입니다.”

-이젠 제품뿐 아니라 집까지 디자인의 영역으로 확장했더군요. 계기가 있습니까?

“다나카와 이코가 무인양품을 시작할 때는 제품이 40개 정도였어요. 제가 참여한 후로는 5000개 정도가 됐죠. 요즘엔 7500개예요. 단순히 생활용품을 파는 게 아니라 생활 전반을 오퍼레이션 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판매에서 끝내면 안 되겠구나. 사용자를 교육해야겠구나. 지금 소비자는 단순히 기성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아요. 원하는 것을 직접 찾고 만들고 싶어 합니다. 집이 그 정점입니다.”

공(空).엠프티네스(Emptiness)를 설명하는 하라 켄야. “비어 있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쉽다.”/이진한 기자
-일본에서 주택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일본 국민들은 전쟁 이후 고도성장기를 겪으며 비슷한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리폼, 리모델링이 유행하면서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일본의 집은 공유와는 다른 코 인디비주얼(Co-individual)의 형태를 띱니다. 가령 2인 가족도 부부만 있는 게 아니라 90세 노모와 70세 아들이 함께 생활하는 등 ‘연결된 개인’입니다. 노인과 독신 세대가 늘면서 집을 통신과 이동, 의료 등 산업이 교차하는 구심점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선생이 생각하는 미래 사회의 주택은 어떤 형태인가요?

“미래는 물류 서비스가 중요해질 거고 그래서 주택의 현관 옆에 또 하나의 문이 생길 수 있어요. 시큐리티로 안전이 확보된 상태로 밖에서 냉장고 문을 열어 약물, 세탁물, 식품 등을 바로 투입하는 거죠. 물류 데이터가 확보되면 혼자 사는 거주인의 안전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문을 하나 더 다는 것만으로 사회가 바뀌는 거죠. 바로 그 모습을 각국의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고민하면서 하우스비전이라는 실물 모형으로 보여주고자 했어요.”

-놀랍군요. 또 어떤 것들이 있지요?

“화장실 시스템으로 당뇨를 발견할 수도 있고 집의 마감을 지퍼로 하는 형태도 있어요.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해 태양광을 좀 더 잘 활용하는 집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일본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서 나는 항상 에너지에 관심이 많아요. 집안에 작은 녹색 공장을 만들어 원격 조종 하는 농가형 하우스도 생각해봐요. 멀리 있는 딸이 아버지의 배추밭을 관리해주는 거죠.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라는 유닛이 유지되는 거예요. 이 모든 일이 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영역이에요.”

-선생이 살고 싶은 이상적인 주택 형태가 있습니까?

“현재 자식들도 독립하고 저는 아내와 단둘이 살아요. 아내는 레이스를 좋아하는 취향을 지녔어요. 저는 최악의 클라이언트와 사는 셈이죠(웃음). 그래서 나는 호텔에 관심이 많아요. 일과 쉼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세계의 집이죠.”

무인양품의 오두막집 ‘무지 헛’.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안은 일본산 삼나무로 마감했다. 3평 남짓한 이 오두막은 설치비를 포함해 약 3천만원에 판매된다. 미닫이문을 열면 툇마루와 바닥을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무인양품의 7500개 디자인에 전부 관여합니까?

“전혀 아닙니다(웃음). 저는 디자인을 안 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감수를 통해서 무인양품 적인 것만 출고를 결정합니다. 더는 제품 수를 늘리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가장 애착이 가는 상품은 무엇이죠?

“역시나 무인양품의 집입니다. 집에 관한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죠. 무지하우스라는 집은 상품으로도 판매합니다. 나무집, 창문집 다양해요. 무지 호텔도 중국 심천에 생겼습니다. 우리는 럭셔리 호텔을 지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것만으로 충분한' 호텔이에요.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는, 적당하고 담백한 일본 여관이 모델이죠. 곧 베이징과 도쿄 긴자에도 만들 거예요.”

-또 무엇을 좋아합니까?

“무지의 노트. 처음 무인양품을 시작할 때 파일의 소재나 색깔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환경도 고려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지 아젠다 같은 제품이 됐습니다. 그리고 또 무인양품의 카레는 정말 맛있습니다. 인도에서 느끼는 그 맛을 그대로 카피해서 재현했어요. 정말 꼭 한번 먹어보세요. 종류도 40가지나 되는데 내용물에 따라 패키지 디자인을 달리했어요.

안데스산맥의 알파카 양으로 만든 숄과 스웨터도 좋아합니다. 개량되지 않은 원 털을 사용하는데 그 양의 사진을 찍으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무인양품은 거의 모든 걸 만들어요. 저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제품을 생각합니다. 무인 양품의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모든 제품을 통합할 수 있어서죠.”

-기업이 점점 더 커지면 관리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일본에서는 편의점 산업이 더 공룡입니다. 하하하. 제 바람은 무인양품이 서서히 성장하는 거예요. 규모가 커지면 재료 관리와 유통의 효율성에 묶여 재미가 없어져요. 가령 예전에는 찢어진 버섯을 팔았어요. 자연 슬라이스였죠. 그런데 무인양품이 커지면서 버섯을 일부러 찢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물이 흘러가듯 조금씩 커지는 게 소비자에게도 좋습니다.”

-요즘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일본은 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삶의 방식이 거의 바뀌지 않았어요. 손으로 물건을 만들다 기계로 만들 뿐, 기본은 장인의 나라죠. 그런데 AI가 나오면서 근본적인 환경이 바뀌게 됐어요.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허세 없이 친절한 실용주의자, 하라 켄야. 무인양품(無印良品)은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즉 브랜드가 없는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진한 기자.
-어떤 부분이 당혹스럽지요?

“이탈리아 디자이너 안드레아 브란치와 함께 디자인의 역사를 100개의 동사로 보여주는 전시를 했었어요. 선사시대부터 사람의 역사를 욕망의 역사로 보고 정리를 해봤죠. 첫 번째는 ‘때린다, 부순다, 죽인다, 저장한다, 나눈다’ 이렇게 알기 쉬운 행위의 동사였어요. 점점 ‘학살한다, 연구한다, 이동한다'로 욕망이 커지고, 최첨단 무기가 나오면서 ‘절망한다, 소외시킨다, 폭로한다'로 바뀌어요. 최근엔 ‘원격조종한다, 재생한다, 가상한다'라는 어려운 동사까지 갔어요. 과거에는 사람이 사람 손으로 만든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AI 시스템이 구축한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정말 걱정스러워요.”

-손끝 발끝에도 뇌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네. 좋은 공간은 눈보다 피부로 느낀다고 하죠? 나는 인간의 신체는 추상화할 수 없다고 봐요. 땀이 나고 숨을 쉬는 것처럼 신체는 반응을 해요. 디자인을 하다 보니 디자인된 제품을 쓰는 행위도 일종의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몸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장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알릴 수 있어요.”

-그런데 인간의 육체가 점점 감각화를 경험하기 어려워진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석기 시대엔 돌, 칼을 쓰다가 대포가 나왔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를 타게 됐죠.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었어요. 그런데 원자 폭탄과 순항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사람이 스스로 물건을 만들고 느끼는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기 시대부터 인간의 지혜는 이 세계를 변화시켜왔는데, 나보다 똑똑한 기계를 만든 이후로는 헤어나올 수 없는 근심에 빠졌어요.”

실제로 그는 미궁에 빠진 듯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인간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지혜가 깊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욕망의 역사로 보면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괴로워했다.

-일본의 디자인 산업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어떤 면에선 정체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미국의 서해안이나 중국 등 새로운 산업이 부흥하는 곳에서 새로운 디자인 조류가 탄생하고 있어요. 일본은 뒷짐 지고 못 따라가는 형국입니다. 자동차나 IT 기술 산업을 선도하는 것도 아니고, 에너지나 공항 등 공공 디자인에서도 ‘쿨하다'는 평가를 못 받아요. 공공 공간을 개발하려고 많이 노력 중이에요.”

1월 18일 중국 심천에 문을 연 무지 호텔 내부. 불필요한 요소는 배제한 채로 내부를 모두 무인양품의 제품으로 채웠다.
-한국의 건축가 최욱이 일본의 사무라이 미학은 정교하고 장인적이지만, 한국의 선비 미학은 관념적이고 직관적이라고 했습니다. 동의하나요?

“맞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무라이는 칼 대신 아름다움으로 세계와 대결하는 면이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만든 미적 클라이맥스가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아름다움은 철학적이고 좀 더 열려 있습니다. 미완성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기도 하죠.”

-한국의 공간 중에선 어떤 곳을 높이 평가합니까?

“가구박물관과 리움미술관이 훌륭합니다. 건축적으로도 멋지지만, 그 공간에 있어야 할 사물이 놓여있는 걸 보면 매우 즐겁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어떤 소재가 흥미로운가요?

“흰 종이요. 더러워지기 쉽고 찢어지기 쉽다는 그 소재의 긴장감이 재미있어요. 사람이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쓸 때 한번 손을 대면 되돌릴 수 없다는 물성이 좋습니다. 종이가 있었기에 인간은 수식을 적고 기록을 남겼지요. 모든 인간의 성과가 종이에 표현됐어요. 인쇄된 활자나 컴퓨터도 멋지지만, 저는 종이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가 있어요.”

-최근에 새롭게 발견한 디자인 원리가 있습니까?

“왜 테이블은 사각일까? 하하하. 지구는 둥근데 세계의 디자인은 사각이 훨씬 많아요. 곡선의 세계에 직각이 많은 이유는 뭘까? 빌딩, 엘리베이터, 문, 창문, 컴퓨터 모니터, 벽… 모두 직각이죠. 꿀벌은 육각형을 선호해요. 유독 인간이 직사각형에 안정감을 얻는 이유는 수평인 바닥에 서서 직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손과 눈이 양쪽으로 달려 좌우대칭을 원하는 욕구도 있고요. 자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깨달으면 시야가 트이고 지혜가 생겨요.”

그는 자하 하디드가 지은 이 유선형 건물(DDP)의 서가를 가리켰다. 사각형 디자인의 책을 원형 벽면의 서가에 세워놓으면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긴다고. 과연 그랬다.

절제를 넘어 모든 것을 비운 하라 켄야. 이토록 충만한 미니멀./이진한 기자
-선생을 이토록 엄정한 디자이너로 이끈 사람은 누굽니까?

“이시오카 에이코입니다. 세계적인 아트디렉터이자 의상 디자이너이기도 하지요. 그분이 도쿄에서 활동할 때,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일본도로 온몸을 얻어맞고 살이 찢기는 기분이었어요. 디자이너가 어떻게 높은 품질을 만들 수 있는지, 정말 엄격하게 배웠습니다. 그녀와 지냈던 ‘괴로웠던' 경험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녀의 완벽주의에 비교하면 다나카 이코의 무인양품은 미지근할 정도였습니다(웃음).”

일전에 만난 재일한국인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는 ‘나다움을 알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을 ‘부족함을 알고 자족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라 켄야가 도달하고자 하는 디자인 세상도 그와 비슷하다. 잘 우려낸 찻물처럼 개운하고, 잘 말린 이불처럼 산뜻한. 사물의 사물다움, 인간의 인간다움이 고요한 평원에서 만나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합의할 때의 그 어른다운 선명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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