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2012년에도, 2018년에도… MBC는 직원 이메일을 보고있다

조선일보
  • 김은중 기자
    입력 2018.03.31 03:01

    [Why 뉴스초점] 최승호 사장 취임 100일, MBC엔 어떤 일이…

    '세상에 이런 방송사가 또 있습니까? 불법 부당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방송사 경영진이 방송·보도를 제대로 하겠어요?'

    지난해 12월 최승호 사장이 취임한 후 MBC에서 요직을 맡은 A본부장은 2016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런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2012년 MBC를 떠들썩하게 한 '트로이컷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직후였다. 트로이컷 사건은 김재철 사장 재임 당시 MBC 정보시스템팀 직원이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시험 작동시키다 불특정 직원들의 이메일에 접근한 일이다. 당시 사측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렸다. 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MBC 직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들은 "정보 수집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도 않고 '막가파식 사찰'을 자행한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최승호 사장은 취임 일성에서 "지난 9년 방송 장악의 역사를 청산하고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보복성 인사와 감사에 "공수(攻數)만 뒤바뀐 채 데칼코마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취임 100여일 만에 이메일 사찰 의혹도 다시 제기됐다. 박영춘 감사는 지난 22일 방송문화진흥회 회의에서 "감사 과정에서 40여명의 이메일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당사자 동의 등의 절차는 없었다. 이에 반발한 'MBC노동조합'은 23일 최승호 사장과 박영춘 감사 등 9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경력 기자 80여명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부당 탄압과 불법 행위를 멈춰 달라"고 했다.

    좋은 사찰, 나쁜 사찰 따로 있다?

    MBC 감사국은 현재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언론노조가 주도한 파업에 불참했던 기자들을 중심으로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입사 경위까지 다시 따져보고 있다. '적폐 청산을 통한 MBC의 정상화'가 명분이다. 조사를 받은 이들에 따르면 감사국은 사내 이메일의 발신·수신 기록, 구체적인 내용과 첨부 파일, 삭제한 메일과 이를 복원한 사실까지 들이밀며 추궁했다고 한다. "그때 누구에게 왜 이런 메일을 보냈느냐" "왜 메일을 삭제했느냐"는 식이다. 박영춘 감사를 비롯한 감사국 직원 대부분이 언론노조 MBC본부 소속이다. 이전 사장 재임 당시 회사가 사찰을 했다며 법적 책임을 물었던 이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일자 MBC는 "복수의 법률 기관 조언을 받고 위법성을 조각한 정당한 감사 행위"라고 했다. 또 감사국 관계자는 2015년 안광한 사장 재임 시절 이루어진 정보 보안 서약을 들어 '직원 이메일을 들여다보는 것이 위법이 아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명 당사자들은 "감사국이 들여다본 2013~2014년의 메일은 보안 서약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데 사측이 이를 소급해 적용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정보 보안 서약은 회사 영업·관리에 대한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 개인 간에 주고받은 사적인 내용까지 회사 마음대로 열람·복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따르면 이메일을 열람하기 위해선 개인 정보 수집에 앞서 당사자 동의를 거쳐야 한다. 국회 과학기술위원회 간사인 바른미래당 오세정 의원은 "MBC가 자체 감사를 실시하는 중에 본인 동의 없이 이메일을 열람하고, 수년 전 삭제된 이메일을 사설 업체에 의뢰해 복구시켜내 파악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보복성 인사' 논란

    2012년 7월 언론노조가 170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회사 복귀를 선언하자 당시 김재철 사장은 조직 개편과 함께 156명에 대한 인사 발령을 새로 냈다. 파업에 적극 참여했던 인사 중 상당수가 신사옥 건설 담당 부서 등 기존 취재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당시 노조는 "파업 가담에 대한 '보복'으로 이뤄진 인사 발령은 원천 무효이자 단체 협상 위반"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이 새로 간부가 된 최승호 사장의 MBC 밑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80여명의 경력기자들은 사장 취임과 동시에 모든 취재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들은 현재 영상 분류, 편집 등 단순 반복의 비(非)취재 업무를 하고 있다. 소수의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지만 다른 아나운서가 이를 대독한다. "두 차례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경력 기자들의 이름이 방송에 나가거나 얼굴이 화면에 비치는 일이 없도록 한다"고 현 경영진이 천명했기 때문이다. 배현진 전 아나운서 등 6명은 본사 미디어센터 6층의 조명(UPS)실로 발령을 받아 3개월 넘게 지내야 했다. MBC 측은 "엄연한 보도본부 사무실 공간"이라고 했지만 본지 취재 결과 해당 공간은 엘리베이터 안내판엔 '기기실'로, 6층 비상 대피도에는 'UPS-1실'이라고 나와 있었다.

    현재 MBC에선 감사국과 심의국 등이 주도하는 조사가 여러 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출범한 '정상화위원회'가 그 중심이다. 활동 기간은 1년으로 조사 대상은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자들을 불러 지난 10년간의 보도 경위를 캐묻고 있다. "이 리포트는 누가 시켜서 했느냐" "왜 이런 사람을 인터뷰했느냐"는 식이다. 취재원 공개 요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위원회의 활동에 정당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인철 변호사는 "MBC는 상법상의 주식회사인데, 행정부의 진상조사위원회 규정을 흉내 내서 진상 조사를 행할 권한은 없다"고 했다. 위원회가 2008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특정 기간을 설정해 보도 경위를 묻고 있는 것도 문제다.

    파업 불참자들의 법률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넥스트로 관계자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 시효가 일반적으로 3년인 것에 비해 볼 때, MBC에서 벌이고 있는 과거 10년간의 업무에 대한 감사는 부당한 월권행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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