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납북자 명단이 공개된 것은 15년 전이다. 월간조선이 확보해 2003년 6월에 보도한 이승만 정부 당시 공보처 통계국의 '서울시 피해자 명부'에는 4616명 이름이 들어 있다. 그중 납북자로 분류된 게 2438명이었다. 공무원들이 9개 구청별로 일일이 조사해 작성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소설가 이광수, 현상윤 고려대 총장 등이 납북된 걸로 기록돼 있다.
▶그와 별도로 당시 정부가 작성한 8만661명의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도 공개됐다. 월간조선은 두 자료를 종합해 납북자 8만2959명 명단을 1900여 쪽의 책 두 권으로 엮어 냈다. 이름, 나이, 직업, 주소, 납치 장소 등 정보가 들어 있다. 많은 납북 인사가 당시 끌려간 길이 서울 성북구 '미아리 고개'다. 가요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는 당시 모습을 '철사 줄로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라고 묘사했다.
▶납북 인사들은 의사, 변호사, 교사, 농민, 학생 등 다양했다. 40% 정도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이었고, 강원도 주민도 1만명이나 됐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도 150명 포함됐다. 엄마, 아빠 등에 업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을 것이다. 군인·경찰·국회의원 등 공무원도 수천명이 끌려갔다.
▶1950년 10월 납북 공무원 2000명이 평남 대동군 한 언덕에서 집단 학살당했다는 사실이 최근 미군 기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인민군이 공무원들을 사흘간 밤과 새벽에 걸쳐 총살했다는 것이다. 대형 구덩이 세 개를 판 후 사살과 동시에 매장했다고 전한다. 피살 납북자들이 묻힌 구덩이는 40일쯤 뒤 미군과 국군이 현장 확인했다. 끌려가던 도중 대열에서 뒤처져 사살된 숫자도 200명쯤 됐다고 한다. 미군 문건을 발견한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피해 문제를 다뤄달라"고 했다.
▶전쟁은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는다. 6·25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집요하게 들춰내면서, 인민군의 잔혹 행위는 거론하려 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조사도 없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정리' 현황을 보면 80% 이상이 국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피해다. 11년 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납북자 8만명 이름을 부르는 행사가 열렸다. 해외 시민 단체들이 주최한 행사였다. 끔찍한 죽음을 당한 납북자들을 자기 나라에선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