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3월, 대구시 북구 안경의 歷史가 시작되다

조선일보
  • 박원수 기자
    입력 2018.03.30 03:00

    한국 안경의 출발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
    60년대 대구의 한 안경테 제조업체의 모습. /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 제공
    '대구 안경의 역사는 곧 한국 안경의 역사다'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은 1946년 3월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가 설립됐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테 제조공장이다. 이 회사를 설립한 주인공은 고(故) 김재수(1913~1982) 회장. 김 회장 3형제는 1930년대 후반 일본 최대의 안경 생산기지인 후쿠이현에서 '금곡셀룰로이드공업사'라는 소규모 안경공장을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접어 들면서 일본의 패전 가능성이 농후해지자 김 회장 형제들은 그대로 일본에 있다가는 우리나라에 안경제조 기술을 이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원자재를 포함한 공장의 주요 기계와 기구들을 함경북도 성진항을 통해 고향인 경북 선산으로 모두 옮겼다. 태평양 전쟁 말기 상황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한국에 나가서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만들겠다고 해서 일본으로부터 허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산에 정착했지만 순전히 수작업인데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공장을 가동하기란 불가능했다.

    서울 진출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마침내 맏이를 제외한 김 회장과 동생은 행선지를 대구로 돌렸다. 대한민국 안경제조 72년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6·25전쟁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안경테 생산업체가 형성돼 대구 북구가 안경 집산지로 성장하고 대구안경특구로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

    1946년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가 안경테를 생산하는 방식은 이렇다. 셀룰로이드 원판을 재단해 렌즈가 들어갈 위치에 칼집을 내고 그것을 가열된 상태로 만들었다. 다듬이 방망이 같은 둥근 형틀을 칼집 낸 곳에 밀어 넣어 동그랗게 늘렸다. 거기에 다리를 따로 부착시키면 안경테가 완성됐다. 비록 가내공업에 가까운 생산공정이었지만 안경 생산이라는 분야가 워낙 희귀했던데다 비교적 뛰어난 기술을 바탕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꾸준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1953년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 1961년 안흥공업사, 한국광학이 설립돼 60년대까지 한국안경산업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특히 1953년 대구에서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가 설립되면서 합성수지를 중심으로 한 안경테 생산이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국내 최초의 안경테 생산업체인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는 1960년 대구 최초로 홍콩에 3000만러 규모의 안경테를 수출하고 한때 종업원 수가 3000여명에 달하는 등 규모가 대단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적 행사를 비롯해 노령화 인구증가에 따른 안경 착용자 증가, 안경의 패션화 경향 등으로 1980년대초 국내 안경산업은 세계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세계 4대 안경집산지로 이름을 떨치던 대구3산업단지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안경테의 90% 이상을 만들었다.

    최근 10년 사이 중국의 저가공세와 해외브랜드의 선호로 수입이 증가되는 등 안경테 산업이 위축돼 가고 있지만 업계는 성장전망이 여전히 양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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