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6·25때 대동강서 납북공무원 2000명 학살"

입력 2018.03.29 04:27 | 수정 2018.03.30 16:50

납북인사가족協, 미군 문건 입수
"1950년 10월 8일부터 사흘간 총살, 시신은 대형 구덩이 3곳에 매장… 부상당한 포로 등 200여명도 사살"

"4월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때 학살·납북 피해 문제 다뤄달라"

북한군이 6·25전쟁 당시 약 2000명에 달하는 남한 공무원을 학살한 사건이 미군의 기밀문서로 확인됐다. 사흘 동안 이뤄진 대량 학살이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통해 입수한 '한국전쟁범죄 사건번호 141에 대한 법적 분석(Legal Analysis of Korean War Crimes Case Number 141)'에는 당시 북한군이 저지른 납북 공무원 학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다.

북한군 증언으로 그린 총살 당시 상황
북한군 증언으로 그린 총살 당시 상황 - 1950년 10월 북한군이 평안남도 대동군의 한 언덕에서 납북 공무원 약 2000명을 총살하던 상황을 기록한 그림. 미군 기밀문서‘한국전쟁 범죄 사건번호 141에 대한 법적 분석’38쪽에 나온다. 당시 학살에 가담한 북한군 포로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문건에 따르면, 북한 내무성 소속 부대는 1950년 10월 납북 공무원 약 2000명을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기암리 북서쪽에 있는 한 언덕에서 학살했다. 그해 9월은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북한으로 진격하던 때였다. 북한군은 시변리(황해북도 토산군 토산읍의 옛 지명으로 추정)라 불리는 곳에서 포로 2000여 명을 인도받았다. 서울과 개성 지역 공무원들이었다.

학살은 10월 8일 자정 무렵부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포로 800~ 1000명을 총살했다. 나머지 포로는 같은 방식으로 9일 자정부터 학살했다. 포로가 모두 숨진 시간은 10일 오전 4시 30분쯤이었다. 3일 만에 2000여 명을 학살한 것이다. 북한군은 시신을 쉽게 매장하기 위해 대형 구덩이(mass graves) 3개를 미리 파 두고 구덩이 주변이나 안에 포로를 세웠다. 사살(射殺)과 동시에 시신이 매장되게끔 한 것이다.

학살된 포로들이 매장된 대형 집단 무덤 세 곳은 미군과 국군의 현지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현지 정보원들로부터 이 학살극을 전해 들은 미군은 같은 해 11월부터 조사에 나섰다. 미 육군 소속 존 테일러 중령 등 미군 관계자와 국군 관계자들이 11월 17일 학살이 이뤄졌다는 지역을 방문한 결과, 가로세로가 각 15m 이상, 깊이 2m에 달하는 대형 집단 무덤 3곳이 발견됐다.

보고서엔 포로들이 이동하는 동안 학대받은 내용도 나온다. 남한 포로들은 이동하는 동안 식사를 거의 제공받지 못했다. 대열에서 뒤처지면 구타를 당했고, 아픈 포로들은 대열 뒤로 보내진 뒤 사살됐다. 약 200명이 이런 식으로 살해됐다.

80쪽짜리 이 문건은 1953년 6월 한반도에 상주하던 미군 후방기지사령부(Korean Communications Zone)가 학살에 가담한 북한군 포로 3명과 민간인 목격자 증언,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영조(63)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부터 기증받은 '한국전쟁 범죄 사례(KWC)' 문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이미일(69)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번 학살 사건으로 한국전쟁 당시 납북 피해가 명확히 증명됐다"며 "4월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런 납북 피해를 다루지 않는다면 그 평화는 가짜 평화"라고 말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2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말하려면 휴전협정에서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지금까지 고통받는 전쟁 납북 피해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의제화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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