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 힘든가요? 남자에게도 잔인한 세상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3.28 03:03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맞서 90년생 김지훈·79년생 정대현 등장
    "여성 차별만큼 남성 역차별 많아"

    "나는 개돼지였다."

    지난달 출간된 소설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74년생 유시민'은 이런 자조로 시작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것으로, 각종 잡일과 대리운전으로 악착같이 종잣돈을 모아 서울 변두리에 치킨집을 낸 소설 속 유시민은, 그러나 최저시급 인상 등의 여파로 도산하고, 명운을 걸고 투자한 비트코인마저 정부 규제 강화로 폭락하자 그간 지지하던 좌파 정권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망상장애에 시달린다.

    소설을 쓴 74년생 이상윤 부경대 겸임교수는 "'82년생 김지영'보다 훨씬 힘든 세대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74년생인 지금의 40대 남성은 20대 취업 시기에 IMF를 맞았고, 결혼과 자녀 양육의 고비인 30대에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으며 이후에도 '뜯어 먹히기만 하는' 고독한 세대"라며 "친구 중 40대에 명예퇴직하고 치킨집을 열었지만 잘 안 되거나 지금껏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박상훈
    30대 여성들의 차별을 폭로하며 페미니즘의 경전(經典)으로 추앙받는 소설 '82년생 김지영' 이후 "남자들의 삶도 조명하자"는 각종 세대론적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인터넷을 달군 '90년생 김지훈' 소동 역시 이 맥락에서 나왔다. 지난 20일 인터넷 모금 사이트 텀블벅에는 "남자라서 양보하고 남자라서 무거운 거 들며 자란 평범한 90년생 남자"라며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이뤄진 단편 소설을 준비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1990년대에 태어난 남성 김지훈의 삶을 추적하는 패러디 소설을 내겠다고 후원을 요청한 것인데, 소설 목차에는 '전쟁 중인 나라, 의무는 남자들만' '왜 황금연휴 전날에 동시에 생리해요?' 등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텀블벅 측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지난 21일 서울대학교 페이스북 대나무숲(익명 페이지) 계정에는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 남편 '79년생 정대현'을 다룬 게시글이 올라왔다. "한국 남자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과 피해를 79년생 정대현의 인생에 전부 때려 박아 쓴다면 대충 이런 내용이 나올 것 같다"며 여러 내용을 열거했다. '100일 때―정대현씨도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고추를 활짝 드러내놓고 사진을 찍었다' '군복무 때―정대현씨는 군대에서 인생의 쓴맛 더러운 맛을 모두 봤다. 유격 훈련받다 허리를 삐끗해 의병 제대했다. 허리디스크는 정대현씨의 평생 동반자가 됐다' '지하철 탈 때―정대현씨는 주말도 쉬지 못하고 계속되는 야근에 몸이 파김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망설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으나 누군가 사진을 찍어 올려 전화에 불이 났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렇게 남성으로 겪는 차별만을 응집시키고, 여성은 남성의 희생으로 편익만 누리는 존재로 묘사하는 소설이 출판된다면 남성 인권의 성서로 추앙받을 수 있을까?" 10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리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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