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보다 잘 나간다’ 사이보그 모델

입력 2018.03.26 06:00


수십만 팬 거느린 가상 모델, 진짜 패션 아이콘이 되다
소셜미디어에선 진짜와 가짜 모두 같은 인격


릴 미켈라는 인스타그램에서 81만명이 넘는 팬을 보유한 유명인사다. 그는 실제 하지 않는 가상 소녀다./인스타그램 @liilmiquela

19살 모델 릴 미켈라는 인스타그램에서 81만 명이 넘는 팬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두툼한 입술에 커다란 눈, 볼을 뒤덮은 주근깨와 짧은 앞머리가 트레이드마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그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일상 패션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걸 즐긴다. 지난해에는 가수로 데뷔했는데, 그의 첫 싱글 ‘Not Mine’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8위에 기록했다.

완벽해 보이는 미켈라의 일상은 소셜미디어 스타가 되기에 충분했다. 여느 인플루언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온라인상에서만 존재하는 가상 인물이란 것.

◇ 가상 소녀, 미켈라 프라다 패션쇼에 참석하다?

미켈라는 2016년 4월 처음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다. 그의 피부와 머리카락, 표정이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중이 그를 진짜로 여기게 한 이유는 자연스러운 소통 방식에 있다. 미켈라는 LA 명소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올리고, 샤넬, 발렌시아가, 슈프림 등 인기 브랜드의 옷을 조합해 멋진 데일리 룩을 공유한다. 또 음악가와 예술가 등 ‘진짜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들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켈라는 V매거진과 화보를 찍고(왼쪽), 프라다의 2018 가을/겨울 패션쇼에 초대받는 등 차세대 패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인스타그램 @liilmiquela

또래의 Y세대처럼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미켈라는 트럼프의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폐지를 반대하는 뜻으로 #DefendDACA 해시태그를 달고, 페미니즘 시위인 Women 's March를 지지했다. 미켈라는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여전히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진실이 무엇이냐”고 묻는 댓글이 발견된다.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 수십만 명의 추종자를 이끄는 미켈라를 패션계가 가만 둘리 없다. 이미 다수의 브랜드가 그에게 의상을 지원하고 있으며, 얼마 전엔 패션 잡지 V매거진와 화보도 진행했다. 믿거나 말거나 지난달엔 프라다 패션쇼에도 참석했다. 미켈라는 "나는 당신에게 진실한 존재는 아니지만, 당신은 나를 믿어도 됩니다"라는 문구를 올리며 패션쇼를 홍보했다.

◇ 미켈라, 슈두 그램… 스타덤에 오른 가상 모델들

미켈라에 이어 떠오르는 가상 모델이 또 있다. 슈두 그램이다. 그는 매끄러운 피부와 완벽한 이목구비를 지닌 흑인 모델이다. 지난해 4월 인스타그램에 첫 계정을 연 이래 현재까지 8만4000여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미켈라와 달리 신상을 공개했다. 영국 출신 사진작가 카메룬 제임스 윌슨이 패션업계에서 10여 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3D 이미지 처리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 최근엔 팝가수 리한나의 뷰티 브랜드인 펜티 뷰티의 립스틱 모델로 발탁돼 주목받았다.

윌슨은 “3D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던 중 원하는 대로 모델을 만들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가수 리한나의 화장품 펜티 뷰티의 립스틱 모델로 나선 슈두 그램/인스타그램 @shudu.gram

일각에선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백인 사진작가가 흑인 여성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고도 돈을 벌 방법을 찾아냈다”는 글을 올려 공감을 샀다. 이에 윌슨은 슈두는 예술 작품이며 상업용 모델로 사용하지 않아 실제 직업 모델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패션계에 가상 모델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국내에선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아담은 여성복 나이스클랍의 지원으로 왼쪽 가슴에 브랜드 로고가 크게 새겨진 옷을 입고 방송에 나왔다. 하지만 기술의 한계와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곧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해외에서는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이 2013년 가수 하츠네 미쿠의 가상 투어 의상을 디자인한 데 이어, 2016년 비디오 게임 ‘파이널 판타지 13’의 주인공 라이트닝을 광고 모델로 세워 화제를 모았다.

미켈라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가 진실성을 발견하기 더 어려운 시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이미지에 원하는 의미를 해석하고 투영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원하는 이미지로 소통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인스타그램 속 가상 소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