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 숨은 재미… 걸을수록 궁금한 괴산 '낭떠러지 마을'

입력 2018.03.26 03:04 | 수정 2018.03.26 13:40

[히든 시티] 3가구만 살던 '산막이 마을'
생태 보존한 둘레길로 관광객 年 160만명 불러들여

괴산군 , 2006년 농촌 개발 추진
생태훼손 않는 공사기법으로 5년에 걸쳐 4㎞ 산막이 옛길 조성
길 곳곳에 옛이야기 덧입혀
완만한 평지, 남녀노소 부담 없어… 등산로·뱃길 따라 괴산호 감상도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마을 입구에선 잔칫집에 온 듯 구수한 기름냄새가 진동했다. 야외 주막에 둘러앉은 관광객들이 노릇노릇 잘 익은 파전에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지난 10일 이곳에서 만난 김성현(62·서울)씨는 "산과 어우러진 호수가 절경"이라며 "막걸리 한 잔 걸치니 신선이 부럽지 않다"고 했다. 산이 막아서 더 갈 곳이 없다던 오지(奧地)가 한 해 160만명이 찾는 명소로 바뀐 후의 풍경이다.

◇조선시대 귀양지가 명품 둘레길로

산막이마을은 멀고 외졌던 곳이다. 조선시대 을사사화에 연루됐던 노수신(盧守愼·1515~1590)의 귀양지였다. '산막이'는 '산이 막아섰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피란민들이 산에 막혀 더는 못 가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1952년 괴산댐이 건설되면서 달천의 물길은 거대한 호수가 됐다. 대신 나룻배가 등장했다. 뱃길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깎아지른 바위벼랑에 난 위험한 오솔길을 1시간이 넘도록 걸어야만 외부로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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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옛길을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한때 3가구만 남아 있던 산골 오지 마을의 옛길에는 아기자기한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신현종 기자

50년이 넘도록 섬 같은 육지에 고립되자 산막이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등졌다. 한때 30가구가 넘었으나 1980년대 10가구까지 줄었다. 2000년대 초 3가구만 남게 됐다. 그랬던 마을이 2011년 이후 주민이 늘기 시작했다. '산막이 옛길'이 생기면서다. 2006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며 괴산군은 마을 주민들이 사오랑 마을까지 오가던 10리(4㎞) 길을 생태길로 만들기로 했다. 산막이 마을 사람들이 바깥과 소통하는 옛 벼랑길을 복원한 것이다. 괴산군은 자연생태를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히 친환경공법으로 길을 조성했다. 공사장비와 자재는 괴산호의 물길을 따라 바지선을 이용해 실어 날랐다. 겨울에는 썰매를 이용했다. 자재는 나무에 도르래를 걸어 일일이 사람의 힘으로 들어 올렸다. 환경을 생각한 공사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산막이 옛길은 자연생태계가 보전된 생태탐방로로 탄생했다.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잠자리를 제공하며 활력을 찾았다. 노광영(54)씨는 "이제는 어느 정도 수입도 안정돼가는 것 같다"며 "2016년부터는 산막이 옛길 상인회도 만들어 산막이 옛길과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산막이 옛길은 2015년과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2016년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걷기 좋은 길 10선'에 선정되는 등 명품 둘레길로 자리매김했다. 관광객 수도 점차 늘어 지난해 160만명이 찾았다.

산막이 마을 주변은 자연환경의 보고(寶庫)다. 천연기념물 190호인 황쏘가리, 어름치(259호), 하늘다람쥐(328호)와 까막딱따구리(242호) 등 20여종의 멸종위기 동식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한다. 오성인(70) 해설사는 "산막이 옛길은 계절별로 바뀌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 입은 옛길, 숨은 재미 27가지

산막이 옛길은 완만한 평지에 가깝다. 아이나 임신부, 어르신도 함께 걸을 수 있다. 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50분이면 산막이 마을에 다다른다. 걷다 보면 27가지의 숨은 재미를 발견한다. 괴산군은 1968년까지 호랑이가 드나들며 살았다는 '호랑이굴', 옛 서당에서 여름철 야외학습장으로 썼다는 '고인돌쉼터' 등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를 덧그림 그리듯 입혔다. 산책로 외에도 등산로와 뱃길도 있다. 등산로는 노루샘에서 시작해 등잔봉(450m)∼천장봉(437m)을 지나는 2시간짜리 코스와 삼성봉(550m)까지 연결된 3시간 코스가 있다. 등산로를 이용하면 산 정상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괴산호를 낀 한반도를 닮은 지형을 볼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괴산호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산막이 옛길 입구인 차돌바위나루에서 산막이 나루까지 유람선이 운행된다. 가격은 편도 대인 5000원, 소인 3000원이다. 30만명이 다녀간 연하협구름다리(167m, 산막이옛길 굴바위∼갈론나루)는 또 다른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연하협구름다리를 건너면 25㎞ 코스의 '충청도 양반길'도 걸을 수 있다.

나용찬 괴산군수는 "연계성 있는 관광산업을 개발해 많은 이의 휴식처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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