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여배우들을 성폭행·성추행 한 혐의를 받는 연극연출가 이윤택(66)씨가 구속됐다. 지난달 첫 미투(Me Too·나도 당했다)폭로가 나온 지 38일 만이다.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오후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피의자의 지위, 피해자의 수, 추행의 정도와 방법 및 기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회색 코트와 검은색 목도리 차림으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이씨는 “(피해자의 주장에는) 사실도 있고 왜곡도 있다. 그런 부분들은 재판을 통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측근을 동원해 피해자들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으면서 “제가 회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아무 것도 없고, (저는) 혼자 있다”고 답변했다.
이씨는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서울 강북구 건물을 급매(急賣)한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는 웃음을 보이면서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제가 회계 담당관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을 위해서 손해배상을 포함해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연극계 대부’로 군림해온 그가 약 18년이나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극단원들을 성(性)노리개로 삼았다는 ‘미투 폭로’는 문화예술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달 19일 자신을 겨냥한 폭로가 잇따르자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씨는 “죄의식을 가지면서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관계는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 “안마는 제가 시켰지만 예전에는 남자건 여자건 다 했다” “내게 성폭행당한 뒤 낙태했다는 피해자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관련 혐의를 부인했었다.
이 기자회견 이후 극단 내부에서 “이씨가 ‘노래 가사를 쓰듯이, 시를 쓰듯이’ 사과문을 만들었고, 당원들과 함께 기자회견 리허설을 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여성 연극인 총 17명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조사한 그의 성추행 혐의만 62건. 이 가운데 24건을 영장에 적시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사실일 것"이라며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 "연기지도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윤택 성폭력 폭로 이후 한국사회 ‘미투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고은 시인, 극작가 오태석, 배우 고(故) 조민기,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조재현, 배우 오달수, 사진작가 배병우 등에 대한 미투 폭로가 꼬리를 물었다.
이씨는 ‘미투 운동’ 이후 두 번째로 가해자가 구속된 사례다. 지난 1일에는 미성년 단원들을 성폭행 한 혐의로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 조증윤(50)씨가 구속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