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버지의 포옹이 가장 큰 유산이었다" 이혜영의 모노드라마

    입력 : 2018.03.24 14:00 | 수정 : 2018.03.27 07:45


    ‘마더' 이혜영 “내 인생은 포스트모던, 늘 엄마가 그리웠고 아이를 원했다"
    “배우가 된 것, 결혼한 것 그리고 이혼하지 않은 것, 가장 자랑스러워"
    “천재 감독 이만희는 다정한 아버지, ‘뜨겁게 안아줬고 지그시 바라봐줬다"


    ‘마더'로 인생 역작을 보여준 여배우 이혜영(56세). 60년대 모더니즘 영화의 기수였던 故 이만희 감독의 딸이다./고운호 기자

    “안녕, 세상이여.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안녕.”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tvN 드라마 ‘마더'에서 이혜영이 닿으면 사라지는 봄 눈 같은 목소리로 세상에 작별을 고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천진하게 위엄있게, 죽음을 맞는 인간을 목도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마더'는 세상 모든 엄마를 위한 찬가였다. 그리고 세 아이를 입양한 여배우 차영신을 연기한 이혜영은 자신의 극적인 인생이 투사된 실로 장엄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혜영에게 만남을 청했다. 3월 중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머금고 이혜영이 들어왔다.

    틸다 스윈턴 스타일의 현대적인 이목구비, 겨울 공기를 찌르는 솔잎 같은 목소리로 80년대 영화와 연극 무대를 누볐던 신비롭고 고요한 여자. ‘삼포 가는 길' ‘만추'로 유명한 천재 감독 이만희의 딸. “나는 포스트모던한 인물이었다"라고 그녀는 서두를 열었다.

    인터뷰는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시작됐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전위적이며 동시에 전통적인 야누스의 그것이었다. 뜨거운 레몬차 한 잔을 그러쥐고, 한 땀 한 땀 공기 중에 수를 놓듯 섬세한 아리아가 펼쳐졌다.

    이혜영은 자신을 강도가 들어왔다가도 칼을 내려놓고 안아줄 정도로 착하고 순진한 여자라고 했고, 딸은 엄마 이혜영을 “매일의 어려움을 새롭게 이겨내는 헌신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연기 인생 37년 동안, 쓰레기 더미 위에 핀 백합처럼 이혜영은 지치지 않고 오롯했다. 그녀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 이만희 감독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은 ‘뜨거운 포옹' 뿐이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이혜영. 그녀는 인터뷰 내내 단단한 외피 속에 감춰진 여린 속살을 내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운호 기자

    -참으로 모던한 여성입니다.
    “그런가요? 내 생각엔… 난 늘 포스트모던이었어요. 아하하하.”

    2001년 류승완 감독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장에서 그녀를 본 후로 17년만이었다. 감포 바닷가에서 전도연과 나란히 앉아 있던 이혜영의 옆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길고 오똑한 콧날을 덮었다. 마흔 즈음, 그녀는 좀 피로하고 고독해 보였다. 당시 나는 “저 외계 생명체 같은 여자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 했다.

    -그렇군요! 포스트모던. 우리 사회가 모던으로 달려갈 때, 자의든 타의든 당신이 그 앞에 조금은 생뚱맞고 이질적인 모습으로 불시착한 듯했어요. 젠더리스적인 영묘한 얼굴, 축축하고 명료한 이국적 발성… 이제야 이혜영이 시대를 제대로 만난 느낌입니다.

    “그래요? 난 그런데 이런 인터뷰가 무서워.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난 솔직할 수밖에 없는데… (겁난 표정으로 웃는다) 난 그거밖에 무기가 없잖아요.”

    ‘그 무기가 당신을 찌르지 않을 것’이라고, 복화술로 말해주었다.

    -독보적인 발성과 음색은 훈련한 건가요?

    “아니요. 내 생각에 이건 서울 사투리 같아. 이상한 건 내가 말하면 한국말이 또 영어처럼 들린대요(웃음). 어떤 연출자는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쫓아낸 적도 있어요.”

    -드라마 ‘마더' 얘기를 해보죠. 세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 위엄 있는 여배우 ‘차영신’ 역을 해냈어요. 그건 ‘엄마는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한 편의 인문학적 보고서였습니다.

    “‘마더'를 보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평소에 너 같더라. 아이들에 대한 너의 무한한 사랑이 전혀 낯설지 않더구나.” 제 삶이 어떤 극적 효과를 만들어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모든 배우는 살아온 만큼, 고민한 만큼 연기를 하게 되어 있지요.”



    -아이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까?

    “(단호하게)언제나. 늘 아이를 낳고 싶었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길 때마다 결혼하고 싶었어요. 하하하.”

    -현모양처가 꿈이었지요?

    “늘 그랬어요. 늘 가정을 그리워했습니다. 결핍이 있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싶었던가 봐요.”

    남의 이야기인 듯, 자기 이야기인 듯 분리와 일체가 혼재한 그 미묘한 거리감에 공기의 밀도가 당겨졌다. 손바닥으로 탬버린을 두드리듯 다시 화사한 연극 풍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친구들이 “몇 시야? 나 엄마한테 혼나. 집에 가야 해" 그러면 걘 싫어했지만 난 “좋겠다" 그랬어요. 보호받는 아이들에 대한 선망이었을 거예요.”

    -학대받는 아이와 여러 형태의 엄마가 등장하는 ‘마더’의 대본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예전에 저는 ‘꽃보다 남자'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아들의 엄마 역을 주로 했어요. 특별한 건 딸이 등장했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 전 아무것도 아니었죠. 그런데 용감한 딸 ‘수진'이 등장하면서 모녀 관계의 힘이 발휘됐어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어른스러운 아이 ‘혜나'는 저의 어린 시절과 겹쳐졌고, 미성숙해서 학대하는 엄마 ‘자영'을 보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해가 됐어요. 학대당하는 아이를 유괴해서 구출하는 ‘수진'의 돌출행동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어요. 그런 도전적인 선택이 있는 대본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었어요. ‘마더'는 모든 여자가 들어야 할 이야기였어요.”

    -두려움은 없었나요?

    “사랑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이 힘이 되죠. 제가 한 대사가 있어요. “엄마가 된다는 건 그 작은 존재를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이다." 전 그렇게 얘기했고, 그렇게 살았어요. 조금의 주저도 없었지요. 그래도 모든 아이는 부모에게 불만이 있더군요(웃음).”

    가벼운 한숨을 섞어 그녀가 말했다. “이상적인 엄마는 없는 것 같다"고.


    드라마 ‘마더’는 ‘모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넣고 서로가 서로의 엄마가 되고, 딸이 되는 서사를 엮어 다양한 형태의 모성을 작품 속에 녹였다./고운호 기자

    -‘마더’에서 내가 느낀 이혜영의 힘은 이거였어요. 자식이 도망갈 수 있도록 버티는 힘, 마침내 연어처럼 돌아오는 자식을 기꺼이 받아내는 힘.

    “(미소 지으며)여러 번 흔들렸지만 언제나 확신을 갖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 했어요. 예전 드라마에서 아들의 엄마로 나왔을 때, 그때는 자기가 디자이너라고 배우라고, 그 도도한 권위를 지키려고 아들을 소외시켰잖아요. 그런데 ‘마더'의 차영신은 그게 없어요. 우리 엄마도 그 점을 느끼셨던 모양이야.”

    -일체감을 느꼈습니까?

    “많이 느꼈어요. 이보영이라는 배우와도 그랬죠. 우린 연기를 보여준다기보다 서로 리액션을 주고받았다고나 할까요. 우리의 균형 감각이 감정의 하모니를 만들어냈어요.”

    -사실 7년 만의 출연이라는 게 놀랍습니다.

    “연극할 때는 말이죠, 그 한 작품을 위해서 책을 정말 많이 읽어요. 연극 대본은 친절한 지문이 없어요. 그래서 대사를 연구하기 위해 공부를 어마어마하게 하죠. 7년 만에 TV를 하는데, 촬영장에서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더군요. 수시로 ‘머리 괜찮나, 화장 괜찮나' 신경을 써야 하니..., TV를 하면 그래서 예뻐질 수밖에 없나 봐요(웃음).

    “예전엔 TV 할 때 나는 ‘이거 아니면 저거’, 화면을 찢어버리고 나올 것처럼 ‘투머치’를 했어요. 시키는 데로도 안 했고, 감정 조절도 멋대로였죠(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배우들의 그 적당한 연기가 참 좋았어요. 친절한 지문과 감정의 적당함이 새롭게 다가왔죠.”

    -대본을 쓴 작가 정서경은 이혜영의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것 같더군요(웃음).

    “정서경 작가가 나를 공부시켰어요(웃음). 내가 9살 때부터 무대에 섰다는 설정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쏜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를 읽게 했어요. 나한테 그런 숙제의 시간을 갖게 해준 게 너무 고마워요. 기회를 준 거죠. 과할 것 같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이혜영이 하면 괜찮다는 거예요. 제가 말로만 배우가 아니라 진짜 배우였다는 걸 보여준 거죠. 죽음을 앞두고 모든 걸 정리하면서, 제 모든 걸 쏟아냈어요.”

    -정서경은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 박찬욱 감독과 작업하면서 여성의 힘을 불어넣었던 작가예요. 왜 당신을 원했다고 하던가요? 뛰어난 직관? 아름다운 목소리?

    “내가 어제 질문지를 받아보고 그이에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이런 답을 보내왔어요.”

    스마트폰으로 온 정서경 작가의 문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위엄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배우는 이혜영밖에 없었다. 나는 여성적 모성보다 남성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직적이면서도 동시에 수평적인 모성을 보여줄 수 있는, 그 사람이 이혜영이었다.’


    이혜영이 열연한 ‘마더’는 제1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한다. 전세계 드라마 중 10개 작품만 선정된 공식 경쟁부문에 아시아 대표로 선정된 것./고운호 기자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그러니 감정이 훌쩍 점프가 될 때는 이게 맞나 싶어서 작가에게 물어봤어요. 엄마로서 안 풀리면 아버지라고 생각해보라더군. 하하하. “배우님! 당신을 가장이라고 생각하고 완성은 직접 하세요!" 그러더라니까.”

    -직관이 뛰어난 배우지요?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해요. 그래서 내가 느낄 수 없는 역할이면 할 수가 없었어요. 생각이나 지식이 높은 배우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나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역할을 원했어요.”

    -그런 이유로 한동안 배역 없이 쉬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아이 키우느라 바빴어요(웃음). 생각해보면 감독도 트렌드도 10년을 주기로 바뀌는 것 같아요. 60년대는 제 아버지였던 이만희 감독, 70년대는 이장희, 80년대는 곽지균, 90년대는 장선우, 강우석 그런 분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것 같아.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당신들은 구닥다리니 저리로 가시오!"하고 밀어내곤 했죠(웃음). 저는 80년대에 주로 활동했는데, 2000년도에 류승완 감독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피도 눈물도 없이'라는 영화에 전도연하고 저를 같이 캐스팅했어요.”

    -사라진 90년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보냈습니까?

    “1994년에 파리로 갔어요. 떠날 생각은 없었어요. 쫓아낸 사람도 없고요. 그래도 밀려나는 느낌은 있었어요. 더는 할 게 없었거든. 1997년에 돌아와서 다시 연극을 했죠. 좋은 평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데뷔를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윤복희의 언더스터디(주역이 문제가 생겼을 때 오르는 대역)로 했잖아요. 고3 때부터 나름 유망주였다고. 하하하.”

    연극을 열심히 했어요. ‘사의 찬미'의 윤심덕 역도 하고, ‘문제적 인간 연산'이나 가극 ‘눈물의 여왕' 같은 걸 했죠. 동아 연극상을 3번이나 받은 걸요(웃음). 어느 날인가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이혜영 씨에게 어울리는 ‘헤다 가블러'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어. 연극영화과 학생들이야 입센 작품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난 학교를 안 갔으니 또 처음 듣는 얘기였거든. 호호호.”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요?

    “학창 시절엔 할 수가 없었어요. 가정이 불안하니 애가 공부를 할 수가 없었던 거지.”

    -중학교 다닐 때까지 이만희 감독과 함께 살았지요?

    “네. 중학교 1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요. 순종하며 살았어요. 반항할 형편이 아니었죠. 아버지는 영화밖에 몰랐고 “이래라! 저래라!” 교육하신 적이 없어요. 딱 한 번 “이만희 딸이 그거 밖에 안 되냐?”고 하신 적은 있어요. 아버지는 신이셨어요. 전주 이가 효령대군파의 양반이었고 무척 효자였어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기는 이혜영의 서늘한 얼굴./고운호 기자

    -예술가로서 그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유명한 ‘삼포 가는 길'은 아버지의 유작은 맞지만, 대표작은 아니었어요. 예술가 이만희의 대표작은 ‘시장' ‘흑맥' ‘만추' 이 3편인데 다 프린트를 잃어버렸어요. ‘만추'는 김수용 감독이 카메라 워크까지 똑같이 리메이크했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같은 군사 영화도 찍고 ‘물레방아' 같은 문예 영화도 찍었고 누아르 영화도 찍었어요. 성실한 천재였죠.”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건 사실이에요. 다만 영화를 좀 더 사랑해서 딸을 더 사랑할 겨를이 없었던 거지. 하하하. 우린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쪽지고 한복 입고 한평생 맨발 드러내지 않았던 조선 여인이었어요. 난 어린 시절에도 고무신을 신고 놀았어요. 1976년, 할머니가 88세로 돌아가신 후에야, (번쩍 만세를 부르며)주체할 수 없는 저의 ‘모던'이 터져 나온 거죠.”

    -정말 포스트모던한 가정이군요.

    “아버지는 학교 가는 것보다 연극하는 걸 더 좋아했던 8남매의 막내였어요. 사랑을 많이 받으며 크셨죠. 아버지와 함께 살 때도 당신은 항상 깔깔 웃고 재밌게 지내셨어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저는 웃은 적이 별로 없어요.”

    “늘 엄마가 그리웠다"고 휘파람 불듯 말했다. 삼 남매를 낳고 이혼한 엄마를 이혜영은 중학교 1학년 때 종로 극장 단성사 앞에서 처음 보았다. “너무 예뻐서 배우인 줄 알았어요.” 젊은 엄마가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눈이 하트를 그렸다.

    “엄마는 촉망받는 배우였고, 할리우드로 가실 생각까지 했는데 이만희 만나서 꿈을 접은 거죠.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바라던 여배우의 꿈을 내가 이뤄졌잖아. 애들은 어쩌면 부모가 잃어버린 꿈의 한 조각을 기어이 찾아서 맞춰내는 거 같아요.”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부모에게 사랑을 받은 것 이상으로, 부모를 참 사랑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그게 또 이혜영의 힘인 것 같습니다만.

    “아버지는 그런 게 있었어요, 한번 안으면 여기 가슴부터 무릎까지 달라붙도록 힘있게 안아줬어요. 정말 강렬한 포옹이었어. 얼마나 추억이 없으면 그럴까마는… 하하하, 나는 우리 집안에서 물려받은 게 포옹밖에 없어. 그런데 그게 나한텐 최고의 유산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애들 안아줄 때 (눈을 감으며 느끼듯)이렇게 꼭 안아줘요. 남편한테도 그래요. “여보 마음만 보내지 말고, 아이들 힘껏 안아줘".”



    -그리고 또 무엇을...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 아버지가 종종 그러셨거든. 지그시 쳐다보는 거. 내가 이번에 ‘우리 읍내'라는 연극 대본을 읽으면서 또 감동을 받았어요. 죽은 자가 이승이 그리워 다녀가는 이야긴데... 거기서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더 장님이라는 거지. 12살 생일 파티 때 가서 “엄마, 나 좀 봐" 간절히 불러도 엄마는 건성건성, 파티 준비만 해.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공기를 느끼면서 아이 얼굴을 바라보는 거, 깊게 포옹하는 시간만은 잃어버리면 안 돼요.”

    -배우가 된 건 엄마의 영향이었나요?

    “우리 엄마는 딱 두 마디 했어요. “할래? 해라!”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 모집 콘테스트 시험 치르고 들어갔어요.”

    -외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죠? 90년대 시거니 위버나 2000년대 틸다 스윈턴처럼, 역시나 포스트모던합니다만.

    “남성과 여성이 같이 있죠. 영화 ‘사방지'에서는 야사에 나오는 여장 남자였고,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에서는 성공에 취한 남자들을 조종하는 야심만만한 마담 역할을 했어요. ‘여왕벌'도 낫배드였습니다.”

    -스스로 남자에게 장악되지 않는 캐릭터를 원했습니까?

    “그런 역할만 주로 들어왔어요. 내가 하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거죠. 80년대 영화에서는 슬픈 여성들이 많았어요. 주로 다방 레지 아니면 작부였어요. 내 역할은 비교적 슬프지는 않았어요.”

    -만족합니까?

    “남성의 상대적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여성으로 배역을 지켰다는 거엔 만족해요. 현실에선 “나의 남자는 어디 있나?" 했죠(웃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키 큰 여자는 멜로에 쓰질 않았어요. 나탈리 우드나 리즈 테일러도 요만했잖아요.”

    -현실의 남편은 어떤가요?

    “(수줍게 웃으며)그 사람은 나를 이렇게(손으로 들어 올린다) 안아줘요. TV 보다가도 “이보영도 예쁘지만, 네 옆에선 비교가 안 돼" 그런다니까요(웃음).”

    파리에 있을 때 출장 온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이혜영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제 연기가 좋아졌대요. 특유의 불안함이 사라졌다는 거죠.”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엄마 ‘오들희' 역으로 나왔을 때가 기억나네요. “아들!”하고 소프라노 가수처럼 발성을 했죠(웃음).

    “당시에 제가 둘째를 막 낳고, 제 아들을 그렇게 불렀어요(웃음). 극 중 아들을 내 아들 보듯 했지요. 사랑과 성령이 충만한 시기였어요.”


    그녀 안에 얼마나 많은 아이와 엄마가 들어있는 걸까./고운호 기자

    -그 드라마가 이혜영의 독창성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나요?

    “반반이에요. 드라마가 끝나고 ‘더 게임'이라는 영화를 했는데, 사람들이 극장에서 오들희가 나왔다고 웃었어요. 배우로서 치명적이죠. (골똘히) 난 오들희를 능가하는 진심 어린 연기를 했는데… 난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연기를 한 적은 없어요.”

    -아들, 딸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이 인터뷰 때문에 또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딸이 그래요. “엄마는 착하다. 남을 너무 배려한다. 헌신적일 정도로. 그리고 어려움을 매일매일 새롭게 극복한다."

    딸에게 이런 찬사를 받는 엄마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고 보면 내가 연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낯설게 바라보기’에요. 익숙해지려고 하면 나는 도망을 가요. 어릴 때는 고독하기도 했고, 익숙한 생활을 그리워했어요. 환경이 자주 바뀌면 두려움이 밀려드니까. 그런데 그런 삶의 굴곡이 나의 매력을 만들어준 거예요. 이젠 낯선 상황이 좋아요. 그 덕에 똑같은 것도 내가 하면 새롭게 되거든. 여기 이 의자도 난 황금의자인 것처럼 반응할 수 있어요. 우리 딸이 그런 내 모습을 알아줬어요. “엄마는 어려움을, 고통을 매일매일 새롭게 극복한다”고.”

    -특별한 모녀 관계로군요!

    “역시 내 딸이다, 그랬어요. 우리 아이들이 외국인 학교 다니는데, 학부모 중에 영어 못하고 대학 안 나온 사람이 나밖에 없어요(웃음). 엄마들 네트워크도 없고 컴퓨터도 못 한다고. 덕분에 딸아이가 독립심이 커졌어요. 엄마가 배우라는데, 실제 딸이 나를 배우로 본 건 초등학교 때였어요.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엄마로.”

    -엄마 이혜영과 배우 이혜영이 분리가 잘 되는 편인가요?

    “나는 분리가 잘 안 돼요. 나는 어쩌면 엄마라는 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 이혜영은 감추고,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요구를 했어요. “더이상 엄마인 척은 안돼! 진짜 다 벗고 당신을 보여줘. 엄마가 누렸던 자유, 그걸 다 알고 싶다구!” 내가 감추려 들면 다그쳐요. “엄마, 지금 연기해?” 아하하하.”

    나 또한, 딸에게 “아직은 안돼! 엄마 인생은 19금이야"라고 말하고 싶어 입술을 들썩였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그녀가 운전하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승객 같았다. 연기와 인생이 뒤섞여 있는 이혜영의 모노드라마는 장엄하리만치 정직했고 감동적일 만큼 안전했다.


    1998년, 서른 여섯에 첫 아이를 낳은 이혜영. 한때는 카메라가 원하는 얼굴이 아니라고 지적당했다지만, 지금은 21세기적인 얼굴로 평가받는다./고운호 기자

    -당신의 자아가 완전히 통합되길 원합니까?

    “가끔 나한테 물어보죠. “진짜 넌 뭐였니?” 낫씽. 진짜 나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난 한순간도 진짜가 아닌 적은 없었어요.”

    -딸은 당신에게서 무엇을 보길 원했던 걸까요?

    “강한 엄마… 마냥 순종적인 아내는 용서할 수 없다는 거죠. 내 딸은 나의 스승이에요. 남편과 나의 관계가 그래서 많이 바뀌었어요. 내 딸은 강했고, 그 아이가 날 강하게 했어요. 우린 함께 난관을 극복했고, 덕분에 부부관계에서 나한테 힘이 생겼어요.”

    -콤플렉스가 없어 보여요. 순진성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강도가 들어왔다가도 칼을 내려놓고 날 안아줄지도 몰라(웃음). 착하고 순진한 건 사실이야. 우리 아들이 나더러 그래요. “엄마는 느리고 바보 같고 예민하고 쿨하고 쉬지 않고 먹지 않고 그리고 착하다. 그래서 아빠가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하하하. 열등감은..., 열등감은 있어요. 연기를 보면 알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열등감을 감추려 들지 않을 때 연기가 좋아져요.”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나요?

    “아이들. 아이들처럼 용감한 존재가 어디 있어요? 어른들은 늙어갈수록 비겁해지지.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살잖아요. 아이들은 아름다워요.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워. 내가 말했죠? 나는 자랄 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았다고. 제멋대로 컸죠. 그런데 우리 애들이 그래요. “엄마는 남의 것을 뺏으려고도 안 하고 누굴 이기려고 누르지도 않는다"고. 왜냐? 난 재산이 있었거든. 재산. 그게 ‘아버지의 포옹'이었어요.”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군요.

    “시련이 너무 많았죠. 다행히 그걸 어렵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려울수록 더 잘 살았죠. 어쩌면 난 시련을 인내하는 걸 즐겼던 것 같아요. 일희일비하지 않았어요. 요즘 나는 점점 웃지 않아요. 불행해서 웃지 않는 게 아니야. 감사해서 눈물이 나죠. 옛날엔 많이 웃었어. 웃으며 슬퍼하다 보니 얼굴만 길어졌지(웃음). 웃지 않지만 난 지금 너무 행복해요.”

    -누구에게 감사한가요?

    “이런 행운을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나의 엄마에게. 엄마가 참 고마워요.”


    “엄마가 고마워요. 나를 버려줘서. 그리고 다시 찾아줘서.”/고운호 기자

    -왜죠?

    “우리를 버려줘서, 그리고 우리를 다시 찾아줘서. 엄마 없이 살다가 엄마를 만나 다시 아빠 없이 살았죠. 끝없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알게 해줬어요. 20대에 삼 남매를 낳고, 서른일곱에 우리를 만나 다시 키웠을 때, 그녀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일절 변명을 안 했어요.

    내가 아이 낳고 살아보니, 그 모진 삶이 너무 존경스러워. 나는 내 인생에서 배우가 된 것, 결혼한 것, 그리고 이혼하지 않은 것, 이 3가지가 참 자랑스러워요. 엄마는, 그 과정에서 나의 모든 걸 허용했어요. 내가 엄마를 떠나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그거 알아요? 내 가슴을 찢어지게 한 우리 엄마가 결국 영화 주인공이었던 셈이죠(웃음).”

    이혜영의 모노드라마 ‘마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부모를 버리지 않은 아이는, 그 결핍이 인생의 손목을 비틀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삶으로 증명해냈다. 운 좋게도 나는 상처가 곪지 않고 영광이 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창밖으로 석양이 비쳐들었고, 그녀는 먹처럼 번져오는 어둠 속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깊어지는 아이와 남편 그리고 관객인 당신을 향해서.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