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⑨] 이서항 "남북합의, 北이 깨면 휴짓조각…문서 아닌 행동을"

입력 2018.03.24 11:00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은 ‘서해수호의 날’이다. 연평해전, 천안함피격, 연평도 포격 등 서해를 지키다 산화한 영웅들을 기리는 날이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하는 가운데 향후 진행될 대화에서 서해에서의 군사 갈등을 막기 위한 양측간 합의가 나올 수 있을까.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소장은 22일 “향후 남북대화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며 “NLL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어 “북한의 도발과 우리 군 대응은 바다가 핵심”이라며 “우리의 해군력이 북한의 비대칭 무기를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남북 합의문의 한계를 지적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합의의 지속성을 위해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의 국회 비준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 “북한이 깨는 경우는 어떡할 것인가”라며 “수많은 평화조약과 불가침 선언이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된 사례를 역사에서 본다. 중요한 건 문서가 아니라 행동과 검증”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달랑 문서 하나만 해놓고 ‘평화체제’라고 하면 안 된다. 후속 조치가 확실히 들어가야 한다”며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선 군비 통제와 군축(방법)이 실제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될 경우, 중재자로 나선 우리 정부가 난처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 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특사단이 한 이야기와 북한의 말이 다르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다”며 “북한도 자신들의 뜻을 정의용 특사가 잘못 전달했다는 식으로 나오면 상황이 난감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북한이 우리에게 뒤집어 씌운다면 이건 단순한 회담 결렬이 아니다. 한미 관계 손상까지 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또 북핵 문제를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다자회의체에서 다루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그는 최근 진행된 NPT 회의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 뒤, ‘북핵은 미국과 북한이 결판지을 문제’라고 했다.

주한미군 철수가 비핵화의 보상카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도 “주한미군 철수는 맨 마지막 단계에서 고려할 문제”라며 “안보 핵심을 마치 사고팔 수 있는 것처럼 다루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가끔 한미 동맹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본다.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을 맞바꾸자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며 “둘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다. 한미동맹이 1만원짜리라면 북중동맹은 1원, 10전도 안 된다”고 했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과거 군축 관련 남북의 1.5트랙 (반관반민) 대화에 참여한 경험이 많다.

“노태우정부 시절이었던 1990년과 1993년에 리용호(현 북한 외무상)를 만난 경험이 있다. 당시 리용호는 참사관 자격이었는데, 아버지도 외교관 출신이고 상당히 트인 인물이었다. 우리가 데모하는 사람들을 ‘운동권’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북한 사람들은 운동권이란 표현을 듣고 ‘역도 선수’처럼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리용호는 본뜻을 알고 있었다. 영어도 잘했다. 당시 1.5트랙 (반관반민) 대화에는 외교부 유엔과 차석이었던 오준(전 유엔대사)이 오고, 난 외교안보연구원 소속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시영 대사(전 외교부 차관)가 리용호에 대해서 극찬 했다. 통일하면 보통 군인과 외교관은 중용하지 않는다. 독일도 통일 후에 동독 출신 군인과 외교관은 배척됐다. 외교관은 1~2명만 살아남게 되는데, 통일되면 리용호는 우리 외교부에서도 일할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핀란드 헬싱키에서 1.5트랙 대화가 진행됐다. 원래 있던 대화 채널이라고 보나?

“이번에 진행된 1.5 트랙 대화의 이름이 뭔지 정확히 파악 안 된다. 가장 유명한 1.5트랙 대화체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다. 수잔 셔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샌디에이고 대학 교수가 만든 회의체인데, 6자회담 참가국의 1.5트랙 협의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번엔 6자회담 당사국이 대상이 아니라 남·북·미만 만나더라. 과거부터 있던 대화 채널은 아니다.”
-현시점에 1.5트랙 대화는 어떤 의미가 있나?

“북한이 참여하는 1.5 트랙 대화의 장점은 북한에선 사실상 정부 인사가 참여한다는 점이다. 1.5트랙에 나오는 북한의 학자는 ‘군축평화연구소’ 소속이 나오는데, 사실상 노동당의 지침을 받고 나온다. 이들을 통해 북한 당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남북 대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보나? 실제적인 진전이 있다고 보나?

“그 부분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있다. 변화한 증거가 없는데도 대화국면으로 속이고 있다는 의견과 ‘이번엔 다르다. 정말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왔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일단 현 정부에선 대화에 대해 ‘베터 댄 나싱’(Better than Nothing, 없는 것보단 낫다)의 시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은 국제사회 흐름에서 코너에 몰릴 때마다 대화에 나서며 변화할 것처럼 태도를 보인다. 1990년대 남북 고위급 회담에 나선 것도 냉전 종식 후 동유럽의 붕괴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으로선 성공했다.”

-북한이 실제로 변화할 것이라 보나?

“반반으로 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화를 하긴 해야한다. 하지만 이게 지금까지 해오던 압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압박과 견제는 풀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풀어주겠다는 신호가 먼저 나가선 안 된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남북미 1.5트랙(반민반관) 대화에 참석했던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국장대행)이 22일 오전 헬싱키발 핀에어 AY085편을 이용해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 북한 대사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남북미 1.5트랙(반민반관) 대화에 참석했던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국장대행)이 22일 오전 헬싱키발 핀에어 AY085편을 이용해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 북한 대사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장관이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대화를 위해 보상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

“말로는 (제재를)계속하겠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진행될 회담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북한에 말과 행동의 일치를 요구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까지 매번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고선 속이지 않았나. 과거 영변 냉각탑까지 폭파했는데 결국은 쇼에 불과했다. 완전 국제적인 쇼였다.”

-정의용 실장 등 특사단이 북한에서 받아온 6개 합의안은 어떻게 보나?

“지금 현재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보면 계속 우리가 발표 하고 있다. 최근 마이클 그린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이 쓴 글에 따르면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을 40%로 보더라.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우리가 곤혹스러워질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특사단이 한 이야기와 북한의 말이 다르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다. 북한도 자신들의 뜻을 정의용 특사가 잘못 전달했다는 식으로 나오면 난감해진다. 만약 북한이 우리에게 뒤집어씌운다면 이건 단순한 회담 결렬이 아니다. 한미 관계 손상까지 우려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만한 요인이 생겼다고 보나?

“일단 제재가 심하니까, 제재를 완화하고 그쪽 말로는 인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필요성이 있으니까 나온 거라고 본다.”

-대화에 대한 북한의 절실함은 지금보다 1990년대 초반이 더 크지 않았을까.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이 말한 것 중에 하나도 이행된 게 없다. 문서와 실제 행동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구 소련과 군비감축 협상을 할 때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를 강조했다. 약속과 또 이를 검증할 수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선언문은 정치적인 쇼로만 끝날 수 있다. 유명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쓴 ‘20년의 위기’란 책이 있다. 1919년부터 1939년까지, 20년의 시간은 국제사회에서 수많은 평화조약과 불가침조약이 만들어졌던 기간이다. 그런데 이때 만들어진 협정은 대부분 종이 쪼가리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의 국회 비준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 합의를 뒤집지 못하도록 국회와 국민이 동의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국회가 비준한다고 해도 북한이 깨는 경우는 어떡할건가. 수많은 평화조약과 불가침 선언이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된 사례를 역사에서 본다. 그걸 배워야 한다. 중요한 건 문서가 아니라 행동과 검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2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지난 두 차례 남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서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2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지난 두 차례 남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서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연합뉴스

-남북정상이 발표할 합의문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나.

“후속 조치가 확실히 들어가야 한다. 달랑 문서 하나만 만들고 ‘평화체제’라고 하면 안 된다.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선 군비 통제와 군축이 실제로 뒤따라야 한다.”

-군비통제와 군축은 어떤식으로 진행해야 하나?

“평화체제를 구축한다고 하면 먼저 종전선언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군비통제조치를 2가지로 해야 한다. 먼저 운용적인 측면에서의 군비 통제다. ‘훈련시 상호 통보’, ‘상대군 훈련 모니터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건 비교적 실행하기 쉽다. 다음이 군사력 감축이다. 탱크 등의 수를 동수로 줄인다거나, 아니면 비율에 맞춰 줄이는 식의 구체적인 군비 감축을 해야 한다.”

-군비통제가 되지 않으면 평화체제가 안착이 안 되나?

“예멘이 그랬다. 예멘도 남북으로 분단됐는데, 우리와는 반대로 북예멘이 자유민주주의, 남예멘이 사회주의 국가였다. 예멘은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군축을 하지 못했다. 결국 의견이 충돌하니까 군사력을 쓰다가 내전으로 이어졌다.”

-평화체제와 군축이 잘 이룬 사례는 뭐가 있나.

“제일 좋은 사례가 유럽에서 이뤄진 ‘헬싱키 프로세스’다. 1972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의 군축 협상을 제의했다. 이 협의는 계속 지연되다 1989년부터 유럽재래식전력감축협상(CFE)가 시작됐다. CFE의 구체적인 내용은 5대 공격 무기(전차, 장갑차, 화포, 전투기, 공격용헬기)를 줄이기로 합의한 것이다. 우리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선 이렇게 해야 한다. 핵무기만 폐기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게 아니다. 핵무기를 해결해도 화학무기의 위협은 남아있다.”

-비핵화가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 역사상 핵무기 사용은 딱 두차례다.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이에 버금가는 대량살상무기(WMD)는 사례가 많다. 중동지역을 봐라. 핵무기는 안썼지만 화학무기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 화학 무기 역시 WMD이고 공포무기다. 이런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한다.”

-군축 비용은 어떻게 해야하나?

“군비 감축엔 돈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북한의 군축까지 우리가 부담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전차 한대를 불능처리하는 데 7만달러 이상이 들어간다고 한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군축을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정찰기가 자신의 영공에 들어오는 걸 허용하는 식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군축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지 않겠나?

“주한미군 철수는 맨 마지막 단계에서 고려할 문제다. 동맹의 문제는 주권과 관계있는 부분이다. 가끔 주한미군, 한미동맹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본다. 예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을 맞바꾸자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당시 한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내가 ‘둘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다. 한미 동맹이 1만원짜리라면 북중 동맹은 1원, 10전도 안 된다. 이걸 어떻게 맞바꾸느냐’고 반박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를 향해 ‘보수꼴통’이라고 하더라. 안보 핵심을 마치 사고팔 수 있는 것처럼 다루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의 가치가 그렇게 차이가 나나?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평가를 한다. 한미 동맹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심대하다. 한미 동맹이 있으니 외국에서 코스피에 많이 투자를 하는 것이다.”

-23일이 서해수호의 날이다. 남북 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지금,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우리가 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평화협력 조치 중에서 반드시 짚을 부분이 있다. 바로 서해협력지대 문제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NLL은 끝까지 지켜야할 선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말기에 김무성 의원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NLL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당시 서해협력지대 논의에선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내세웠는데, 우리가 마치 북한이 요구한 걸 수용한 것처럼 오도했다. 당시 우리는 NLL은 지키되,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해 우리가 제공하는 만큼 북측도 제공하는 것을 논의했다. NLL을 포기했다고 말한 건 팩트가 잘못됐다.”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시한 해양경계선(빨간선)과 우리가 제시한 해양경계선(파란선)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시한 해양경계선(빨간선)과 우리가 제시한 해양경계선(파란선)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앞으로 이어질 남북 대화에서 NLL문제를 다루게 될까?

“나중에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다. NLL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등거리·등면적’을 대원칙으로 우리가 양보하는 만큼 받아와야 한다.”

-서해에선 NLL을 놓고 논란이 있는데, 동해에선 그런 문제가 없다. 왜 그런가?

“휴전협정을 체결할 당시 해양경계선을 잡을 때 우리 군은 백령도보다 더 북쪽에 있는 초도까지 점령했는데, 거긴 지상에서 포격을 받을 수 있으니 포기하고 백령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해양경계선을 최초로 제안했을때, 우리는 38선을 기준으로 점령지역에 따라 긋자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행정구역상 도(道)의 경계선을 따라 긋자고 했다. 북한이 제시한 기준으로 하면 서해에서 우리는 상당히 내려와야 한다. 반면 동해에선 북한이 제시한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훨씬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다. 동해에선 우리가 엄청나게 양보한 것이다. 만약 북한이 NLL을 파기하자고 하면 동해에선 우리가 이만큼 올라가겠다고 주장해야 한다.”

-천안함 폭침의 주역인 김영철이 방한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나?

“정부가 그냥 받아주지 않았나. 처음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언급이라도 했다면 천안함 유가족에게 위로가 됐을 것이다. 넙죽 받은 건 문제가 있었다. 국민 정서상 수용하기 어렵지만, 대의상 받아들이겠다는 식으로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재 우리군은 국방개혁을 하겠다며 군을 줄이고 있다. 안보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군 병력을 줄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이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병력은 줄이는 대신 첨단 무기를 도입하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병력을 줄이는 문제는 안보 상황을 잘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군의 해양전력은 어떻다고 보나?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의 위협이 육상, DMZ(비무장지대) 155마일에서 온다고 보는데, 절대 그게 아니다. 북한의 도발과 우리의 대응은 바다가 핵심이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면 가장 먼저 탐지하는 게 이지스함이다. 우리의 해군력은 북한의 비대칭무기를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가 될 수 있다. 현재 북한이 공을 들이는 무기 중 하나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데, SLBM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대응성 전략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는 한 우리도 똑같이 평양을 때릴 수 있는 그런 무기체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이 22일 서울 서교동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 한 바 있다. NPT에 어떤 문제가 있나?

“2015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NPT 제9차 검토회의를 갔는데, 당시 파이널 리포트를 채택하지 못하고 회의가 끝났다. 핵무기에 대해서 강대국간 합의도 안 이뤄지고, 핵보유국과 비보유국간의 합의도 안됐다. 이런식으로 해서 핵무기로부터 국제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NPT 검토회의 파이널 리포트엔 어떤 내용이 들어가나?

“핵무기를 어떻게 관리하자고 합의한 내용과 핵무기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 전술핵 폐기 계획 등이 담긴다. 9차회의에선 중동지역 비핵지대(NWFZ) 설립 합의를 놓고 의견 일치가 안됐다. NWFZ는 1995년 결의된 내용인데, 이후로 지금까지 설립이 안되고 있다.”

-북핵 문제는 미북간 해결해야지, NPT 등 다자간 논의하면 더 어려울 수 있겠다.

“그럴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방한해 한-IAEA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가졌다. 이자리에서 사무차장은 “북한에서 (비핵화) 감시·검증 활동을 재개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IAEA가 효과적으로 사찰할 수 있을까?

“북한은 IAEA 체제 내에 있을때도 속인 게 많다. 대표적인게 금창리 핵시설 사찰 때였다. IAEA 가 1999년 금창리를 사찰하겠다고 하자 북한에선 사찰단원의 비자 발급을 1년이나 연기했다. 1년 후에 들어가니 이미 깨끗이 치운 뒤였다. 당시 사찰단이 시료 채취를 하겠다고 하자, 주권침해행위라고 못하게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AEA는 검증과 관련해 추가 의정서를 인준했다. 시료 채취도 필요하면 할 수 있고, 핵시설로 의심이 되는 지역은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속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속인 전력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사찰에 임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그 요구를 수용할까?

“북한의 주요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국제사회의 프로세스와 반대로 갈 수 있을까다. 우리와 미국은 북한에 ‘리비아 수준으로 핵사찰에 임하라. 그래야 비핵화 의지를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선 ‘카다피가 무너진 게 비핵화를 선언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런식으로 선례를 보고 역교훈을 배운다. 헬싱키 프로세스도 그렇다. 헬싱키 프로세스 이후 동유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됐다. 그래서 북한은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반대로 가려고 한다.”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한 뒤, 미국 켄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외교안보연구원 소속 교수로 국제회의에 여러차례 참가한 군축 분야 전문가다. 유엔 아시아태평양지역 군축회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주(駐)인도 뭄바이 총영사를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소장에 재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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