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O형 혈액은 왜 늘 부족한가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입력 2018.03.24 03:02 | 수정 2018.03.25 11:44

    모든 혈액형에 수혈 가능
    출혈 심한 응급 환자에 일단 O형 피를 투입
    저출산에 헌혈자도 감소, 수급 불균형 더 악화 우려

    서울 광화문 헌혈의 집에 붙어 있는 안내문은 아우성 같았다. 'O형 급구(急求)! A형 급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으로 혈액 보유량은 O형 3.2일분, A형 3.6일분, B형 4.6일분, AB형 5.4일분이다. 적정 보유량은 5일분 이상. AB형을 빼곤 모든 피가 부족한 셈이다〈그래픽〉.

    혈액 재고 그래픽
    O형 재고는 사실상 1년 내내 경고등이 깜빡인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다. 헌혈의 집 간호사는 "O형이시군요?" 반기며 "전혈을 400mL 하겠다"고 말했다. 적혈구·백혈구·혈장·혈소판 등 혈액의 모든 성분을 뽑겠다는 뜻이다. 채혈하는 동안 고르라며 사은품 목록을 건넸다.

    한국 사람은 A형이 34%로 가장 많다. O형 28%, B형 27%, AB형 11% 순이다. 연간 헌혈자 약 300만명의 혈액형 분포도 이 비율과 비슷하다. 그런데 왜 O형이 A형보다 더 만성적으로 모자랄까? O형인 사람은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 더 자주 빠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O형 혈액 부족'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현옥 교수는 "보건 당국과 학계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도 "O형 피가 가장 많이 출고되는데, 모든 혈액형에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출혈이 심한 환자가 들어올 경우 혈액형을 검사할 시간은 없다. 이런 응급 수혈에선 일단 O형 피를 투입한다. 김 교수는 "농축 적혈구 보존 기간은 채혈 후 35일이고 반품(환불)이 안 된다. 작은 병원들은 그래서 O형 피를 비축해두려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효 기간이 지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쓰임새가 많은 O형 혈액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혈액형별 수급 불균형에 대한 연구 용역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진 못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21일 "응급 환자에게 수혈할 때 O형을 준다는 점, 혈액형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장기를 이식하는 이형 이식 수술이 증가(2008년 19건→2017년 544건)한 점 등이 O형 혈액 수요가 많은 배경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저출산·고령화는 혈액 수급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만 16~69세면 헌혈이 가능하지만, 국내 헌혈자는 70% 이상이 10~20대일 만큼 기형적이기 때문이다. 수혈이 필요한 노인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헌혈 가능한 고교생·대학생·군인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2022년엔 필요한 혈액의 77%만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수급 불균형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헌혈 실적은 2015년 308만여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고 2016년 286만여건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292만여건으로 약간 회복됐다. 류춘배 적십자사 혈액진흥팀장은 "초·중·고교 헌혈 교육을 강화하고 예약 헌혈제 확대, 헌혈 약정 단체 관리 같은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혈자에 대한 포상도 높일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은 헌혈자 분포가 10~20대와 40대, 두 그룹에서 높게 나타나는 낙타 등 모양"이라며 "우리나라도 중장년을 헌혈로 이끌어 혈액 수급의 위험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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