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임금, 비정규직에 공개 추진

조선일보
  • 곽수근 기자
    입력 2018.03.23 03:02 | 수정 2018.03.23 10:04

    고용부 "임금정보 청구권 신설"
    "임금내역 다 드러나면 개인정보 침해 우려"

    동일·유사업무 비정규직 요구땐 회사는 정규직 내역 제공 의무화
    임금차별 확인 땐 시정 신청 가능
    재계 "비정규직 노조 힘만 세져", 학계 "勞·勞 갈등심화 요인될것"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그래프

    기간제·단시간·파견 근로자 등이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업무의 정규직 임금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22일 "비정규직 근로자가 동일 또는 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 등의 임금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 조항을 신설해 올해 중 법제화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간제·단시간 근로자보호법과 파견근로자보호법 등을 개정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보 제공을 청구하면 사용자 측은 비교 대상 근로자(동일·유사 업무 정규직 등)의 기본급·상여금·성과금·수당 등 임금 내역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 보고를 통해 여야 의원들에게 이 같은 정부 방침을 알렸다. 고용부 관계자는 "비정규직·정규직 간 차별 시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며 "개정법률안 마련을 위해 조문화 작업 등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청구권 남용과 개인 정보 침해 등의 우려가 나온다. 경영계 관계자는 "사측의 임금 정보 제공이 의무화되면 인사관리가 더 어려워져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노·노 갈등이 심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경남의 한 군부대에서 기간제 민간 조리원으로 근무한 A씨는 같은 부대 조리 군무원이 자신보다 가족 수당, 급식비, 교통 보조비 등 명목으로 매월 임금을 더 받는다는 것을 알고 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군 식당에서 '음식 조리'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을 덜 받는 차별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방노동위는 조리 군무원은 민간 조리원의 비교 대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A씨 신청을 기각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에서 "차별 처우는 부당하므로 수당 등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정규직 임금 비정규직이 알게"

    고용노동부가 밝힌 대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 조항이 신설되면, A씨 경우처럼 비정규직 근로자의 차별 시정 요구 절차가 크게 간편해질 전망이다. 현행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엔 '같은 사업장 내에서 동일·유사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받으면 6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 경우 '차별적 처우'는 임금·상여금·성과금·근로조건·복리후생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뜻한다. 차별이 불합리한 것으로 판정되면 사업주는 비정규직이 입은 손해액을 배상해야 하고, 차별에 고의가 있거나 반복적인 경우엔 손해액의 최대 3배 금액을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고용부는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이 현행 차별 시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비정규직들이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들의 임금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차별 시정 요구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정보청구권이 마련되면 차별 시정 요구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여야 이견이 없으면 올해 입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에 힘 실어주려는 것"

    정부는 '동일·유사 업무'를 '동종·유사 업무'로 개정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키로 했다. 또 차별 시정 신청권을 노조나 근로자 대표에게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비교 대상 근로자의 인정 범위를 '동일·유사' 업무에서 '동종·유사'로 확대해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을 폭넓게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면 차별하지 말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에 대해 경영계와 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임금 정보는 회사의 인사 기밀에 속하는 것인데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을 통해 공개되면 노사 교섭에 있어서도 노측이 유리하게 된다"며 "전반적으로 채용 감소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비정규직 노조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보청구권이 실제로 시행되면 사용자 측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업무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학계에선 개인 정보 침해를 우려한다.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임금정보청구권이 있지만 남녀 차별 등에 적용되지 비정규직과 정규직까지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을 인정하면, '국가가 개인정보인 임금까지 공개하도록 강제한다'는 권익 침해 논란을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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