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철권' 빈살만, 영국 찍고 미국 누빈다

입력 2018.03.21 03:03

['피의 숙청' 끝낸 사우디 왕세자, 오일지갑 들고 국제 무대 데뷔]

원전 건설·관광특구 사업 등 1000억달러 투자 보따리 보이자 영국 여왕·총리 만찬 초청해 환대
미국 3주 머물며 트럼프와 회동

정적 제거하고 예멘 폭격하는 등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 뒤엔 여성운전 허용하는 개혁적 모습도

궁중(宮中) 쿠데타로 작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 오른 무함마드 빈살만(33)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를 초청하려고 각국이 구애 신호를 보내고, 그의 동선을 따라 장관급 관료를 급파하기도 한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갖고 있는 사우디가 무함마드 집권 이후 보수적 이슬람식 통치에서 벗어나 개발 사업과 개방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이 지난 7일 영국을 방문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회담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이 지난 7일 영국을 방문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회담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그는 7~9일 영국 방문에 이어 19일 미국을 방문했으며, 3주간 미 전역을 돌며 주요 정·관계 인사를 만날 예정이다. /AFP 연합뉴스
영문 이름 머리글자를 따 'MbS'라 부르는 무함마드는 지난 7~9일 사흘간 영국을 방문한 데 이어, 19일부터는 장장 3주간 미국을 훑는다.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시작으로, 뉴욕·보스턴·휴스턴·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애틀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MbS는 작년 11월 유력한 왕자들과 고위 관료 등 200여 명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던 인물. 그러나 이제 숙청과 정정(政情) 불안 이미지를 걷어내고, 2016년 4월 자신이 내세웠던 '비전(vision) 2030 플랜'의 성공을 위해 사우디가 '안전한 투자처'라며 각국의 적극 참여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이 플랜은 미래형 복합 도시 건설, 비키니를 허용하는 홍해 연안의 서구적 관광 특구 설치는 물론, 20년간 원자력발전소를 16기를 짓는 것도 포함된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석유 기업 '사우디 아람코'의 주식 5%를 매각해, 1000억달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전 2030 플랜'에는 천문학적 돈이 오가게 된다. 당연히 우리나라와 서방 주요국은 당장 올해 시작할 200억달러(약 21조4000억원) 규모의 1400㎿급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 7~9일 MbS가 왕세자가 된 뒤 첫 서방 방문국으로 영국을 찾자, 최고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만찬은 물론이고, 테리사 메이 총리는 런던 근교의 고풍스러운 16세기 대저택 '체커스'에서 함께 개인 만찬을 했다. 영국 정부는 아예 MbS의 '비전 2030' 이행을 도울 영국 기업들을 선정하는 특별 보좌관까지 선정했고, 메이 총리와 MbS가 함께 주재하는 양국 전략 파트너십 위원회도 출범했다. 이 위원회에선 48대의 영국산 타이푼 전투기 구매 의향서 체결과 모두 650억파운드 규모의 무역·투자 약속이 이뤄졌다.

왕세자의 런던 체류 마지막 날인 9일엔 릭 페리 미국 에너지 장관이 미국에서 날아왔다. 19일부터 방미 일정이 시작하는데도 굳이 달려온 것이다. 러시아·중국이 핵 개발이 가능한 조건으로 사우디 원전을 수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이 몸이 달았기 때문이다. 핵 확산을 막아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미국 기업들의 사우디 원전 참여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MbS는 왕세자가 된 뒤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비(非)이슬람 공연은 남녀가 함께 관람할 수 있게 하는 등 개혁적 조치들을 취했다. 또 이슬람 보수 세력의 반대에도 "사우디 전역에 영화관,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고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위해 10년간 640억달러(약 69조원)를 쏟겠다"고 발표했다.

MbS는 이런 '개혁적 계몽군주'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한편으론 '철권통치자'의 면모도 뚜렷한 두 얼굴의 통치자다. 그는 작년 6월 군대를 동원해 당시 왕세자였던 사촌 형 무함마드 빈나예프 왕자를 가택 연금하고 '왕세자' 직함을 빼앗았다. 그러고는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왕실에서 정적(政敵)이 될 만한 왕자들과 고위 관료들을 대거 구금했다. MbS는 이들로부터 자산 수십억달러를 압류했고, '충성 맹세'를 받고도 행동을 감시할 전자 팔찌를 채워 석방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감금됐던 왕족 중 17명 이상이 고문으로 입원했고, 최소 1명은 척추가 부러져 숨졌다고 보도했다.

MbS는 2015년 30세에 국방장관이 되고, 두 달 만에 예멘의 이슬람 시아파 반군 '후티'에 대한 전투기 폭격을 지시했다.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크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감행하라"고 지시했다. 작년 6월엔 중동 국가들을 움직여, 이란과 친한 카타르와 무더기로 단교(斷交)하게 했다. 그는 지난 15일 미국 CBS방송 인터뷰에서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도 빠른 시일 안에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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