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금융화' 폭로한 美경제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 직격 인터뷰
미국 경제 회복은 엉터리…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고발
제품보다 금융 설계에 관심많은 애플, 곧 금융 상품 출시할 것
“대공황이 지난 후에 은행업은 미국 번영을 떠받치는 주춧돌이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추고 은행을 찾아가면 은행은 신용 조회를 거친 뒤 기업을 일으켰다. 그것이 2008년 정부가 70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쏟아부으면서 강조한 은행가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성도 없이 몸집이 더 커진 월가와 반대로 힘겨워하는 메인가의 극심한 격차로 나타났다… 이제 월가는 주식 시장 뿐 아니라 고용의 본질, 나아가 가치 있는 근로자란 어떤 사람인지까지 재정의하고 있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중에서.
지금 전 세계는 부채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며, 특히 공공 부문은 전례없는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만약 금융 위기가 재발한다면 2008년 위기 때와 같은 구제금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8년 금융 위기에서 은행권을 구출하는 일은 잘 해냈지만, 금융이 다시 실물 경제에 이바지하도록 회개할 기회는 날려버렸다.
일말의 가책도 없이 그 자체로 돈 먹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파이낸셜 타임스’의 부주필이며, CNN의 글로벌 경제 애널리스트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가 ‘기업의 금융화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는지'를 532페이지에 걸쳐 통렬하게 고발했다. 그의 저서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를 읽다보면 우리가 경제의 표본으로 삼았던 미국 경제에 대한 환상이 가차없이 깨진다.
폭로는 ‘2013년 봄 애플의 CEO 팀 쿡은 170억 달러를 빌렸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는 무척 이상한 결정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던 애플은 이미 은행에 무려 145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돈을 빌린 이유는 자사주 매입으로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의 흥청망청 돈놀이에 뛰어든 기업은 비단 애플만이 아니다. 포루하는 "지금 미국은 기업 전체가 은행업으로 업종을 바꾸는 분위기이며, 이런 이유로 2009년 이래 진행 중인 경제 '회복'은 사실상 엉터리"라고 고발한다. 시니컬한 내부자적 식견과 탄탄한 팩트로 무장한 美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포루하는 1990년대 초 ‘뉴스위크’와 ‘타임'지에서 국제 경제 통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책은 타이낸셜 타임스와 CNN 등 언론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완성되었다.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는 ‘금융업의 과도한 권력이 사회 전반에 초래하는 참혹한 결과에 대한 탁월한 저술(포브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수많은 사람을 외면하게 된 까닭을 파헤친 수작(뉴욕타임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신은 금융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이지 반자본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만드는 자(실물경제 생산자)와 거저 먹는자’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이전의 계급대립에서 훨씬 더 나아갔다. 가장 큰 영감을 준 경제 학자는 누구인가? 조지프 스티클리츠? 토마스 피케티?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건 그 두 사람이 맞다. 로버트 실러와 에드먼드 펠프스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책을 쓰면서 경제 관료나 월가의 인사들로부터 많은 압박에 시달렸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땠나?
“사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금융권의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있어서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서야 금융화가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거저 먹는 자'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고장 난 금융 시장 시스템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 모두.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당장의 이익 실현에만 몰두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포함된다. 그들은 일자리 창출, 연구개발 투자엔 관심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금융화란 무엇인가?
“금융업의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게 된 현상이다. 예전에는 미국 기업의 부가 커지면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그러나 이제는 무언가때문에 그 관계가 깨졌다. 그 무언가가 바로 월가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은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현재 애플을 비롯한 첨단 기술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 은행과 다를 바 없다. 순전히 금융적인 방식으로 버는 돈이 2차 세계대전 직후 기업 매출의 다섯 배에 달한다. 화이자, 마이크로소프트 등 수많은 대기업들은 금융 거래, 헤지, 조세 회피 등 그저 돈을 이리저리 굴리는 방법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금융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너무 강조하는 것 아닌가?
“금융은 미국의 전체 기업 수익 중 25%를 가져가면서도 일자리는 단 4%만 창출한다. 시장에 존재하는 자금 중 15%만이 실물 경제에 투입된다. 나머지는 금융업계 내부를 오가면서 투기에 이용되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실제 경제 활동보다 대차대조표 꾸미기, 일자리 창출보다 단기 수익 추구를 더 선호한다. 근거가 더 필요한가?”
-애플에 대한 공격으로 ‘금융화' 이야기를 시작한 건 의도적인가?
“그렇다. 애플만 봐도 미국의 초대형 기업들이 얼마나 고객의 필요나 욕구와 유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전의 잡스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제품을 만드는 데 전념했다. 그렇게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반면 팀 쿡은 돈을 정교하게 굴리는 수법에 더 관심이 크다. 팀 쿡이 은행에 1450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두고도 170억 달러를 빌린 이유가 뭘까? 신규 제품 개발에 투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으로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덕에 애플의 주가는 치솟았고 쿡을 포함한 주주들은 수억 달러의 자본 수익을 챙겼다.”
-당신이 보기에 이 질병은 어느 정도 심각한가?
“매우 심각하다. 흡사 미국 전체가 은행업에 종사하는 느낌이다. 그런 일을 한 회사는 애플만이 아니다. 기업 현금의 80%를 보유한 IP 기업의 10 %는 모두 이 패턴에 따라 낮은 이자율로 부채를 발행하고 이를 이용하여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주거나 다른 기업의 수익률 높은 부채를 사들였다. 둘 다 매우 심각하게 금융화된 행위들이다.”
-금융화는 너무 오래 지속되어와서 사실 애플이 동원한 자사주 매입과 배당은 업계의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이제 와서 이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이유는?
“2008년 이후 수조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음에도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디기 때문이다. 임금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느리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자사주 매입은 기록적 수준으로 이루어지면서 자산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떠받치는 가상의 성장이 아니라 메인가를 위한 지속가능한 진짜 성장이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나온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08년 월가의 부도덕성과 그들의 실수, 서민들의 고통, 그리고 세금으로 은행권 부양, 이어서 금융맨들의 보너스라는 이상한 절차였다. 누가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이런 일이 엘리트의 해결방식이라는 게 놀랍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결국에는 정치가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금융 시스템과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결정한다. 현행 세법은 거저먹는 자들에게 유리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노동자의 근로 소득보다 부유층 투자자의 자본 소득에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금권 정치와 금융 회사의 로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금융시스템을 고칠 수 없다.”
라나 포루하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약속되었던 금융 개혁안 중 상당수가 아직도 법제화되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과 금융권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1980년대에 이르러 자유방임 정책을 시행한 레이건 대통령의 갖가지 시장 탈규제에 힘입어 가속화되었다.
세제 개혁으로 자본이득세율이 대폭 낮아졌으며, 이전에는 증시 조작으로 간주되었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합법화되었다. 그런가 하면 기업 인수합병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초거대 기업들이 금융 기법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이 펼쳐졌다. 민주당 정권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 빌 클린턴 행정부는 대기업에 유리한 각종 무역 협정을 체결했는가 하면 파생상품의 규제를 철폐했다.
-트럼프는 철저히 월가의 사람이면서도 노동자의 표를 얻었다. 다 지난 일이지만 미국의 저소득층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게 여전히 놀랍다.
“슬프게도 그게 현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은 부족적(tribal)이 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투표한다. 가짜 뉴스가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제 온라인 플랫폼에서 뉴스를 본다). 현재의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다. ‘인식’이다.”
-러스트 벨트의 쇠락을 촉진하고 금융발 대량살상부기인 파생 상품을 허용해서 2008년 금융 위기를 초래한 쪽이 클린턴 행정부라는 건 역사적 사실인데.
“핵심은 영리한 트럼프가 사실상 이 모든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지난 40년간 미국 경제 금융화의 핵심 수혜자라는 사실을 얼렁뚱땅 넘겼다는 사실이다. 그는 갖가지 거짓말로 미국인들을 구워삶았다. 미국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원인제공자로 이민자를 지목했고, 최우량 기업을 위한 감세 조치가 성장과 번영을 추동할 것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모든 증거는 그 반대를 가리켜왔다.
다만 트럼프는 몇 가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 회복이 사상누각이라는 것. 당선되기 몇 달 전 트럼프는 ‘저금리’에 힘입어 형성된 시장의 거대 버블이 터질 경우 초대형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 기업의 부채와 레버리지는 기록적인 수준이다. 월가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찍고있음에도 임금은 이제야 겨우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최상위 1%는 미국의 총 실질 소득 성장분 가운데 52퍼센트를 차지했다. 대단히 위험한 전조다.”
-오바마 행정부도 당신이 지적한 ‘금융화’ 비판의 과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수습의 주역이었던 오바마 행정부 관료와 비공개 브리핑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는 왜 당시에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이 아니라 금융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가들과 가진 미팅이 그토록 많았는지 물었다. 전직 관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누구와 미팅을 했어야 하죠?” 금융화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 미성숙했기 때문에 미국은 망가진 금융 시스템을 회복시킬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회복시킬 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가?
“트럼프는 미국의 일자리를 되살릴 사업가가 아니다. 그는 오로지 자기를 위해 돈을 버는 데 능한 브랜딩 전문가다. 그는 철저히 월가 사람이다. 트럼프가 상위 1%와 나머지 99% 사이의 격차를 잘 아는 이유는 바로 그 자신이 그 격차를 넓히는 데 일조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내각은 월가 중심적 세계관을 통해 이득을 얻는 금융가같은 자들로 가득하다.”
-2008년 이후 사모펀드가 부동산에 개입하면서 집세만 받으면 되는 영혼 없는 마을이 급증한다는 지적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언젠가 워렌 버핏이 내게 말했다. “주택 문제 해결은 미국 경제를 바로 잡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은 사람들 마음 깊숙히 자리해 있다. 중산층의 첫번째 자산은 증권이나 예금이 아니라 주택이다. 하지만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주택 시장을 장악하면서, 자기 집을 소유하려던 수많은 중산층 가정의 꿈이 망가졌다.
해결방법은 우선 기존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규칙이 모든 시장 참가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모 펀드 회사인 블랙스톤이 미국에서 단독 주택을 가장 많이 보유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대형 공식 금융 기관과 개인이 할 수 없는 거래를 블랙스톤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루하는 숫자놀음꾼들이 혁신의 문화를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필름 수익을 지키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에 투자하지 않았던 코닥이나 인터넷 전화에 거부감을 보인 AT&T의 경우가 그렇다. 위대한 기술 기업이었던 휴렛-팩커드의 몰락도 마찬가지다. 구시대 모델로 얻는 수익 유지에 몰두하느라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전통적 미디어업체들의 결과는 암울하다.
-요즘엔 혁신의 성지인 실리콘밸리조차 금융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기술 혁명을 주도한 실리콘 밸리 거물들조차 금융가 이상으로 탐욕스럽고 배타적으로 변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기술 기업들이 상장을 완료한 다음에 해당 기업의 혁신성은 40%가량 사그라든다고 한다. 혁신의 열정을 식혀서라도 주가 부양에 지속적으로 나서라는 월가의 압력 때문이다. 혁신이 사라진 기업에 대중의 열광은 잦아들고 회사는 조각조각 쪼개진 뒤 매각되는 일이 다반사다.”
-월가의 압력은 기업 문화조차 상당히 망가뜨리는 것 같은데.
“나는 금융 기관의 압박이 대표적으로 자동차 기업 GM의 기업 사일로(부서 이기주의로 소통이 막힌 침묵 상태)를 부추겼다고 본다. 정보는 차단되고 나쁜 소식은 윗선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스위치 담당자들은 에어백 담당자들과 얘기를 나누지 않고 에어백은 법무팀과 소통하지 않았다. 결국 GM은 점화스위치에 문제로 차량 260만대를 리콜하게 된다. 비용을 절감하고 ‘숫자를 잘 만들라'는 월가의 압력이 GM의 점화 스위치 사태에 큰 몫을 한 셈이다.”
-금융 위기 이후 소비자들은 어떤가?
“당시에 각 가정에서 순식간에 엄청난 자산이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소비자들이 그 트라우마로 전통적인 소비자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스타벅스의 CEO하워드 슐츠도 2015년 나에게 미국소비자들이 대단히 취약하다고 호소했다. 변덕스러움이 소비자들의 특징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당연한 결과다. 임금은 이제서야 금융 위기 이전의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로 회복했을 뿐이며, 여전히 젊은층과 약자는 실업 수준이 높다. 이런 집단들이 장기적인 부를 형성하는 건 현재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동자금이 남아 있고 부동산과 주식 버블은 꺼지지 않고 있다. 책을 쓴 이후로 세계는 점점 더 금융화로 달려가고 있는 듯 한데,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금융화 추세는 근로자보다 자산 소유자에게 유리하도록 세법을 바꾸면서 동시에 공공 부채 부담을 증가시킨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런 정책 변화로 금융화 추세가 정점을 찍으면 곧 꺾일 수 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금리는 더욱 변덕스러워질 것이고, 결국에는 시장에서 급격하게 수정될 것이다.”
-대공황 때나 금융 위기 때나 거의 똑같은 징후를 보이고 있는데도 왜 우리는 반복적으로 ‘금융화'의 덫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이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적 교환과 위험이 따르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공을 시장에 넘긴다. 그 결과 경제는 실제적 성장이 아닌 금융화된 성장을 하게 된다. 금융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신기술에 자금을 대는 대신 증권화된 자산으로 탈바꿈해 쪼개지면 2008년의 상황이 온다. 정치인들이 어떤 이익 단체를 지원하는지 보라. 국가의 경제를 성장시키고자 한다면 정치가들은 어렵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큰 피해는 누가 입나?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이 자산 수익보다는 근로 소득인 사람.”
-금융 버블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 특히 젊은층들이 지금 암호 화폐에 투자하며 어마어마한 버블을 만들어 냈었다. 얼마 전까지 한국은 상당히 심각했다. 암호 화폐가 지닌 기술적 환타지와 경제적 의미가 충돌을 일으키는 현재 암호 화폐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중앙은행이 뒷받침하지 않는 통화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암호화 화폐의 등장은 금융화 사이클의 일부를 이루는 기존 금융 기관이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당신이 우수 제품 설계보다 금융 설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평가한 애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애플은 이미 회사채의 주요 인수자가 되었으며, 언젠가는 자체 신용 카드 또는 소비자 금융상품을 발행할 것이다.”
-금융 공학에 몰두하다 2008년 금융 위기 직격탄을 맞은 GE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GE은 미국의 위대한 혁신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 GE의 경우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금융화 사업 전략을 사용한 어두운 시기의 유산 때문에 회사가 쪼개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 국가가 그러하겠지만 한국은 미 연준금리에 따라 자국의 금리 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한다. 금융화로 인해 미국 기업과 국민들이 겪는 고통만큼 한국도 심각한 상황이다. 가계 부채는 지금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주변국의 이런 실정을 알고 있나?
“현재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 접어 들고 있으며, 이는 주식을 보유하는 사람에 비해 부채 보유자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다. 부채는 금융의 혈액이지만 앞으로 몇 년간 후에는 큰 위험이 되어 있을 것이다. 주변국들도 알고 미리 대처해야 한다.”
-금융화에 사로잡히지 않고 건강한 기업 구조로 지탱되는 모범적인 국가 혹은 기업은 어디라고 보나?
“캐나다 은행 시스템이 검토 가치가 있다. 강력한 공공 부문과 감시 체제를 만든 싱가포르 모델도 참고할 만하다.”
-지금 상황을 보면 금융업계판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만들어야할 지경이다. 금융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변해야하겠나?
“첫째 복잡성을 없애고 레버리지를 줄여야 한다. ‘너무 커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대마불사론보다 더 문제는 금융기관이 ‘너무 복잡해서 관리가 힘들다'는 것이다. 둘째 부채는 줄이고 자기자본은 늘려야 한다. 기업의 부채 뿐 아니라 자기 자본 수익에 대해서도 세금 공제를 허용해서 부채와 자기 자본의 적절한 균형을 유도하는 시스템은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셋째 기업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을 희생해서 금융을 키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여러분이 확실히 깨닫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현재 최저임금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론을 펼치고 있지만, 자영업자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등 반대 여론이 많다. 조언을 부탁한다.
“임금 인상은 그 나라 경제에 적합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임금을 더 높이지 않으면 소비자 지출이 70%인 경제에서 지속적인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유기적으로 할 수 있는 열쇠는 기술 개발을 앞서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산성을 증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