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⑥]천영우 "북미회담 성공하려면 남은 2개월 北 강하게 압박해야"

입력 2018.03.15 11:27 | 수정 2018.03.15 14:56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4일 서울 광화문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4일 “5월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여부는 남은 2개월간 얼마나 대북압박 수위를 높이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하고 “이번 회담이 실패하면 북한에 더 강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고, 나아가 미국이 군사적 옵션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김정은이 두려워해야 회담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실험 중단 선언을 하고 큰 시혜(施惠)를 베푸는 것 처럼 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북한은 더 이상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실험실에서 (은밀히)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 동결이 아닌 핵 폐기를 위한 최소한의 로드맵을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라는 위험한 기류를 따라 핵 동결을 받아들이면, 미국 우선주의라는 제단에 한국은 물론 일본 안보가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며 “안보 재앙을 막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고 워싱턴을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미국이 주한 미군 철수 등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하기도 싫은 이슈들에 대해 고민해야 할 순간이 닥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은 천 전 수석과의 일문일답.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4일 서울 광화문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경질됐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 틸러슨 장관은 사실 자진해서 나갔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든 미국에서든 국무장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겐 대통령의 신임이 가장 중요하다. 외교안보 전략과 목표, 우선순위에 대해 큰 틀에서 교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14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은 잘 맞지 않았다. 철학과 신념이 달랐다.”

-틸러슨 장관 경질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변수가 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변수가 줄어들었다. 대북 정책 실무를 담당했던 틸러슨 장관과 백악관 입장 차이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철학, 같은 전략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 틸러슨 장관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발언권도 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 대북 대화론자로 꼽혔다. 대화론자가 갑자기 경질된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대화론자라고 해서 대화를 더 잘하는 게 아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미국이 가장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틸러슨 장관은 대북압박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조건을 없애는 것이 제대로 된 대화를 위해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은 대화 외에 다른 선택의 길이 없을 때만 대화에 나온다. 이번에 김정은도 국제사회가 제재수위를 강화하고 미국이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화에 나오겠다고 한 것이다. 무력으로 압박하겠다는 게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오히려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런 이치를 트럼프 대통령이나 맥매스터 보좌관은 잘 아는데 틸러슨 장관은 간과했던 것 같다. 그런 점이 안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한 이후 백악관에서 섣부른 미북 정상회담을 걱정하는 다른 종류의 목소리가 나왔다. 틸러슨 장관이 해임됐으니 그런 혼선도 없어질까.

“그 부분은 틸러슨 장관 해임과는 연결짓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한 결정이 굉장히 즉흥적, 충동적으로 이뤄졌는데, 이후 생각해보니 이 카드를 헐값에 내놨다는 내부의 반성, 지적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북한은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다. 그 가치만큼 뭔가 받아내야 한다는 미국 내 강경파의 주장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 내에서 정상회담의 ‘조건’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회담이 안 열릴 가능성이 있나.

“미북정상회담은 시기 조정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 성사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안에 보자고 한 말에 김정은이 대답이 없고 선전매체도 아무 언급이 없다. 하지만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트럼프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미북정상회담을 하는게 좋다. 비핵화와 관련한 김정은의 의지, 결단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쉽게 김정은을 만나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만나는 것 자체가 김정은에게 국내 정치 입지를 강화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핵화라는 목표에 비춰봤을 때 그 정도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잘 준비해서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대북 특사단이 미북 정상회담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4일 서울 광화문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억지로 대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다.

“가장 좋은 시기는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때다. 대북제재가 최고조에 달해 북한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회담은 성공한다. 남북정상회담이든, 미북정상회담이든 마찬가지다. 질식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해야 최대한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도 압박 수위로는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 정상회담까지 2개월이 남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대북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느냐에 회담 성공 여부가 달렸다. 또 회담이 실패하면 북한에 더 강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고, 나아가 미국이 다른 옵션도 사용할 수 있다고 김정은이 두려워해야 회담이 성공할 수 있다.”

-미래 제재에 대한 강한 압박감을 회담장에서 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군사적 강제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을 제거하진 못하더라도 선제공격을 감행하겠다고 하면 김정은이 핵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아마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략으로 대화에 임할 것이다. 미국이 가장 걱정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배치를 유예하겠다고 하고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면서 핵을 지키려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북한이 대북제재 때문에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본다. 하지만 현재 북한은 비핵화할 정도로 압박을 받는 것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선 상황이 조금 어렵지만 핵을 포기할만한 수준은 아니란 얘기다. 지금 수준에서 북한이 회담에 나오면 이미 가진 핵을 지키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앞으로 2개월 동안 훨씬 더 제재 강도를 높여야 한다. 또 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대북제재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미국이 한국, 일본을 버리고 미국 본토를 지키는 수준에서 어설프게 타협할 수 있다고 보나.

“미국 대부분의 군축 전문가들은 핵 동결이라도 받아놓자고 한다. 그 사람들은 한국의 안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동맹을 희생하는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공화당 행정부 내에는 이처럼 미국 우선주의라는 위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우리는 핵 동결이 입구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irreversible·denuclearization)가 출구라고 한다. 하지만 핵 동결에서 CVID까지 가는 시한을 설정하지 않고, 시한을 설정하더라도 로드맵 합의가 안 된다면 입구가 바로 출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입구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 우선주의 제단에 한국과 일본의 안보가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중간선거뿐 아니라 2년 후 대선도 남아있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 때까지 아무 성과가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ICBM 위협을 제거했다는 면피성 성과에 급급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도 핵 동결만 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핵 동결만 하면 결국 북한 핵 보유를 용인하고 정당성을 인정하는 셈이다. 핵 동결에 대해 제재완화 등 보상까지 제공하면 김정은이 천명한 병진정책이 완벽하게 성공하는 셈이다. 우리 안보에는 재앙이다.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다. 일본과 손을 잡고 워싱턴을 압박해야 한다. 우리는 워싱턴에서 일본보다 무게가 없고, 발언권도 약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재선부터 되고 보자’ ‘핵 폐기는 다음 임기 때 하겠다’고 하면 일본과 손잡고 막아야 한다.”

-현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개선 의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핵 문제는 위안부 문제 등 다른 이슈와 분리해야 한다.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핵 문제에 있어서만큼 일본만큼 우리와 이해가 일치하는 나라가 없다. 위안부 문제는 서로 접점을 찾기 어려운 문제지만 사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은 공조 해야 한다.”

일러스트=박상훈
-핵 동결 이후 구체적인 로드맵을 반드시 정해야 하나.

핵 동결에는 실험 중단, 우라늄·플루토늄 생산 중단, 미사일 생산 중단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것이 CVID의 맥락에서 1단계 과정인지, 큰 목표 설정 없이 이 과정만 진행하는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또 CVID까지 가는 시한을 3년, 5년 정해놓고 하는 것과 정하지 않고 하는 것도 다르다. 시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미국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돼지가 날아다닐 때까지(When pigs fly) 할거냐’고 표현한다.”

-핵 동결만 하는 것은 왜 위험한가.

“핵 동결 수준에 머문다면 한국, 일본을 공격할 핵·미사일은 그대로 남는다. 그 사이 북한은 연구개발을 통해 미사일 성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핵 물질을 추가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 동결인데, 동결을 하더라도 실험실에서 연구는 계속 할 수 있다. 그동안 6번이나 했으니 핵실험을 더이상 할 필요도 없다. 핵실험 안 하는게 대단히 큰 시혜가 아니다. 오히려 핵실험 한번 하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만 하나 주는 셈이다. 화성-14, 15호는 재진입 기술만 확인되면 개발이 완료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성능 개량은 실험실에서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실거리 사격만 해보면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핵 동결보단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생산 중단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생산은 핵무기 수량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중단하더라도 그 사이 계속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를 늘려나가면 그건 동결이 아니다.”

-시설 감시도 미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하나.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은 우선 큰 시한, 동결에서 핵 폐기 완료 시점까지의 목표시한이 설정돼야 한다. 그다음에 비핵화에 대한 조건으로 북한이 요구할 사항이 뭔지,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보상 제공 연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은 실무회담에서 논의하면 된다. 큰 원칙 합의가 우선이다. 동결 대상 안에는 우라늄 농축 시설, 플루토늄 프로그램, 미사일 생산 등이 포함된다. 북한은 이 시설이 어디 있는지 등을 신고해야 하고 신고 내용이 완전한지 검증받아야 한다. 사찰은 검증의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검증체제 합의도 비핵화 합의만큼 어려운 일이다. 신뢰가 없을수록 더더욱 완벽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과는 합의보다 검증이 어려웠다. 검증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합의가 엎어지곤 했다. 99% 합의하더라도 1%가 합의 안되면 안 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위성이나 정찰기로 의심시설이 확인됐는데 북한이 못 들어가게 하면 합의가 아무 소용 없어진다.”

-북한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비핵화 조건으로 걸었다.

“이 안에는 주한미군 철수도 포함될 수 있고 핵우산 철폐라든지 북한에 대해 일체의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법적 구속력 있는 보장 등도 포함될 수 있다. 북한은 국제무대나 양자, 다자 문제에서 인권문제 거론도 위협으로 느낀다. 또 북한 주민에게 외부정보가 유입되는 모든 활동, 예를 들어 대북 방송, 대북 심리전, 민간단체들이 보내는 삐라 살포도 체제 위협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주한미군 철수가 가장 큰 논란이 되겠지만, 미국은 이보다 인권문제를 거론 못하게 하는 것을 더 어렵게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적 가치를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근간을 부정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한국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이 주한 미군 철수 카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뜻인가.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미국은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다른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인권문제가 협상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 북한이 요구하는 ‘위협 해소’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특사단에 한 이야기를 그대로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는 결코 평화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력 제재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를 피하려고 다른 카드를 들고 가지 않겠나. 미북 협상이 밀고 당기며 지루하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비핵화 완료 시점과, 이때까지 안 되면 어떤 제재를 가하겠다는 원칙을 정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미국이 큰소리쳐도 북한에 끌려 다니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이 사진만 찍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확실하게 약속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을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북한에 대한 착시, 환상만 만들어낼 뿐이다. 비핵화를 확실하게 약속하고, 최단시간 내에 실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또 미국과 제대로 협상할 수 있도록 북한의 현실적인 결단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런 노력없이 미북이 바로 만나면 무력충돌로 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 비핵화 로드맵 협상은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비핵화에 대한 보상은 미국 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대가를 우리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힘은 비핵화 대가를 제공하는 것 보다는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4일 서울 광화문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할 수도 있지 않나.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 자체가 한미 공조를 저해하는 것이다. 만약 경제지원을 하더라도 모든 것은 비핵화 진도와 연계돼야 한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압박하지 않으면 북한은 합의를 지키지 않을 구실을 찾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수준의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에게 실질적 압박이 되는 것들은 제일 마지막까지 갖고 있어야 한다. 압박을 완화하는 순간 비핵화는 중단될 것이다.
압박수위를 높이면 가장 좋고 최소한 압박 수위가 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에 실질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고통과 군사적 공포를 줘서 비핵화를 끝까지 안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군사적인 부분을 예로 들자면 주한 미군 철수는 제일 마지막에 해야 한다. 군사적인 카드를 내준다면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오는 것을 가장 먼저 내주고, 그 다음 한미연합훈련, 마지막이 주한미군 철수여야 한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 겁내는 것을 제일 마지막까지 갖고 있어야 비핵화 프로세스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북한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보상이 어떤 것이 있을까.

“북한이 정치적으로는 큰 가치를 부여하지만 당장 압박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안되는 것들은 융통성을 가져도 된다. 예를 들면 미북수교 체결, 평화협정 체결 같은 것들은 완전히 비핵화를 한 뒤에 체결할 필요는 없다. 비핵화 진행할 때 평화협정 교섭을 시작하고, 비핵화 완료될 시점과 평화협정 발효 시점만 일치시키면 된다. 제재 중에서도 상징적인 제재가 있다. 김영철은 여행제재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데 사실 신분세탁해서 얼마든지 다닐 수 있지 않겠나. 이런 것들은 해제해줘도 된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잡고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연합훈련 축소나 주한미군 철수도 할 수 있다고 보나?

“협상 과정에서 비핵화 조건으로 훈련 축소 등을 약속 한다면 못하는 것 아닌가. 다만 무조건적인 연합 훈련 축소 등은 미국도 동의할 수 없기에 북한은 ‘어떤 규모 이상의 훈련은 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다. 앞으로의 합의 내용에 달렸다. 우리가 비핵화 이후에 한미연합훈련을 안하기로 약속했는데 우리 스스로 합의를 위반하면 북한에 다시 핵무장할 빌미를 주게 된다.”

-주한미군, 한미연합훈련 문제는 북핵문제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 안된다는 견해도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당연히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안되고 한미연합훈련 축소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협상의 주체는 우리가 아닌 미국과 북한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다른 것들은 모두 합의되고 마지막에 이것만 남았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에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년 뒤 재선에 나설 것이다. 주한 미군 철수로 북핵을 없애고 핵우산 등으로 한국을 지킬 수 있다면 미 국민 대다수는 주한 미군 철수를 찬성할 것이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각하기도 싫은 이슈들에 대해 고민해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다. 북한 핵이 있고 주한미군 있는 한반도가 나은지, 핵이 없고 주한미군 없는게 나은지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보나.

“지금은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면피성 조건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또 북한의 요구 조건은 현재 사고의 틀 안에서는 해결이 안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 못했던 요구를 할 수 있다. 9·19 공동성명 때 평화 체제를 만들어준다고 약속했었다. 그때 ‘평화 체제가 뭐냐’고 김계관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물어봤더니 김계관은 ‘주한미군 철수 없는 평화제체 보장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며 아무 의미가 없다’고 대답했다.”

-미국이 갑자기 ‘코피작전’에 나설수도 있나.

“김정은은 트럼프나 시진핑보다 훨씬 전략적이다. 그동안 우리는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했지만 선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공이 있다고 봐야한다. 김정은은 지난 6년 동안 어려운 상황에서 내부에선 권력기반을 굳혔다.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게임에서도 져본적이 없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말살할 수 있는 미국 상대 게임에서도 지지 않았다. 앞으로 지는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북한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초강대국들을 상대로 줄타기 생존게임을 벌이면서 아직 한 번도 오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정도 승률이라면 김정은을 상당한 전략가로 봐야 한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을 공격할 구실을 줄 전략을 보이진 않을거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게 하면서 미국과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도 비핵화는 하지 않고 미국이 그냥 차버릴 수도 없는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나올것이다. 또 ICBM 배치 동결같은 것으로 앞으로 비핵화의 가능성도 열어 놓을 것이다. 미국의 조야가 큰 고민에 빠지고, 자칫 내분에 휩싸일수도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5일 오전 중국과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북정상회담으로 미국의 군사옵션 카드가 없어졌다는 뜻인가.

“아직 그 카드는 살아는 있지만 실제 쓸 일이 없도록 만들 것이다. 김정은에게는 제재강화보다 겁나는 것이 군사적 조치다. 미국도 만약 무력사용을 하더라도 평화적인 노력을 다했다는 요건은 충족해야 한다. 북한이 핵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 확인돼야 하는데 아직 평화적인 노력이 소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력을 사용할 명분이 없다. 이번 회담이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지 아닐지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중개자로서 미북 회담을 만든 문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어차피 미북간 직접 만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우리가 미북정상회담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은 상당한 성과다. 만약 우리가 김정은의 말에 속았다 하더라도 나중에 미북정상회담에서 바로잡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북한의 의도를 너무 긍정적으로 봤다고 하더라고 직접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확인할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면 크게 문제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펜스랑 김여정 면담은 막판에 틀어졌는데 현재 상황과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나.

“평창올림픽 때 북한은 이미 미북대화까지 갈 생각을 하고 왔다. 그런데 펜스가 공개적으로 한 행보를 봤을때 펜스와 김여정, 김영남이 마주앉는 게 마치 북한이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급해서 미국을 만난다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거다. 약한 사람일수록 콤플렉스가 있다. 힘센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여도 겸손하다고 하지만 약한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우습게 본다고 걱정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펜스와 마주앉으면 저자세로 보일 것을 걱정했을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가장 자존심 상하고 제일 하기 싫었을거다.”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전망하나.

“김정은이 여러가지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우리 특사단에 얘기했다면 나름대로 담판을 지어야겠는 결심을 했을거다. 앞으로도 미국이 계속 북한을 압박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군사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이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또 핵무장 완료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해소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핵 만드는 기술은 이미 터득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 핵을 포기하더라도 여차하면 다시 만들면 된다는 계산도 할 것 같다. 김정은은 우리가 생각하는 틀 밖에서 과감한 전략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종이로 된 안전보장보다 핵이라는 실물이 낫다고 생각한다. 공신력이 있는 무엇인가를 비핵화 대가로 받고 여러가지 제재 해제와 경제지원, 안전보장까지 받아 강성대국이 된 다음에 핵을 만들면 더 쉬울거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김정은이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생각할 것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 2006~2008년 6자회담 수석대표를 겸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맡았다. 6자회담 수석대표 재임 기간 9·19 공동성명(2005년)을 위한 이행 조치를 담은 2·13 합의(2007년)를 도출해낸 북핵 대응 전문가다. 외무고시 11회로 외교부에 입부해 국제기구정책관, 외교정책실장, 주영국대사, 제2차관 등을 역임했다. 2010~2013년 이명박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현재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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