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은 어머니 회갑에 315가지 음식을 바쳤다

    입력 : 2018.03.15 03:03

    궁중음식연구원 10년 연구 책으로…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음식 재현
    정조, 혜경궁 홍씨 회갑 8일간 잔치

    당시 가장 값비싼 음식은 '약과'
    한복려 원장 "재료 살뜰하게 이용"

    음식조리법 담은 '수라일기' 곧 출간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받았던 회갑 잔칫상이 220여 년 만에 고스란히 재현됐다. 남편을 잃고 왕비가 되지 못한 비운의 여인은 효자 아들에게서 8일간 총 315가지 음식을 진상받았다. 왕은 자신의 밥상을 "어머니 상의 절반만 차리라"고 명했다.

    1795년 정조가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를 여느라 행차한 8일간의 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속 음식을 총망라한 책 '수라일기(水剌日記)'가 이달 말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출간된다.

    이 작업을 주도한 한복려(71)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은 "의궤(儀軌) 복사본이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들춰보면서 조리법을 분석하고 검토했다"고 말했다. "왕부터 허드렛일을 하던 일꾼까지 먹었던 잔치 음식과 일상식을 아침·점심·저녁으로 나눠 정확하게 기록한 것으로 유일하다는 점에서 궁중 음식을 파악하기에 이보다 나은 자료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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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5년 화성원행 당시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칫상을 지난 2013년 재현한 장면. 떡, 과일, 한과 등을 화려하고 높게 쌓은‘고임상’앞으로 실제 먹는 음식을 올린‘소별미상’이 보인다. 회갑잔치상을 포함, 8일간의 화성원행 기간 혜경궁에게 올린 음식을 모두 더하면 315가지가 된다(왼쪽 사진).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원행을묘정리의궤’복사본이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들춰봤다”며 웃었다. /궁중음식연구원·성형주 기자
    의궤에는 총 400여 가지 음식이 등장한다. 연구원은 이 중 혜경궁 홍씨에게 올린 수라상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한 원장은 "정조는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여러 차례 지시하면서 혜경궁의 상은 평소처럼 차리고 자신의 상은 어머니 상 음식 수의 절반만 차리게 했다"고 설명했다. 혜경궁의 평일 수라상은 밥·국 한 그릇씩과 조치(바특한 찌개나 찜) 2그릇, 구이, 자반, 젓갈, 채소 요리, 김치 1~2가지, 장 2~3가지로 구성이 항상 같았다. 회갑 잔칫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고임상'은 먹지는 않고 보기만 하는 용도로 병과(떡류)·생실과(과일류) 등을 고루 갖추어 높이 쌓는 상이다. 혜경궁의 고임상에는 70그릇이, 정조의 고임상에는 20그릇이 올려졌다. 잔치 때 실제 먹는 음식을 올리는 '소별미상'은 끼니와는 별개로 간단하게 차렸는데, 미음·과자·과일·열구자탕(신선로) 등을 올렸다.

    '수라일기'는 한 원장을 비롯한 궁중음식 연구자 24명의 공동 저작이다. 지난 10년간 의궤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을 고증했다. 혜경궁이 8일간 받았던 315가지 음식의 조리법을 모두 발굴해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책 발간 작업은 작년 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 원장은 "의궤에는 음식 이름만 적혔을 뿐 정확한 재료나 조리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조선시대 조리서들을 참고해가며 재현했다"고 했다. 책에는 궁중 음식 315가지의 설명과 요리법을 담았다. 여기에 회갑연 잔칫상인 진찬상(進饌床), 양로연상(養老宴床·노인을 대접하는 상) 등 20여 종류 상차림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책은 2권 총 800여 쪽 분량이다.

    화성원행 둘째날 혜경궁이 받은 조수라(아침상).
    화성원행 둘째날 혜경궁이 받은 조수라(아침상). 14가지 음식을 검은 칠을 한 원반(다리가 있는 둥근 상·사진 오른쪽)과 협반(곁상)에 담아 올렸다. /궁중음식연구원
    의궤에 서술된 궁중 음식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한 원장은 "궁중 음식은 사치스럽고 화려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이를테면 명태를 조리할 때 상하기 쉬운 알로 먼저 알탕을 끓이고 그다음 끼니에 내장탕, 마지막으로 살을 요리하는 식으로 살뜰하게 활용했다"고 했다.

    의궤에는 각 음식을 만드는 데 든 비용도 함께 나온다. 신선로(열구자탕)가 귀하고 비싼 궁중 음식의 대표로 알려져 있으나 의궤에서 가장 비싼 음식은 약과(藥果)였다. 약과를 잔칫상에 15㎝ 높이로 쌓을 경우 15냥(약 105만원)으로 소고기 편육(7냥·약 49만원)보다 두 배 넘는 돈이 들었다. 한 원장은 "약과에 들어가는 참기름과 꿀, 식용유가 당시 매우 비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탕을 15㎝ 높이로 쌓을 때도 현재 돈으로 70만원가량 들었다. 사탕이 중국·일본에서 수입한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한 원장은 "수라일기 발간은 궁중음식연구원이 설립된 이후 50년 가까이해온 연구의 집대성"이라며 "연구자들뿐 아니라 요리사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읽혀서 우리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의궤(儀軌)란 조선시대 국가 중요 행사를 그림을 첨부해 기록한 책으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1795년 윤2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묘가 있는 경기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를 열기 위해 8일간 행차했을 때의 기록이다. 당시 정치 상황과 왕실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조선 의궤로는 처음으로 활자와 판화를 함께 갖췄고, 그림은 당시 도화서(圖畵署)를 주도한 단원 김홍도식 화풍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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