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IA 첫 여성국장 내정 해스펠…어떻게 고문했기에

입력 2018.03.14 14:47 | 수정 2018.03.14 14:5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국무장관을 교체하면서 차기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나 해스펠(62) 부국장을 지명했다. 미 상원을 통해 선임이 결정되면 그는 CIA의 첫 여성 수장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별도의 성명을 통해 “(해스펠 지명은) 역사적 초석”이라며 “그는 걸출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도 “지나 해스펠이 새 CIA 국장이 될 것”이라며 “첫 CIA 여성 수장이다. 축하한다”고 언급했다.

지나 해스펠 차기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 / CIA
해스펠 지명자는 30년간 CIA에 몸을 담으며 스파이 활동과 비밀 공작 업무 등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졌다. 1985년 처음 CIA에 합류해 폭넓은 해외 경력을 쌓았으며, CIA의 스파이 활동을 지휘하는 국가비밀공작국(NCS) 국장을 지냈다. 지난해엔 여성 최초로 CIA의 부국장 자리에 오르며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에는 전문성과 실력을 인정받아 ‘최우수 공직자 대통령상’을 비롯해 베테랑 미 정보요원들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윌리엄 도노번’상과 CIA 영예훈장을 잇따라 수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시리아 폭격을 결정했을 때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그의 정보 판단을 돕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해스펠의 상원 청문회 통과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을 지휘·감독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CIA는 2002년 태국의 비밀 수용시설에서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용의자 2명을 물고문한 뒤 관련 비디오테이프를 파기했다”며 “당시 파기를 지시한 문건에는 해스펠 부국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보도했다.

알베르토 모라 하버드대 카르 인권정책센터 교수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고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요 인물로서 해스펠은 (CIA 차기 국장으로)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모라 교수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미 해군의 법무 자문위원을 지내며 미국 포로 정책의 위법성을 경고한 인물이다.

◇ 자격 논란 휩싸인 해스펠…테러 용의자 고문에 증거물 파기 지시까지

로이터 등에 따르면 해스펠은 2002년 CIA가 태국에 비밀리에 설치했던 포로 수용소의 책임자였다. CIA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 조직원들을 체포한 뒤 이들을 해외의 비밀 시설에 가두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 각종 고문 기법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설 중 하나가 태국의 ‘고양이의 눈’이다.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으로 알려진 아부 주바이다. / 미 국방부
해스펠은 이곳에서 아부 주바이다와 압드 알-라힘 알-나시리의 고문을 지휘·감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바이다는 빈 라덴을 비롯한 다른 알카에다 조직을 연결하는 주요 조직책으로 여겨지던 인물로, 9.11 테러 당시 일부 테러리스트들이 훈련받은 아프가니스탄 훈련캠프를 다수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나시리는 2000년 발생한 USS콜 테러를 지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 해군함정 USS콜은 예멘 아덴항에 정박해 있던 중 자살폭탄 공격을 받았다.

2014년 미 상원이 공개한 ‘CIA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 보고서’를 보면 주바이다는 47시간동안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 구금된 후 매일 24시간 동안 ‘특별 심문 프로그램(extraordinary rendition program)’에 따라 고문당했다. CIA는 주바이다가 자백을 하지 않자 그를 총 266시간 동안 관처럼 생긴 상자 안에 넣어 구금했으며, 이후 더 작은 너비 53cm, 깊이 76cm의 상자 안에도 29시간 더 구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CIA는 주바이다에게 총 83회에 달하는 ‘워터보딩’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얼굴에 물을 붓는 워터보딩은 CIA 심문자들 사이에서도 심한 고문으로 인정된 행위다. CIA는 이밖에 그의 머리를 수차례 벽에 내리치기도 했다. NYT는 당시 심문자간 통화 내용을 인용, “이들은 주바이다의 머리를 벽에 내리치긴 했으나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그의 목에 수건을 두르는 등 안전지시를 따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알-나시리는 워터보딩과 함께 ‘모의 처형’을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의 처형은 포로의 눈을 가리고 머리에 권총 또는 전동드릴을 겨눠 겁을 주는 고문이다.

모든 고문 과정은 비디오로 녹화돼 CIA 태국지부 건물에 보관됐다. 하지만 총 92개에 달하는 비디오테이프는 2005년 11월 본부의 지시에 따라 파기됐다. 해스펠은 이때 CIA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NYT에 따르면 파기를 지시한 문건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있다.

CIA는 비디오테이프 파기를 지시한 인물이 해스펠이 아닌 호세 로드리게즈 NCS 국장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다이앤 파인스타인 전 미 상원 정보위원장은 해스펠이 차기 NCS 국장으로 처음 거론됐을 당시 그의 고문·증거 파기 지시를 이유로 반대한 바 있다. 파인스타인 전 위원장은 2009년부터 5년간 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 보고서 작성을 지휘한 인물이다.

◇ 관타나모 유지 이어 ‘고문 지휘자’ 등용…트럼프, 물고문 부활시키나

크리스토퍼 앤더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부총재 등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해스펠의 CIA 국장 지명에 즉각 반발했다. 앤더스 부총재는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은 의회에 어떤 형태의 고문과 학대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 장본인으로 고문 시설을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을 차기 국장으로 지명한 것에 대해 미 국민들에게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회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은 해스펠이 포로 고문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우려하는 반면 공화당은 그의 지명을 적극적으로 환영한 것이다.

론 와이든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해스펠의 이력은 그가 CIA 국장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인물임을 보여준다”며 “그가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봉사하려면 정부는 더 이상 과거의 충격적인 사실을 숨겨선 안된다”고 밝혔다. 하원 정보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공화당 데빈 누네스 위원장은 “정보 기관에 근무하며 해스펠이 보인 헌신과 소신있는 모습, 깊은 열정에 감명받았다”고 밝혔다.

해스펠은 CIA 내부에서 인정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의 지명에 있어 많은 전직 요원들이 추천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 중에는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 마이클 모렐 전 CIA 부국장 등 버락 오바마 정부에 몸담았던 고위 관계자들도 있다.

NYT는 해스펠에 쏟아지는 찬사를 통해 포로 심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의 태도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당시의 조사 방법을 합법으로 규정했고, CIA 내부에서도 ‘심문자들은 그저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6월 28일(현지 시각) 오하이오주 세인트 클레어스빌 유세에서 물고문의 일종인 ‘워터보딩’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 CNN 캡처
문제는 이들이 고문이 불법인 지금도 고문에 찬성하느냐다. 해스펠은 아직 관련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선 기간 워터보딩의 부활을 주장하는 등 여러 차례 고문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 1월에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가혹행위와 불법 구금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온 곳이다. 오바마 전 행정부는 취임 첫 해인 2009년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 명령을 내렸으나, 의회에서 저지당한 이후 이곳의 역할과 규모를 축소했다.

자신의 후임으로 해스펠을 고른 폼페이오 국장 역시 “국가 안보를 위한 감시장치 강화가 (인권 주장 등) 법적인 ‘방해’보다 우선시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2014년 CIA의 고문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그들은 고문자가 아니라 애국자다”고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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