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위의 아인슈타인'...스티븐 호킹 76세로 타계

입력 2018.03.14 13:27 | 수정 2018.03.14 14:56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향년 76세로 생을 마감했다고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은 1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날 오전 호킹 교수의 가족이 발표한 성명서를 인용해 “호킹 교수가 영국 캠브리지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호킹 교수의 자녀인 루시, 로버트, 팀 호킹은 “우리는 오늘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돼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매우 뛰어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며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3월 13일(현지 시각) 오전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은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호킹 교수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호킹 교수는 21세에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는 희귀 질환인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에 걸려 55년째 투병 중이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 재학시절 중동여행을 다녀온 후 갑작스레 병을 얻게 됐다. 당시 의사들은 그가 2년만 더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호킹 교수의 병은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됐고, 근육이 마비돼 책 한 장도 넘기기 힘든 상태에서도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저서 ‘시간의 역사’, ‘위대한 설계’와 강연을 통해 물리학을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88년 출간된 ‘시간의 역사’는 영국 타임스 베스트셀러 차트에 237주간 머무르며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를 계기로 호킹 교수의 이름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호킹 교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로 꼽히며,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천재적인 물리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50여 년 동안 지속된 호킹 교수의 질병은 그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됐다. 가디언은 “이같은 정체성이 없었더라면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인기 TV시리즈인 ‘심슨 가족’, ‘빅뱅이론’ 등에 출연해 관심을 받았다. 호킹 교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제작되기도 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ory of Everything)’은 호킹 교수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로, 그가 유명세를 얻는 과정과 첫 번째 부인인 제인 와일드와의 러브 스토리가 묘사됐다.

그러나 루게릭병은 호킹 교수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는 2013년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나의 병은 연구에 더 몰두하도록 힘이 되기도 했지만, 두 번의 결혼 생활을 망가뜨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호킹 교수는 병을 얻기 1년 전인 1962년 그의 첫 번째 부인 제인을 만났다. 제인은 호킹 교수의 병을 알고나서도 그의 곁에 머무르며 1965년 그와 결혼했지만 호킹 교수가 유명인사가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졌다. 둘은 별거 생활을 시작해 1997년 결국 이혼했다. 호킹 교수의 현재 남겨진 세 자녀 로버트와 루시, 티모시는 모두 제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번째 부인은 호킹 교수의 간호인이었던 일레인 메이슨이었다. 그러나 일레인이 호킹 교수를 구타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두 사람은 이혼 절차를 밟았다. 실제로 일레인은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호킹 교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를 구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킹 교수 자신은 구타 사실을 부인했다.

호킹 교수는 질병의 그림자와 어두웠던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늘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며 삶을 추진해나간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병을 발견한) 당시에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내가 가진 잠재력을 절대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며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삶에 꽤 만족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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