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inside out] 전쟁터에 풍선 탱크·합판 폭격기… 러시아 '무기 블러핑' 때론 통했다

조선일보
  • 이철민 기자
    입력 2018.03.14 03:34 | 수정 2018.03.14 15:32

    푸틴, 마하10 핵미사일 공개에 미국 등은 '블러핑'으로 폄하
    러시아군 '기만術'은 오래된 전략
    크림병합 땐 무늬 없는 군복으로 적에게 혼란 주며 새 병력 투입

    이철민 기자
    이철민 기자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11일 미그-31 전투기에서 극초음속 초정밀 크루즈미사일 '킨잘'이 발사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러시아는 '양날의 단검'이란 뜻인 '킨잘'이 사정거리 2000㎞에 최고속도 마하 10(음속의 10배)으로 날아 "계획대로 목표물을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영상에선 흐릿하게 처리된 미사일이 전투기에서 발사되는 모습만 공개됐다.

    '킨잘'은 지난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발을 완료했다고 주장한 핵추진 크루즈미사일, 핵추진 수중 드론, 음속 20배의 탄도미사일 등 5종의 최첨단 무기 중 하나였다. 푸틴은 이 무기들의 컴퓨터 그래픽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블러핑(bluffing·공갈)이 아니다"고 했다. 푸틴 주장처럼 이 무기의 개발이 사실이라면 지구상의 모든 미사일 방어체계는 고철더미가 된다. 핵 추진이면 사(射)거리가 무한정이라, 지구를 몇 바퀴 돌다가 예측 불허의 경로에서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반응은 푸틴의 발표는 17일에 있을 러시아 대선을 겨냥한 대내외용 '블러핑'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10일 "러시아가 이 무기들을 개발하려면 수년이 더 걸리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전략적 계산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푸틴의 발표가 '블러핑'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정치와 전쟁에서는 '블러핑'도 종종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20세기 냉전 종식에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블러핑'이 큰 몫을 했다는 게 국제정치학계의 평가다. 레이건은 1983년 3월 요격미사일을 우주에 배치하는 '스타워즈(SDI)' 계획을 발표했고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540억달러를 투입했다. 레이건의 '매파' 참모들조차 SDI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지만 러시아가 느끼는 공포를 파고들었다. 결국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소련 경제가 견딜 수 없는 수준의 군비 경쟁에 휩쓸린다"며 1986년 미·소 정상회담에서 50% 핵무기 감축을 제안했다.
    푸틴의 러시아군에선 기만·위장·공갈·부인(否認)을 통칭하는 '마스키로브카(maskirovka)'가 하나의 전술로 자리 잡았다. 2014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 계급·부대 표시가 전혀 없는 녹색 군복을 입힌 러시아군을 대거 투입했다. 그러고선 "녹색 군복은 누구든 사 입을 수 있다"며 러시아군 투입 사실을 부인했다. 그가 러시아군 투입을 인정한 것은 5주 뒤 크림반도의 강제합병이 끝나고 나서였다. 같은 해 우크라이나 동부에 러시아 특수부대원과 탄약이 적재된 260대의 군 트럭을 투입하면서도, 트럭을 흰색으로 칠해 발전기·의약품·식수 등 '인도주의적 구호품'을 담은 트럭이라고 주장했다. 적이 러시아군의 진짜 의도를 몰라 계속 억측하는 동안에, 기습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러시아군의 이런 '블러핑' 군수품에는 가짜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 발사 트럭도 있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공기가 주입되면 최신예 T-80 탱크, S-300 이동형 지대공미사일, 미그-31 전투기 모양으로 부풀어오르는 '풍선 무기'들이다. 30m 밖에선 육안으로도 '가짜'라고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해 정찰위성도 헷갈릴 수밖에 없다. 적의 값비싼 최첨단 크루즈미사일이나 레이저 유도탄이 이런 '풍선 무기'를 폭파하는 데 허비되게 하는 것이다.

    2차 대전 때 연합군도 '블러핑' 군수품을 활용했다. 1944년 6월 연합군은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국 도버 해안에 '고무 탱크' 부대와 '합판 전투기', 드럼통 위에 띄운 '합판 전함'들을 잔뜩 집결시켰다. 도버에서 직선으로 30㎞ 떨어진 맞은편 프랑스 칼레가 연합군의 상륙 장소인 것처럼 독일군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칼레는 노르망디와는 160㎞ 떨어진 곳이다. 영국군은 독일군 정찰기에 대공포를 쏴 '가짜 무기'에 가깝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먼 거리에서만 관측·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해 가짜인 것이 드러나지 않게 한 것이다.

    미군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에서 수많은 '대나무 폭격기'와 '나무 탱크'들을 발견했다. 1956년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노획한 이집트군 전리품 중에는 '나무 셔만 탱크' 16대, '나무 대포' 16문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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